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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청
 강원도 화천군청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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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집에 가다가 다시 출근했어요? 왜 이렇게 빨리..."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각은 오전 8시 30분 경이다. 느린 걸음으로 북한강변을 따라 걸어서 출근하면 30분가량 걸린다.

이보다 빠르게 출근하는 경우는 집사람과 말다툼을 한 날 또는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다. 지난 주 어느 날, 아침회의 자료 검토를 위해 8시 좀 못미처 사무실에 도착했다.

모든 부서의 사무실 문들은 묵직한 열쇠로 굳게 잠겨있다. 창문을 열었다. 참새들의 요란한 지저귐이 정겹다. 신선한 녹색바람은 약간의 끈적함을 머금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자판기 커피 한잔의 넉넉함이 좋다.

그런 적막도 잠시. 떨그럭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옆 사무실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도둑이라도 들었다면 일찍 출근했으면서 모른척한 내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옆 사무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누군가 혼자 열심히 책상을 닦고 있다. 사무실 바닥은 약간의 물기가 남았다. 이미 바닥 청소를 마친 모양이다. 도둑은 아닌 게 분명했다. 어떤 도둑이 남의 사무실 청소를 하겠나!

사무실 문을 연 나를 돌아본 사람, 낯익은 얼굴이다. 우리 부서를 유독 많이 찾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직원임을 기억한다. 만날 때마다 특별히 인사를 잘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소속된 기획 감사실은 사업부서가 아닌 행정지원 부서다. 수시로 일반서무나 주무담당을 소집해 군정에 대한 방침을 전달하고 그에 따른 자료를 요구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전달을 받은 것으로 끝이다. 다시 묻거나 질문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데 그 친구는 유독 우리부서를 자주 찾았던 기억이 난다. 전달 받은 것이 정확한지 확인을 하기 위함인 듯 했다. 적극성이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요즘 이런 직원이 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다

"민원인인가?"

몇 년 전 복도에서 내게 인사를 하는 직원을 두고 실장은 그렇게 물었다. 순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직원들을 저렇게 모를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딱 그 상황이다. 1년 혹은 2년 전에 들어온 직원들을 잘 모르겠다.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사람. 직원인지 주민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인사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지도 모르면서)그 사람이 고개를 숙인 만큼만 같이 숙인다.

섭섭했던 기억 때문이다. 말단시절, 어떤 계장은 내가 인사를 하면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반가워요'라는 빈말 한마디 없었다. 그것이 서운한 감정으로 오랜 기간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길용태 주무관
 길용태 주무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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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나오면 같이 하지, 왜 혼자 청소를 하고 그러세요?"

화천군청 환경관리과 길용태 주무관. 그는 지난해 12월 임용됐다고 했다. 부서에서 막내인 사람이 일찍 출근해 청소를 하는 게 도리 아니냐는 말도 했다. '매일 이렇게 일찍 출근해요?' 라는 말에 발령이후 줄곧 그래왔단다.

요즘 젊은 직원들을 보면 가끔 영역 다툼을 한다. 뭔지 궁금해서 내용을 들여 다 보면 '그건 내 일이 아니다'라는 거다. '내가 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적 없다. 규정 따지고 업무분장 따져가며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참 별나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그 직원의 (청소를 하는)행동에 대해 다른 직원들을 전혀 모른다는 거다. 느지막이 출근을 한 그 부서 직원들은 사무실이 깨끗하기 때문에 청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알 필요도 없다. 그냥 원래 그랬거니 한다.

당신이 우렁각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난 1989년 공무원 신규발령을 받았다. 3일째 되던 날, 8시 40분쯤 출근한 내게 선배직원은 다짜고짜 화를 냈다. "글세, 내가 뭐하는 놈일까?"라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그냥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꺼내는 게 상책 같았다. 대체 뭐가 죄송한지 모르면서 말이다.

"당신은 적어도 한 시간 전에 출근해서 선배님들 캐비넷에서 서류 꺼내 놓고, 재떨이 비우고, 청소를 해야 하는 겁니다."

눈치가 없어서겠다. 바로 위 고참 직원이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면 한동안 내가 뭐하는 놈인지 몰랐을 거다. 같이 하면 수월할 일을 말단이란 이유로 혼자 해야 한다는 건 대단히 옳지 않다는 생각을 안했던 건 아니다.

기왕 하는 것 과잉충성을 하기로 했다. 한밤중에 사무실로 나와 출장 후 복귀를 못한 직원들 서류도 정리했다. 어느 선배직원은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과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요일 아침에 서류를 꺼내 놓고 저녁에 집어넣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이른 아침, 타직원들 보다 일찍 출근해 청소를 하는 행위가 뭐가 대수냐 라고 말할지 모른다. '신입인 내가 미리 청소를 해 놓으면 그 시간에 선배직원들은 주민들을 위한 보다 유익한 일을 할 것이다'는 것이 길용태씨의 생각인 듯 하다.

내일쯤 그 친구를 만나면 "당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우렁각시는 될 수 없습니다. 앞으론 힘든 일은 같이 하도록 하세요"라는 말을 해 주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길용태, #화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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