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은 개교 기념일입니다. 하루 쉬는 날이지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 선생님들과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풍광 좋은 곳에 가서 재밌게 놀다 올 생각이었습니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던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신 집에서 책이나 보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아침에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학교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교정을 거닐다가 화단에 핀 꽃들에게 눈이 갔습니다. 눈부신 오월의 하늘 아래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꽃에 취하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한 순간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꽃에서 눈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최근에 읽은 어느 시인의 시구입니다. 저는 공기까지는 아니어도 잠깐 꽃에 취해 있었던 것이 죄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흔히 아이들을 꽃에 비유합니다. 교육의 꽃은 아이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꽃과 아이들을 동일시하여 마음이 울컥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아이들의 메타포인 꽃을 바라보면서도 꽃에 취해 있었을 뿐, 아이들을 떠올리지 못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 세월호 참사에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단 한 줄의 추모의 글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추모의 공간이 만들어지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노란 종이 위에 빼곡히 뭔가를 적고 있을 때도 제 머릿속은 하얗게 바래어 있었습니다. 어떤 단어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아이들이 써놓은 추모의 글들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추모의 글
 추모의 글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하늘이 무너진 것일까?
 하늘이 무너진 것일까?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오늘 아침 학교에 가고 싶었던 것은 꽃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메타포로서의 꽃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린 넋들에게 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학교로 걸어가면서 저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꽃을 드리나이다.
못다 핀 꽃이여, 그대에게
이 꽃을 드리나이다.

 장미
 장미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잘 가소서!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잘 가소서!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꽃 사진을 찍으면서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의 얼굴도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얼굴을 떠오르지만 이름은 가물가물한 아이들. 들꽃을 보면 생각이 납니다. 한 번도 이름으로 불러준 적 없는 아이들! 한 번 더 다가갔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요즘 저는 아이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수업시간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기 때문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핸가 아이들과 쪽지 상담을 할 때였습니다. 한 아이가 건네준 쪽지에는 딱 한 줄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 제 이름은 너가 아니에요. 저도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노랑붓꽃
 노랑붓꽃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노랑붓꽃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천 개의 바람이 되소서!
▲ 노랑붓꽃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천 개의 바람이 되소서!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바로 그해에 있었던 일입니다. 청소시간이었는데 쓰레기 장 근처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아이 바짓가랑이 사이로 뭔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눈곱만큼이나  작은, 작아서 더 아름다운 예쁜 노란 꽃이었습니다. 꽃이라기보다는 화가의 빠렛뜨에 흩뿌려진 한 점 노란 물감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꽃이었습니다. 꽃이기 전에 하나의 엄연한 생명이었습니다. 그 해에 쓴 시입니다.

누가 나를 끌었을까
길 가다 말고 몸을 굽혀
한참을 바라보니
꽃의 형상이 보였다.

저 작은 것들은
어쩌자고 피었을까
꽃이 피었다기보다는
생명이 피었다고 해야 옳겠다.

해묵은 낙엽더미에서
겨우 핀 꽃들에게
차마 사진기를 들이대지 못하고
눈으로만 찍고 또 찍다가

넌 왜 피었니?
그쪽은 왜 피었는데요?
한 마디씩 주고받다보니
기막힌 마음이 더 했다.

난 왜 피었을까?
묻고 또 묻다가
쪼그린 자세를 풀고 일어설 때는
묵은 피가 도는지 가슴께가 아팠다.

오랜만에
겨우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졸시, '겨우 핀 꽃' 전문

 꽃마리
 꽃마리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괭이밥
 괭이밥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외양이나 다른 조건들과는 상관없이 말이지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그 우주적 존재들을 마치 다른 상품과 교환해버리듯 세상 밖으로 밀어낸 자들이 있습니다. 성장의 기쁨을 누려야할 아이들이 공부 기계가 되거나 말거나 명문대 진학률에만 혈안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싸울 것입니다. 싸워서 이길 것입니다. 참사 후, 며칠 째 실어증에 걸려 있다가 마음에 미음을 떠먹이며 정신을 차리고 쓴 시의 일부입니다.        

나는 누군가와의
싸움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갉아먹는 모든 관행과
내 안에 뿌리내린 온갖 관성과
뉘우쳐도 진실로 뉘우치지 않는
너의 끝 모를 탐욕과 
뉘우쳐도 진실로 뉘우쳐지지 않는
나의 철저하지 못함과.  

나는 아직 애도하지 않았다.
나는 싸울 것이다.
싸워서 이길 것이다.
그때 비로소 참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이들아!
그때까지만 나를 용서해다오.

그때까지는
나를 용서하지 말아다오.

-졸시, '나는 애도하지 않았다' 부분

 금낭화
 금낭화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금낭화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훨훨 자유로워지소서!
▲ 금낭화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훨훨 자유로워지소서!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오늘 개교기념일인데도 학교에 간 것은 미뤄두었던 애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애도의 시간이 지나면 싸움의 시간이 도래할 것입니다. 교육을 상품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니는 자가 제 싸움의 대상입니다. 수백 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결국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아이들이 생명이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들이 그들의 눈에는 선박에 적재된 화물보다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된 것이지요. 

그들과 싸울 것입니다. 싸워서 이길 것입니다. 그것만이 꽃다운 나이에 억울하게 숨진 어린 넋들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드리나이다. 어린 벗들이여!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개망초
 개망초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개망초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안녕!
▲ 개망초 꽃을 드리나이다, 부디 안녕!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태그:#세월호 참사, #단원고 학생들, #꽃과 아이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