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
 단원고 2학년 3반 아이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박예슬 전시회' 여기에 '유작(遺作)'이란 말을 넣어야 할 것 같다. 박예슬 학생은 지금 이 땅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박예슬 전시회' 앞에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았다. 이해가 갔다. 구체성은 기억을 더 오래 하도록 해주니까.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우리가 더 오래 기억해야 하고 박예슬도 그 아이 중 한 명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전시회 소식을 접하기는 시작 날(7월 4일)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살던 때가 없었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꼰대'(?)의 자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요즘은 고루한 나의 정서와 다른 어린 아이들을 곧잘 나무라는 입장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의 변화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물속에서 죽어가는 300 명 가까운 아이들을 그냥 죽게 했다는 부채감, 그건 국가와 이 사회 무책임 그리고 돈만 밝히는 선주의 탓으로 돌리기 이전에 어른인 나의 책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은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그 또래의 살아있는 아이들에게도 그런 감정들이 전이되어 갔다. 심지어 다 자라 성인이 된 나의 아이들에게까지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꿈 많은 주인공 박예술...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탔다

꼭 가 봐야 할 전시회였다. 작가가 유명인이어서가 아니다. 또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꿈 많은 주인공 박예슬은 세월호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어린 학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가들의 이른 죽음을 '요절'이란 표현으로 미화하곤 한다. 헌데 박예슬은 그런 수사를 쓸 수도 없다. 아직 어린 학생이어서 그렇고 또 아직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엔 이른 작가여서 그렇다.

하지만 유작으로 기한 없는 전시회를 열고 있는 예슬이를 예술가로 부를 수 있다면 그는 가장 일찍 저세상으로 간 예술가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만 17세의 아이로 하늘나라로 갔으니까. 뭐가 그렇게 바빴던지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박예슬 전시회가 시작되고 열흘쯤이 지난 15일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평강교회 박영복 목사님 내외가 서울역까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박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그날 서울 나들이가 내게 쉬운 여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40-2(2층) 서촌갤러리. 청와대가 주위에 있는 관계 탓인지 서울 한복판임에도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였다. 고도제한으로 개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리라. 또 사복 경찰이 요소요소에서 사람들이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박예슬 전시회에 대한 감시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이렇게 경찰들이 깔려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떻든 나를 주시하는 외부의 눈이 있다는 것은 상쾌하지 못한 일이다.

작품을 세심하게 감상하는 필자.
 작품을 세심하게 감상하는 필자.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아이의 전시회가 넓고 화려한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면 그것은 또 아이답지 못한 일일 것이다. 박예슬 전시회는 정말 작은 공간에서 열리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매우 좁았다. 두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몸을 부딪쳐야 할 만큼. 전시 공간의 정확한 평수는 알 수 없지만, 20평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공간에 박예슬의 17년 생애가 담겨 있었다. 당당하게 때론 외롭게...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아이는 그림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좋아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으는 일에도 정성을 다 한 것 같다. 이번 그의 유작전에는 유치원 때 그린 그림에서부터 세월호 사건이 나기 이틀 전, 그러니까 4월 14일에 그린 그림까지 전시되어 있으니까. 전시회는 작가와 사회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 한쪽 당사자인 작가는 이 세상에 없다. 슬픈 일이다. 전시장에 온 사람들은 그런 슬픈 마음을 쪽지에 적어 벽에 붙여 놓았다. 아주 많이, 그리고 빽빽한 모습으로….

이번 전시회에는 채색화 31점과 구두(하이힐) 옷 등의 작품 등 모두 4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 전면 하얀 벽은 바로 스크린이 되어 예슬이 관련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서 그 스크린을 보았을 때에는 맨발을 개울물에 적시며 물소리가 참 좋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박예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청순한 음성, 그것은 한 여름의 무더위를 의식하지 않게 만들 정도로 시원했다. 이런 아이가 지금 전시 현장에 없다니….

박예슬이 디자인한 남녀 옷을 김숙경 디자이너가 제작 전시하고 있다.
 박예슬이 디자인한 남녀 옷을 김숙경 디자이너가 제작 전시하고 있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며 억울하게 죽어간 한 아이의 피지 못한 예술혼과 숨결을 느끼려고 애썼다. 그것이 전시회를 찾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도 되는 양. 유치원 때 그린 그림을 5단으로 이어 만든 작품,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여기에 그가 평소에 생각했을 주방과 살고 싶은 집의 내부 설계도까지…. 그는 짧은 일생을 이렇게 수놓아 가려고 했다. 나는 박예슬의 자화상 앞에서 한참이나 머물러 있어야 했다. 마치 그 그림을 통해 박예슬과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는 듯이.

자화상을 통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과연 어떤 내용의 말일까? 찾아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고 느낄 때는 그의 눈을 매우 다정하게 다가왔다. 또 시간이 있었는데도 살려주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듯할 때 그의 눈에는 원망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죽음으로 사회가 좀 더 소통하고 아름답게 되길 바란다는 염원의 소리를 들을 땐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게 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의 죽음이 일시적인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했다.

박예슬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다. 'Park YESEUL Q & A'라는 직접 만든 자기 소개란을 읽을 땐 웃음이 나왔다. 그 또래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꿈과 희망 그리고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령 이런 것이다.

"Q1. 내 장래 희망은? A.2가지 ㅋㅋ 첫 번째는 '스트릿브랜드 CEO'ㅋㅋ 두 번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Q2.좋아하는 연예인은? A.연예인 중에서는 공유♥, 운동선수는 이정수♥(쇼트->스피드스케이팅) … Q5.남친 유무ㅋ A.유 크크크ㅋㅋㅋ(1년 넘게 사귄…부끄♥)"

이번 전시회 중 뭐니뭐니 해도 압권(壓卷)은 그가 디자인한 하이힐과 입고 싶은 옷에 대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그는 구두를 신고 걸을 때 나는 '또각또각' 소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게 뒷 굽을 높게 하이힐을 디자인했고, 커서 남자 친구와 함께 입을 옷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이른바 커플 옷이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이 박예슬이 디자인 한 옷과 구두를 보고 뛰어난 실력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한 것으로 봐 그의 잠재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말해 준다.

박예슬이 디자인한 구두를 이겸비 디자이너가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박예슬이 디자인한 구두를 이겸비 디자이너가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박예슬이 디자인한 하이힐은 유명 구두 디자이너 이겸비씨가 실물로 만들었다. 또, 옷은 전문 디자이너 김숙경씨가 만들어 전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보며 펴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박예슬을 아까워했다.

하늘나라에서 작품을 통해 말을 걸어오고...

내가 전시장을 찾았을 때가 오후 4시쯤이었는데 예슬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조금 위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은 옷과 구두를 카메라에 바쁘게 담는 모습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게 했을 것이다.

장영승 서촌갤러리 대표에게 박예슬 전시회 포스터를 한 묶음 얻으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전시회가 '무기한'으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무기한이라고 해도 마냥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 언제까지 할 건가?라는 물음에 기한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마음 속으로 정하고 있는 전시 기간은 "정말 없다"고 했다.

또, 이 전시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유익에 대해서 묻자, 그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다만 그 사건을 슬픔으로만 되새길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사회의 동력(動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하늘나라 예슬이도 그런 바람일 것이라고 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입구에 놓여 있는 서명 용지에 눈길을 주었다. '세월호 문제해결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범국민대책위에서 대한민국 국민 1천만 명 서명을 목표로 하는 이 운동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 책임자 엄정 처벌,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도 이름과 주소 그리고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기(摘記)한 뒤 마지막 서명을 함으로써 동참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방명록을 따로 준비하지 않은 것은 이 서명과 벽에 붙이는 메시지 포스팅으로 대신하려는 것 같았다.

박예슬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포스터지에 적어 벽에 붙여 놓고 생명 존중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필자 부부가 그 앞에서 마음을 보태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박예슬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포스터지에 적어 벽에 붙여 놓고 생명 존중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필자 부부가 그 앞에서 마음을 보태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 이명재

관련사진보기


어린 학생이 남긴 작품을 통해 이웃과 이웃이 서로 소통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먼 길, 달려가서 전시된 작품을 살펴봄으로써 나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이며, 내 주위 이웃들의 상황은 어떤지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것같이 유익한 것도 더 없을 듯하다.

펴보지도 못하고 떠난 박예슬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작품을 통해서 살아있는 우리에게 그의 속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나라에서 작품을 통해 말을 걸어오고 있다. 기한 없이 전시되는 그의 작품을 시간 내어 한 번씩 보시기를 권하고, 아울러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박예슬의 천국 안식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천인터넷뉴스에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태그:#박예슬 전시회, #서촌갤러리, #세월호 침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