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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쉰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처음 보는 것들이 많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세로 2미터가 약간 넘는 대작 2개를 제작하느라 몇 달 동안 땀을 뻘뻘 흘렸다. 더 자고 싶어도 일어나서 새벽별을 보며 연구실에 가서 묵향을 피웠다. 잠시 쉬면서 집에서 싸온 누룽밥으로 간단히 요기하며 다시 작품을 만들다 부랴 부랴 출근을 하기를 몇 달째였다.

퇴근 후면 다시 연구실에 가서 다음 날 쓸 종이를 접지하고 먹을 준비하고 습자를 하고 집에 가면 기진맥진이었다. 한 사람의 작가가 되기까지는 알게 모르게 참 많은 땀과 눈물이 섞인 세월의 바퀴가 필요하다.

나는 원래 부산과 서울에 살았지만 하늘이 많이 보여 마음부자가 된 것 같고, 이동시간이 짧아 시간부자가 된 것 같은 충북에 눌러살게 되었다. 충북미술대전을 졸업하고 초대 작가가 되기까지는 16년이 걸렸다. 그리고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초대 작가가 되기까지는 24년이 걸렸다.

24년 동안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에도, 39세 때부터 세상살이를 컴맹과 언어맹과 운전맹인 상태로 의료보험도 없이 홀로 시작하며,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기 무서웠던 해에도 해마다 입춘 즈음부터는 몇 달동안 그렇게 엎드려서 세로 2미터의 작품을 하였다.

아마도 문학작가들이 하는 신춘문예의 계절이 되면 글 중독자처럼 자연스럽게 원고지를 펴고 밤을 샜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내로라 하는 웬만한 전국규모서예대전과 세계문자대전을 비롯하여 휘호대회는 거의 모두 졸업해서 초대 작가가 되고 심사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어렵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 작품공모에서도 당선되어 선정 작가가 되었지만, 대한민국미술대전이라고 칭해지는 국전이란 것은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졸업하는 것은 참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을 거름하여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하다보면 가끔은 하늘이 운이란 것을 붙여주기도 하나보다. 나는 국전초대작가가 되었다.

국전발표가 있던 날, 오랜만에 국도를 씽씽 달려서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산길을 돌면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보랏빛 밭을 지났는데 그 밭이 바로 도라지 밭이라고 한다. 나는 기침이 심해서 도라지를 자주 먹었지만 도라지꽃은 처음 보았다.

하나 하나의 꽃들이 이렇게 모이면 장관이 되는 것일까? 내 글씨도 한 자 한 자 땀이 모여 누군가의 가슴에 피어나는 씨가 되면 좋겠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충북여성주간 행사에 참석했다.

강원도의 도라지밭
▲ 도라지 꽃밭 강원도의 도라지밭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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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교육의 결과를 지역에 환원하기 위해 나는 다양한 무대를 찾아야 한다. 우쿨렐레 어르신들의 공연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충북여성문화제에 리얼스토리가 있는 공연으로 응모를 했고 운좋게 27개 팀중에서 본선진출 7개팀으로 선정되었다.

본선이 되면서 문화제는 응모자가 대다수인 힐링토크 중심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힐링토크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줄은 모르고 이왕 가는 김에 나도 함께 즐기자고 서예퍼포민스가 있는 리얼스토리를 응모했는데 나도 붙었다.

어르신들의 멋진 공연을 위해 내레이션과 리얼스토리 대담을 연습시키고, 무대에 쓸 소품인 보면대 등도 챙겼다. 내 순서가 되기전에는 화장실에서 얼른 개량한복으로 갈아입고 입술에 색깔을 입혔다.

기획자가 되어 만든 우쿨렐레반 교육생들의 공연
▲ 충북여성주간 행사에서 우쿨렐레 공연 기획자가 되어 만든 우쿨렐레반 교육생들의 공연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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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맨발로 무대에서 세로 2미터의 종이에 글자하나를 1미터씩 잡아서 '동행'이란 두 글자를 휘호했고, 휘호를 마치면서 주제가 '딸들에게 대물림하는 삼모작' 토크와 함께 '함께 가요'란 시를 낭송했다. 20명의 심사위원들이 채점하여 결과를 발표했는데 내가 인솔한 우쿨렐레 어르신들은 3등상인 충북도지사상을 수상하고 나는 운좋게 대상을 수상하였다.

청각장애인들은 말을 잘 못한다는 관념을 깨고 후배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하나 만든 것 같아 그게 고마웠다.

이 행사를 어르신들과 함께 참가하고 내가 느낀 것은 우연히 지나가다 국도에서 도라지밭을 지나며 보랏빛 도라지꽃에서 볼 수 있는 생의 기쁨을 느낀 것처럼, 살아있기에 삶을 몸으로 노래하며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고마움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가다가 옹달샘 한 바가지를 떠 먹는 기분이랄까? 나는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고 비실 비실하게 아파 늘 약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이웃들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다.


태그:#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작가, #충북여성주간 힐링토크대상, #청각장애인식개선, #도라지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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