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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신이다. 에든버러에 가면 흄의 동상이 있는데 엄지발가락이 반질반질하다. 흄의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에 있다고 전해져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만지고 가서 그리 된 것이다. 그야말로 속설이다. 스코틀랜드는 골프와 스카치 위스키 원조의 나라이다. 전통의상 킬트로도 유명하다. 인구는 영국 전체인구의 1/10이지만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영국안의 또 다른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데이비드 흄은 12살에 법학부에 입학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대부분의 명문가 집안에서 하던 공부법이었다. 법학부에 들어가긴 갔으나 흄은 문사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문학, 역사, 철학 이른바 인문학의 3인방이다. 여러분도 만약 인문학도라면 이 세 분야의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젊은 날의 흄은 너무 공부를 많이 하여 신경쇠약에 걸렸는데, 의사는 이를 '학자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흄은 열 여덟살 정도 되었을 때 남다른 사고를 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아마도 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 같다. 흄의 비판적인 사고는 당시 철학계로 향하고 있었다. 데카르트이후 근대가 열린 후 당시 철학자들은 약간의 오만에 빠져있었다. 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착각이나, 또는 철학자들의 논의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는 뜬구름을 잡는 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흄은 이러한 것에 찬물을 끼얹은 철학자이다.

흄은 회의론적 경험론자이다. 과연 우리가 인과율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되묻고 있다. 밥을 먹으면? 이라고 누군가 물으면 우리는 배가 부르다라고 대답한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 이것이 인과율인데 이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그럴 것이다 하고 믿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흄의 지적이다. 내일은 태양이 뜬다도 그냥 맞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경험을 해와서 맞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을 계속해서 흄은 무신론자나 이단론자로 의심받기도 하였다.

흄의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에든버러 대학교에 지원서를 냈지만 무신론자라는 의심 때문에 번번히 낙방했다. 흄은 심기일전하여 삼십대 초반에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라는 책을 내고는 세상의 반향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과연 내 책을 세상은 어떻게 평가를 해줄까? 잔뜩 기대했던 흄은 이내 실망하고 만다. 세상은 그의 책에 대해 별 반응이 없었다. "인쇄기에서 나오자 마자 파쇄되었다!" 흄은 자신의 책을 이렇게 평했다.

흄의 성공은 철학책이 아니라 역사책으로 이루어졌다. 사십대 초반에 쓴 <영국사>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경제학을 전공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사례도 있다. 흄의 <영국사>는 당시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흥망사>라는 책과 함께 양대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라 돈도 많이 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8세기 사람들은 요즘 우리들보다 책을 더 많이 읽지 않았나 생각된다. 영국 사람들이 그랬고, 프랑스 사람들이 볼테르나 루소의 책에 열광했으며, 미국 사람들도 페인의 <상식>등의 책을 읽으며 독립의 꿈을 키워나간 것이다.

흄의 철학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 칸트이다. 오죽하면 칸트는 흄의 철학을 접하곤 11년간이나 숙고한 끝에 저술에 들어갔을까? 칸트가 흄을 경이롭게 본 것은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그의 공격이다. 전통적인 철학에서는 세상을 설명하는데 인과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흄은 이러한 당연한 인과론조차도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에 대해 흄이 행한 공격을 아주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칸트는 평했다.

흄의 철학에 자극을 받은 칸트는 11년간 명상후 흄의 인과론에 대한 공격을 되받아쳤다. "절대적인 인과법칙은 없다. 인과론이라는 것이 사실을 습관에 의해 귀납적으로 확립된 개연성에 불과하다'라는 흄의 주장에 대해 절대적인 인과성이라는 것은 흄처럼 사물들에 대한 경험에 의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관념의 연합이라기보다는 "감각경험 저편에 있는" 것, 즉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칸트는 보았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 칸트가 흄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킨 분야이다.

너무 어려우니 가상적인 대화로 풀어보자.

기존의 형이상학자들: 원인은 결과를 내포하고 있네. 즉, 필연적인 인과율이라는 것이 있고 이것으로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지.

흄: 과연 우리의 경험으로 필연적인 인과율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단지 근접성일 뿐이죠. 각각의 경험들이 근접하여 일어남으로써 우리는 마치 그것을 필연적이라고 착각할 뿐인 것이죠. 우리는 경험을 하면 흔적이 남죠.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것은 필연적인 인과율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속에 있는 흔적의 연합일 뿐이란 말입니다.

칸트: 자네가 말한 흔적의 연합이라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의 마음이 항상 일정해야 하지 않겠나? 마음이 일정하지 않다면 시시때때로 다른 경험들만이 존재할테니까. 그러면 흔적의 연합조차도 없지 않겠나?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고정성을 확보하려면 경험이전의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의식의 선험이지. 선험은 고정적이고 불변하니까 우리에게 일정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잣대가 되어주는 것이지.

흄은 도덕이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의 행동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다. 감정이 도덕의 원천이다. 도덕은 이성에 의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그것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여기서의 감정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느끼는 감정이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감정 즉, 공감이다. 흄의 이러한 사상은 공리주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인간의 가슴을 사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가슴의 법칙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중요시 한 흄, 죽기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부드러운 성격의 사나이였으며, 내 자신의 주인이었고, 개방적이고, 사교적이며, 친절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기는 쉬워도 적대감을 갖기는 어려운 성격이기도 하다. 감정상으로 나는 온유한 편이다.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싶다는 소원이 내 삶을 지배하는 열정인데, 적잖이 실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유쾌한 기분이 상한 적은 없었다."


#김재훈#인문학 교실#철학칼럼#데이비드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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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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