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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탐욕이 부른 예고된 인재, 피해를 키운 무능한 대처, 오보와 왜곡, 망언으로 점철된 언론의 민낯은 피해 가족의 가슴에 매일같이 비수를 꽂는다. "치유를 말하기 전에 상처부터 주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오마이뉴스>는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는 피해 가족들의 아픔을 생생히 기록하는 한편, 진정한 치유 방안을 고민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살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4월 2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지나가는 해경 구조함을 바라보고 있다.
살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4월 25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지나가는 해경 구조함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심리치료요? 정부가 화끈하게 나서주면 우리들 마음은 자연스럽게 치유된다니까요."

박종대씨의 목소리에는 답답함이 묻어났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들 수현(18)군을 잃은 박씨는 '장례 이후 심리 상담을 받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그게 먼저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지난달 26일 아이의 발인을 마친 박씨는 정부의 미적지근한 사고 대응책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특히 해경이 세월호 사고 검경합동수사본부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울분을 표했다. '공범'과 다름없는 해경에게 수사를 맡기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박씨는 수현군이 구조되지 못한 원인을 영영 밝혀내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청장을 위시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해경 책임자들만 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도끼라도 들고 쫓아가고 싶은 심정"이 드는 그였다. 박씨는 "정부가 자식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는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왜 문제투성이 배에 타야 했는지, 사고가 났는데도 구조되지 못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으면 아이에게 평생 미안함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적극 나서 억울함을 풀어준다면, 나도 아이를 편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피 쏟는 사람에게 심리상담? '칼질'부터 멈춰야"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 가족들은 이미 심각한 심리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 당국의 지지부진한 구조·수사·책임자 문책,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상처받는 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전문가들은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 문책·처벌에 집중하는 자체로 상담치료보다 더 큰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정부는 사고 직후부터 광범위하게 심리상담·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진도체육관·팽목항·합동분향소에는 정신과 전문의 등이 상주하고 있고, 안산에는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유가족 방문상담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직접 상담을 요청하는 피해 가족이 많지 않다. 현장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희생자 유가족의 30% 정도는 부재나 거부로 방문상담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연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심리상담이 효과를 나타내려면 정부와 언론이 가하는 심리적 외상부터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휘두르는 '칼질'이 계속되는 한, 피해 가족들의 상처가 아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피해 가족들 안에서는 사고 직후부터 정부·언론이 휘두르는 '흉기'에 상처입어 왔다는 하소연이 나왔다. 초동대처 실패, 구조작업 지연, 부처 간 책임 돌리기는 부모들의 답답함을 불안과 분노로 확대시켰다. 언론의 계속되는 오보와 왜곡보도에 싫증난 가족들은 지난 8일 재난방송주관방송사인 KBS 앞에 주저앉아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청와대 간 피해 가족들, 불신·불안 심해"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지난 9일 새벽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한 부모가 잠들어 있다.
꿈에서라도 만났으면...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입구에서 밤샘 노숙을 한 가운데 지난 9일 새벽 아들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한 부모가 잠들어 있다. ⓒ 권우성

정부와 언론이 내리꽂는 '비수'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종자 20명(15일 오후7시 기준)은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돼가도록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했다. 검찰은 해경 책임자보다 청해진해운 일가를 소환하기 바빴고, 일부 주요 언론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구원파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박종대씨 등 유가족들이 "구조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 진상규명이나 관계 당국 책임자 처벌이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 대표단은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도 이같은 불안함을 토로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매일 상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치유를 진행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금 저희에게 제일 좋은 치유 방법은 수많은 문제와 억울함이 하나씩 해결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심리 전문가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작업이 명백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피해 가족들의 불안·분노가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는 피해 가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항의 농성한 것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심신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청와대까지 갔다는 건, 대통령 말고는 믿을 곳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만큼 불신과 불안의 정도가 높다는 겁니다. 지금과 같은 심리 상태가 계속되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극단적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어요. 실제로 살인 사건 피해를 입은 한 유가족이 그런 감정 상태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 교수는 "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의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떤 심리 상담을 해도 치유가 안 된다"며 "희생자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기면, 유가족들이 죄책감을 덜고 심리적으로 안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에서 심리안정팀을 총괄하고 있는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관리팀장도 "사고 관련자들이 직접 사과를 한다든가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 피해 가족들의 마음이 풀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치 희생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차이점

분향소 앞 사흘째 침묵시위 벌이는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사흘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분향소 앞 사흘째 침묵시위 벌이는 유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특검 도입과 정부의 철저한 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사흘째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언론이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 교수는 "전담 공무원이 모든 부처에서 취합한 참사 관련 정보나 수사 진행상황을 수시로 유가족들과 공유하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피해 가족들 요구대로 해경을 합동수사본부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 역시 세월호 참사 관련 소식을 정확하고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 팀장은 "사고 초반에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가 계속 나오면서 피해 가족들의 불신이 더욱 커진 부분도 있다"며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면 차라리 알려주지 말아야 한다, 그게 남은 가족들의 심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 박사는 나치 희생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차이점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독일 정부와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진실을 파헤치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반유대주의를 척결한 반면, 일본은 전쟁범죄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다"며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감정에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따라 피해자 치유 정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의 지적은 지난 7일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가 발표한 호소문에서도 언급됐다. 정부와 언론이 피해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치유' 방법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들은 이제라도 실종자 구조에 실질적인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고 싶습니다. (중략) 검찰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가족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정부는 검찰의 수사내용을 우리 가족대책위에 공개해 주십시오."


#세월호침몰사고#세월호참사#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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