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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오십년 정도 했지요. 그런데 정말 책방 운영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깎아드리지 못해서…"

지난 5일, 책방 할아버지(이이지마서점(飯島書店)·이이지마히사요시(飯島芳久·77세))는 책 몇 권을 골라 값을 치르면서 깎아 달라는 기자의 말에 연신 고개를 수그리며 사죄를 했다. 문고판 7권 값은 모두 2050엔(우리 돈 2만 원 정도)인데 '설마 50엔은 깎아주겠지' 싶어 우수리를 떼자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도쿄 와세다대학이 자리한 거리 이름은 '와세다거리(일본말로는 와세다도오리)'인데 이곳에는 고서점이 줄지어 들어 서 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깎아 줄 수 없다는 책 값 2050엔을 다 건네고 나니 할아버지는 흰 포장지에 책을 곱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와세다고서점가의 이이즈마 책방 할아버지
▲ 이이즈마 책방 할아버지 와세다고서점가의 이이즈마 책방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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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즈마 할어버지네 책방
 이이즈마 할어버지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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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비닐 봉투에 담아 주어도 되련만 예전 방식대로 책을 포장하는 할아버지의 더딘 손놀림이 왠지 정겨워 말을 붙였다. 사실 기자는 15년 전 와세다대학에 연구원으로 와 있었기에 와세다거리의 고서점은 늘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와세다대학에 와있어 시간을 내어 고서점 거리를 찬찬히 걷다보니 눈에 띄게 책방이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음, 많이 줄었지요. 15년 전이라면 말이에요. 그때는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당시 이층짜리 건물들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책방이 많이 사라졌지요. 나도 저 아래에서 오랫동안 (책방을) 하다가 그곳이 헐리는 바람에 이곳으로 왔지요."

할아버지는 2004년에 펴낸 와세다대학 고서점 거리 지도를 하나 건네준다.

2004년 4월에 발간한 와세다거리 고서점가, 그때는 서점이 좀더 촘촘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 2004 와세다고서점가 2004년 4월에 발간한 와세다거리 고서점가, 그때는 서점이 좀더 촘촘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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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현재 고서점가 지도. 파란 굵은 펜으로 표시 한곳이 와세다대학
▲ 2014 와세다 고서점가 2014년 3월 현재 고서점가 지도. 파란 굵은 펜으로 표시 한곳이 와세다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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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준 홍보용 지도에는 줄잡아 이곳 와세다거리에만 39곳의 고서점이 번호를 단채 소개되어 있었다. 10년 전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2014년 3월 현재 지도를 건네준다. 살펴보니 여기에는 29곳만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 최대의 고서점가인 간다고서점가(神田古書店街)도 마찬가지다. 간다고서점가는 명치 10년(1880) 때부터 명치대학, 중앙대학, 일본대학, 전수대학들이 들어서면서 서점들이 생기기 시작한 곳으로 그 역사는 무려 130여 년에 이른다.

이곳에는 2008년 2월 9일(일본 위키참조)에는 약 200곳의 서점이 소개되고 있으나 2012년 9월 현재(간다고서점연맹 집계)는 158곳으로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한국에서는 "일본인은 전철 안에서 모두 책을 읽는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이제는 그 말도 옛말이다. 일본도 전철 안 풍경은 모두 슬기전화(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책방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 만큼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고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지 신간을 다루는 책방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앞으로 모를 일이다.

일본 최고의 고서점가로 알려진 도쿄 간다서점가 모습
▲ 간다고서점가 일본 최고의 고서점가로 알려진 도쿄 간다서점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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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의 서점 기노쿠니야의 1-5위 베스트셀러
▲ 기노쿠니야 베스트셀러 일본 최대의 서점 기노쿠니야의 1-5위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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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대 서점인 기노쿠니야(紀伊国屋)의 베스트셀러 1위부터 3위를 보면 일본인의 독서 성향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데 1위는 기업의 도산을 내다보는 책이고 2위는 요괴와 인간사를 다룬 책이며 3위는 베스트셀러의 비밀을 다룬 책이다. 좀 싱거운 느낌마저 든다.

올해 일흔일곱이라는 이이지마서점 할아버지는 사진을 찍겠다는 기자를 위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래도 어딘가 어두운 모습이 역력하다. 일본의 고서점은 단순한 싸구려 헌책방 개념이 아니라 고전부터 희귀본까지 고루 갖춘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한국의 대학가에 책방이 완전히 사라진 것 보다는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전철 안에서 슬기전화(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일본인들을 볼 때 이제 '책 많이 읽는 일본인'이라는 말도 옛 말이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자주 들리라'는 할아버지에게 "늘 건강하시고 장사가 잘 되었으면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나오는데 습도 높은 도쿄의 무더위가 확하니 온몸을 감싼다.

책 속에 묻혀 책방을 나오는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할아버지
▲ 이이즈마 책방 할아버지 2 책 속에 묻혀 책방을 나오는 기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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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거리 (JR야마노테선 다카다노바바에서 와세다대학에 이르는 20여분 거리에는 고서점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 와세다거리 와세다거리 (JR야마노테선 다카다노바바에서 와세다대학에 이르는 20여분 거리에는 고서점이 즐비했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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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과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와세다고서점가, #고서점가, #일본, #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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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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