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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충북교육감(왼쪽부터), 민병희 강원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자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감 당선자 상견례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손 잡는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 김병우 충북교육감(왼쪽부터), 민병희 강원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자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감 당선자 상견례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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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치러진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며 교육현장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2010년에 있었던 첫 민선교육감 선거에서 16개 시도 중 보수성향 10명, 진보성향 6명이 당선되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한국의 교육현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입시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 더 나은 일자리를 잡기 위해 전국의 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경쟁의 트랙 위를 내달리고 있다. 모두가 통과할 수 없는 좁은 문으로, 그러나 모두를 밀어넣는 이 획일화된 교육체계는 필연적으로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불러왔고 지난 수십 년간 사교육이 공교육을 잠식하면서 학교현장은 그야말로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교사는 학생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학생들은 학교수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학업성적에 대한 지나친 스트레스는 청소년 비행, 학교폭력, 왕따문제, 청소년 자살 등의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평균이 100일 때 72.54점으로 최하위라는 조사결과도 더는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수월성 위주의 교육풍토가 결코 희생되어선 안 되는 것들을 희생시켜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변화와 개혁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과제다.

진보진영의 압승으로 끝난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는 한국교육의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후보시절이던 지난 5월 19일 '무상급식 실시', '혁신학교 확대', '고교평준화 확대', '교육복지 강화', '친일 교과서 반대' 등의 공동공약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공약들은 대부분 하나의 가치로 수렴한다. 형평성이다. 이들 공약을 들여다보면 그간 수월성 위주로 행해졌던 교육에 형평성의 가치를 주입하고 그로부터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혁신학교' 등의 실험학교를 확대하여 공교육의 자활을 도모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수월성 위주의 교육현장에서 낙오되어왔던 이들을 다시금 공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나 진보교육감들의 당선이 교육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교육의 목적을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이들 교육감의 이념에 동조하는 이들조차도 대입이라는 지상목적을 도외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최대의 이슈였던 혁신학교가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획일화된 경쟁에서 벗어나 나름의 교육목적을 달성하려는 혁신학교이지만 우리 교육현실에서 과연 입시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냐는 것이다. 혁신학교가 입시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당장에 그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고 성과를 낸다면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또 다른 특목고나 자사고로 변질되기 쉽다는 일각의 우려도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비틀린 교육체계 속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내세운 공약은 일회적 대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지속적 대안은 될 수 없다. 입시를 향한 획일화된 교육경쟁은 국가교육정책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타파할 수 없는 것이고 이는 교육자치를 위한 기관인 교육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깊이 연관된 뒤틀린 교육풍토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이를 부추기는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은 교육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하물며 교육의 목적에 대한 사회적 담론조차 형성되지 못한 빈곤한 교육풍토 속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 몇몇의 당선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긍정적인 사실은 진보성향의 교육감 당선과 이들이 추진할 공약이 큰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는 점이다.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하나의 정책은 정책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갈등과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 교육이 지닌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고 대안 마련의 필요가 이야기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들의 당선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의 줄 세우기는 결코 우리 교육의 방향이 아니다. 배우고자 하는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더불어 학습하며 건전한 교육목적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의 나아갈 길이어야 한다.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사회의 시민은 오직 이를 통해 길러질 수 있을 것이다.


태그:#교육감, #교육감 선거, #지방선거, #조희연, #고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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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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