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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철 화천군수. 그를 지난 주말 주택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정갑철 화천군수. 그를 지난 주말 주택공사 현장에서 만났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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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웅장할거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왔는데, 생각보다 좀 작은데요."

지난 주말,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 한 주택공사 현장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 백발의 노인이 연신 손수레 끌기에 분주했다. "6월 30일이면 관사를 비워야 하는데, 손이 딸려 큰일이다"라고 말하던 노인.

그가 바로 12년간 3선으로 38선 이북 작은 마을 수장을 지낸 정갑철(70) 화천군수다. "집이 생각보다 작다"는 말에 "늙은이 혼자 25평이면 충분하지 더 커야 할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낙후마을이란 닉네임이 수식어처럼 붙었던 산골마을을 일약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퇴임에 즈음해 그가 이루어 놓은 일들을 정리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만들었다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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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은 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86%, 물이 5%로 활용 가능한 면적은 9%미만이다. 인구분포는 군인이 3만5천여 명, 주민은 2만5천 명으로 40%의 군민들이 군부대에 의존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진입로 또한 철로나 고속도로도 없는 2차선 국도와 지방도가 유일하다. 화천으로 기업을 이전하거나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는 이유다.

2003년, 정갑철 군수가 구상한 것이 '청정의 자원화'이다. 굴뚝 없는 공장, 즉 화천군이 보유한 환경을 자원으로 연계해 나가자는 것이 당시의 목표였다.

"에코파라다이즈 화천".

한국전쟁 종전 후 60년 간 군사시설 보호구역 또는 개발제한 구역이란 명목으로 규제를 받아온 열악한 여건을 자원화 하자는 의도였다.

이와 함께 시작한 것이 산천어축제다. 산천어를 청정의 대표성을 띤 물고기로 부각시키고 마치 '화천에 산천어가 사는 곳'으로 인식시켜 전국 최고 청정성을 띤 지역으로 알리고, 산천어를 매개로 한 축제 및 산업화를 도모해 나가자는 것이 산천어축제의 근본 취지이다.

2003년 첫해, 22만 명의 참여를 시작으로 2006년부터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게 되면서 산천어축제는 중국 하얼삔 빙등축제, 일본 삿포르 눈꽃축제, 카나다 쾌백 윈터 카니발과 더불어 세계 겨울철 4대축제로 알려지게 되었다.

축제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효과 또한 직접효과가 500여억 원, 유발효과는 무려 1500여억 원에 이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2009년 타임지에서 이주일의 뉴스 보도 등 2011년 미국 CNN에서 겨울철 세계7대 불가사의로 선정했다. 해외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산천어축제의 현주소이다.

이로 인해 화천군은 2013년 9월 세계축제협회로부터의 세계축제도시에 선정된데 이어 같은 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화천 산천어축제를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지정했다.

이처럼 산천어축제는 38선 이북지역의 조그만 산골마을을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비롯한 전국 최고의 청정지역 등 힐링.생태 관광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평화는 화천에서 시작된다

세계평화의 종, 분쟁국 30개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
 세계평화의 종, 분쟁국 30개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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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화천은 발전소 탈환을 위해 10만여 군인들이 숨질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파로호는 저수량 10억 톤, 면적 38.9㎢의 대규모 호수이다. 이 호수가 파로호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한국전쟁 당시 3만여 명의 오랑캐(중국군)를 무찔렀다 하여 한국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붙인 것에서 유래 되었다.

1986년 북한에서 금강산댐을 건설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용으로 파로호 상류에 평화의 댐을 건설했다.

금강산댐이 붕괴된다면 26억2천만 톤 규모의 물이 일시에 북한강으로 유입되고 경기권을 비롯한 서울지역이 물바다가 되어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 된다는 가정을 했다.

북한은 금강산댐 건설을 통해 인위적으로 물줄기를 동해안으로 돌려 81만kw의 전기 생산시설인 안변 청년발전소를 건립했다.

금강산댐 건설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파로호를 비롯한 북한강 상류지역의 수질환경에 심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금강산댐을 막아 북한강 상류로 내려오는 물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강산댐 하류에 위치한 파로호 및 춘천호, 의암호의 물고임 현상이 길어지면서 수질 악화와 생태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07년 10월 2일, 정갑철 군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방문 시, '북한이 수공을 목적으로 금강산댐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면 금강산댐을 포기하는 대가로 안변청년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화천군에서 공급할 용의가 있다' 는 내용의 서한을 북한의 김정일 주석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그 제의에 대한 응답을 유보하고 있다.

평화의댐 정상부, 화천읍 동촌리에 있다.
 평화의댐 정상부, 화천읍 동촌리에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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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댐 인근 지역을 세계평화가 시작되는 곳으로 조성키로 했다. 분쟁 30개국으로부터 탄피를 기증받아 37.5톤 규모의 초대형 범종을 만들어 평화의 댐 인근에 세웠다. 2009년 5월26일 구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세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세계 평화 애호가 100여명 등을 초청해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것이 '세계 평화의 종'이다.

평화의 종은 세 번 울린다. 첫 번째 울림은 종교의 초월이다. 세계 각국의 갈등 중 많은 경우가 종교와 관련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인종간의 갈등 해소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계 인종이든 평화의 종소리 앞에서는 모두 평등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이념의 초월이다. 평화의 종소리 앞에는 국가 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이념을 모두 초월해 초자연으로의 귀의를 뜻한다.

한국 전통 무게의 단위는 톤이나 킬로그램이 아닌 근 또는 관이다. 평화의 종 무게 37.5톤은 1만관의 무게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평화의 종 무게는 9,999관이다. 1만관에서 1관이 빠진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대한민국은 아직 불완전한 평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의 종 상단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4마리가 사방(동,서,남,북)으로 배치 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북쪽을 향하고 있는 비둘기의 날개 한쪽이 잘려져 종 아래에 전시되어 있다. 이 날개의 무게가 1관인 셈이다. 아직 불안전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평화 통일을 이루는 날, 잘려진 비둘기의 날개가 붙여져 완전한 1만관의 무게를 유지해 평화를 이룬다는 것을 뜻한다.

평화의 댐 아래에 평화 아트파크를 조성 중이다. 실제 탱크 및 비행기를 활용해 대형 조형물로 만들어 지는 평화 아트파크는 살상무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결정체가 될 것이다. 평화의 댐을 향해 흘러내린 산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1179미터 높이의 백암산 정상을 만난다. 이곳에 세계 평화의 종과 연계한 평화 관광지가 만들어 진다. 백암산 특구사업이다.

평화의 종 울림의 여운을 간직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를 이용해 백암산에 오른다. 백암산 정상에서 북한에서 건설한 금강산댐과 대응을 목적으로 만든 평화의 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왜 이들 두 나라는 양쪽에서 물을 막고 있어야 하는가! 관광객들은 분쟁 종식과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다.

화천 수달연구센터의 수달
 화천 수달연구센터의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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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에는 청정의 상징인 수달이 화천군민들과 함께 산다. 수달은 환경지표 동물 중 하나이다. 일본에선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 수달들이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 북한까지 오가는 모습이 포착 되었다. 이에 2005년 수달연구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2006년, '평화의 메신저 수달'이란 타이틀로 세계 수달총회를 유치해 세계 36개국 150여 명의 수달 학자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다. 북한과의 공조를 통한 수달연구의 기틀도 마련했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월남파병을 위한 훈련장이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 위치하고 있있다. 이곳을 통해 31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 여기에 착안해 훈련장이 있던 장소에 베트남 파병용사 만남의 장을 조성했다.

'전쟁은 상처입니다'라는 타이틀로 만들어진 베트남 파병 만남의장에는 월남전에서 사용했던 무기를 비롯한 인명살상, 환경파괴 등의 사진전시를 통해 지구상에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정갑철 군수는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월맹군 소탕을 위한 오인사격으로 양민을 대량으로 학살했던 떠이션현 부군수를 초청해 당시 상황의 유감을 표시하고 양국 자치단체 간 교류를 추진한 것 또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이 세운 정갑철 화천군수 송덕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한옥마을에 있다.
 마을 주민들이 세운 정갑철 화천군수 송덕비.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한옥마을에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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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철 군수가 12년간 이루어 놓은 업적은 수없이 많다. 이외수 작가 영입을 통해 지역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지역인재 육성을 위한 학습관 건립, 장학금 조성 등으로 작은 산골마을을 교육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금년 1월 29일 국민일보와 국회 입법 조사처에서 전국 230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사회의 질(SQ)평가'에서 화천군이 10위를 기록했으며, 전국 군단위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참전 에티오피아 장병 후손에 대한 장학금 지원 사업을 통해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한국의 보은을 기억한다.

"퇴임 후에도 늘 변함없이 화천발전의 조언자로 남아주길 바란다."

화천읍내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이다.

정갑철 화천군수 송덕비 전문 


전통 한옥(傳統韓屋)의 모퉁잇돌을 놓다

                 화천 군수 봉용 정갑철(鳳龍 鄭甲澈 1945년 1월 5일생)

화천 한옥 학교는 그의 민선3기(2002년 7월 2일~2006년 6월 30일) 초선 군수 시절,  한식 목공 기능인 양성을 통한 전통문화 계승과 사라져 가는 전통 한옥 건축 기술의 연구․발전을 위하여 2004년 6월에 지자체 부설 전통한옥 건축 기능인 양성 기관인 전통 황토 집 전수 학교로 시작되었다.
재정 자립이 미미(微微)했던 지자체의 수장으로서는 실로 파격적인 용단(勇斷)이었다. 현실을 진단하고 앞날을 내다보는 그의 탁월한 식견(識見)과 혜안(慧眼)으로 학교는 발전을 거듭하여 마침내 민선4기(2006년 7월 1일~2010년 6월 30일) 재선 시절인 2006년 5월에 이전과 확장 계획이 세워지고  2008년 11월에 유촌리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용화산 자락 이곳 아늑한 터에 하늘의 맑은 정기와 땅의 온후한 덕으로 소나무와 대나무를 헤치고 돌을 골라서 반석 위에 학교를 세웠다. 귀부(鬼斧)로 다듬어서 형용(形容)도 끝이 없고 모양도 다양하다. 크기로는 고래등이,  맵시로 보자면 구름 탄 청학(靑鶴)이 두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
전통문화 창달(暢達)의 큰 뜻을 세운 그의 열정과 영도력(領導力)을 높이 기리고 후대에 널리 알리고자, 중지(衆志)를 모으고 정성을 다하여 빛이 있는 여기에  송덕문(頌德文)을 새겨 세운다.

2014년 6월 13일
글: 춘류 류영직
화천한옥학교 학장 한진 외 교직원 일동
화천한옥학교 총동문회 회장 류영직 외 동문 일동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이장 이종석 외 주민 일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정갑철 화천군수,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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