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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벌써 1년이 다 된 에피소드입니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라 공개해야 할지 말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제 얼굴에 침 뱉는 거 같아서죠. 옛 신파극을 보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말이 있죠. 그게 꼭 저를 두고 한 말 같아 두고두고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래서 결정했지요.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모두에게 저의 처절했던 '사이버 사랑 이야기'를 공개하자고 말이죠.

'에라 모르겠다' 온라인 미팅사이트에 가입하다 

 인생의 황금기 같은 가을 시즌을 그렇게 따분하게 보내다가 기어이 저도 결심을 내렸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찾아낸 미팅사이트 홍보문구가 제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황금기 같은 가을 시즌을 그렇게 따분하게 보내다가 기어이 저도 결심을 내렸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찾아낸 미팅사이트 홍보문구가 제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 sxc

때는 바야흐로 2013년 10월, 살랑대는 가을 바람과 저무는 석양 노을에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계절이었죠.

특히 저 같은 노총각에게는 더더욱 애가 타는 시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혼자인 저를 더욱 가혹하게 만들었지요. 이유인 즉슨 수년 만에 보는 후배나 동기에게서 때마침 결혼식 청첩장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시기라 그랬죠. 평소엔 연락조차 안 돼 벌써 잊힌 사람들인데 어떻게 전화를 알고 주소를 알았는지 그게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여하튼 인생의 황금기 같은 가을 시즌을 그렇게 따분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 찾아낸 미팅사이트 홍보문구가 제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100만 명이 가입하고 인정한 대한민국 공식 미팅사이트 ○○○, 지금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보는 즉시 가입해야 특별 혜택이 따라옵니다(후략)"

저를 유혹하는 그 홍보 문구가 어찌나 달콤하던지, 유료 가입이었음에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경으로 단숨에 가입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가입 후 사진도 교정해서 올리고 직업도 근사하게 기입했지요. 그리고 미팅 쪽지가 도착하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일 주일이 지난 후 드디어 묘령의 여인에게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저를 반겼습니다. 하지만 바로 실망했습니다.

온라인 미팅 사이트에서 보통 남성은 유료, 여성은 무료 회원이라 여성 회원들이 가입 후 인사성 쪽지를 마구잡이식으로 뿌려대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후 수많은 쪽지가 왔지만 저의 대응 부족으로 만남까지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지역에 사는 묘령의 여인에게 의미심장한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혹시 오늘 시간되시면 저녁이라도 같이 드실래요. 같은 동네라 이왕이면 편하게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 느낌, 좋은 느낌 아시겠지요. 아마도 로또 당첨, 횡재, 세렌디피티(뜻밖의 행운)이란 표현이 적절하겠지요. 처음엔 저도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며 계속 물음표만 남겼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 만나지'라는 자신감이 생겨 결국 만남의 장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인터넷 사진으로 서로 봤던지라 먼 거리에서 오는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요. 인근 고기 집으로 들어가 술잔을 오가며 나눴던 교감으로 볼 때 그녀는 정말로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술을 잘 마셨고, 저와 같은 솔로에 일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친구 관계를 중요시했고 여행도 참 좋아했습니다. 첫 만남이었지만 앞으로의 타율을 기대해도 괜찮겠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을 뒤로하고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결국 그녀는 흔적도 없이 저를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조금 친해졌던 나머지 조금 속도 빠른 오버의 감정을 내비쳤기 때문이지요.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혼자만의 생각이 지나쳐 '왜 연락을 자주 안 하냐', '우리 또 언제 만나냐'는 둥의 집착을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술에 완전 취해 그녀에게 카톡으로 '나 정말 무지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왜 내 맘을 몰라주냐'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저를 훌쩍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지상정이겠지요. 인연을 맺고 이어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가까이 갈라치면 집착이라는 병이 따라 붙고, 조금만 더 멀어지면 그새 멀리 가버리는 게 사랑의 감정인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란, 정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물넷 어린 그녀의 쪽지... 하루 6시간 이상 '카톡' 대화 속으로

1라운드의 인연이 허무하게 끝나고 잠시 업무 몰입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미팅 사이트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한 달 후 다시 쪽지 확인을 하러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갔지요.

무수히 많은 인사 쪽지 중에 우연히 발견한 스물넷의 어린 그녀의 쪽지가 맘에 들어 답장을 줬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는 제 전화번호를 보고 냉큼 카톡으로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저는 슴넷, 대학생인데요. 오빠? 아찌?는 몇 살? 저는 그냥 편하게 카톡으로 대화하고 일상 이야기 나누면서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힘들면 함께 토닥토닥 해주고, 진심으로 위로해주면서 말이죵. 거짓으로 말고 진심으로 맘에 들면 연락주세요."

그녀의 진정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소개에 또 다시 노총각의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서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대화를 이어갔지요. 그렇게 그녀는 이미 저의 일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일상을 그대로 저당 잡히고 말았습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오직 사진으로만 봤던 그녀의 얼굴은 바비인형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했기에 저는 더욱 그녀의 카톡 대화 속으로 빠져 들었고, 업무가 공식적으로 끝나는 저녁 6시부터 하루의 6시간 이상을 그녀가 초대한 사이버 세상 속으로 몰입해 들어갔습니다. 하루, 이틀, 일 주일, 한 달을 그렇게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나니 마치 오래된 연인이 된 양 우리는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는 사이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기의 가슴 아픈 과거와 현실을 털어놨습니다. 일찍이 어머님을 여의고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홀로 어렵게 생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남성전용 술집인 바에 다니면서 아버지 부채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조금 의심도 갔습니다. 혹시 이러다 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근 한 달간 이어졌던 그녀의 속마음에 여러모로 도움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봤습니다. 결국 뾰족한 수가 없어 한 번 만나서 속사정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으로 서로 약속했습니다.

1시간 동안 180만 원을 그녀에게 입금했습니다

드디어 디 데이. 약속했던 그 시간이 코앞에 닥쳤습니다. 근 한 달을 사이버로만 교감을 해오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설렘, 흥분, 긴장, 불안감 등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며 약속한 장소인 강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시간대라 인적이 드문 지하도를 빠져나와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에게 이상한 카톡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저 오빠, 사실 제가 여기 업소에서 나가려면 사장 언니에게 보증금 형식의 돈을 줘야 해요. 물론 이 돈은 제가 나가면서 오빠에게 다시 돌려줄 거니까 전혀 걱정 안하셔도 돼요. 오빠 지금 바로 앞에까지 왔는데 저도 못 만나고 그냥 갈 순 없잖아요. 도와줄 수 있죠. 저 오빠 꼭 만나야 하는데…꼭 보고 싶은데...ㅠㅠ"

순간 저는 '이게 뭐지'하면서 의심의 폭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설마 여자를 미끼로 갈취하는 스미싱 비슷한 거 아닌가'하는 의심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장 언니와 통화까지 시켜준 그녀는 제게 카톡으로 실시간 중계를 하면서 안심을 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잣말로 '여기까지 왔는데 돈 때문에 못 만난다는 것도 그렇고, 도와주러 왔는데 그것도 못 도와주냐'는 심정으로 돈을 입금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사장은 계속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돈을 두 배로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계약금 10만 원, 이후 보증금 40만 원, 돈이 묶였다고 또 40만 원, 그리고 90만 원. 그렇게 총 180만 원을 1시간 동안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입금해 주고야 말았습니다.

이후 업소 사장은 총 300만 원을 맞춰야 그 돈이 나에게 100% 환불입금이 된다면서 다시 120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금 서비스가 막혀서 이내 포기하고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그때서야 귀신에게 홀렸던 정신이 돌아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스미싱 사기에 당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그 사장 언니 전화로 통화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러나 이미 결번 처리가 됐습니다. 물론 한 달 이상을 카톡으로 진실한 대화를 이어나갔던 그녀의 메신저는 온데간데 없이 먹통이 되어 버린 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이버 사랑에 속고 돈에 울어버리는 노총각 거지 신세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나의 '그녀'가 남자일 확률이 높다고? 

 앞으로 사랑과의 인연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번 사랑은 제발 저를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사랑과의 인연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번 사랑은 제발 저를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sxc

자칭 '러브홀릭 스미싱' 사기 사건을 당한 후 지능범죄 형사과 팀장으로 재직 중인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형사 친구가 제가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사기사건 내용을 마치 다 알고있는 양, 줄줄이 예까지 들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녀라고 지칭한 사람은 아마도 남자일 확률이 높고, 이미 2년 전 유행했던 브로커 수법으로 많게는 5천만 원까지 돈을 뜯긴 피해자가 생겼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허걱' 그 자체였습니다.

형사 친구는 통화 말미에 "새해 액땜 한 셈 치라"며 충고까지 했지만 저는 그 이후로 한 달 동안 자학증에 시달리며 병 아닌 병치레를 치러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사이버 사랑 때문에 돈은 돈대로 나가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는 악재가 저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 돈 갚느라 입에 풀칠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많이 회복됐습니다. 허나 한 달 동안이나 사람의 진실을 조롱했던 그녀에 대한 분노와, 거짓 사랑에 넘어간 제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지요.

사랑 그 놈 때문에 저는 돈도 잃고 몸도 잃고 마음까지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이제 다시는 사랑의 마음을 돈으로 사고파는 통속적 거래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결국 제 무덤 제가 판 격이겠지요. 앞으로 사랑과의 인연이 또 있을지모르겠지만 다음 번 사랑은 제발 저를 아프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스미싱#미팅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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