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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동물기>책표지
 <조선동물기>책표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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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사주나 궁합, 토정비결 등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점치는 중요한 요소였던 열두 동물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이 어떤 띠인가로 그 사람의 특성과 성품을 연결 지어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풍성한 재물을 상징해온 돼지가 꿈에 보이면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동물은 우리의 인식과 활동에 중요한 요소다.

열두 동물과 돼지뿐이랴. 잉어처럼 태몽과 연결되는 물고기나, 부부의 금술을 상징해온 원앙이나 기러기, 반가운 소식을 상징하는 까치와 같은 새도 있다. 여하간, 동물들이 이런 상징이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 사회 구성원들의 특정 동물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조선 동물기>(서해문집 펴냄)는 <성호사설>이나 <지봉유설>, <청성잡기>와 <산림경제><담정총서>와 같은 고전에 기록된 동물에 관한 것들만을 뽑아 엮은 책이다.

책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는 <성호사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은 이익이 평소 메모해 둔 것들과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을 1740년경에 집안 조카들이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모두 30권 30책. 천지문, 만물문, 인사문, 시문문으로 구분해 정리된 이 책은 견문이 넓고 고증이 명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오늘날 풍속은 자벌레가 허리를 움츠리고 펴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모습과 똑같다. 진실로 죄를 지어도 벼슬만 구할 수 있다면 살인을 빼고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마음속으로 원하는 벼슬을 구하니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중략) 더욱이 사람에겐 닭보다 못한 것도 있다. 닭들이 먹을 것을 다툴 때는 날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싸우다가도 그 일만 끝나면 서로 다투던 일을 잊은 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지낸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폭포의 물이 용솟음치듯 노여운 모습을 가라앉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반드시 상대를 죽여 없애버리고자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결코 뉘우치지 않으니, 이야말로 차마 못할 일이다." <성호사설>-(<조선 동물기>에서)

이는 <성호사설> '닭을 키워보면 편당(기자 주: 특정 당파에 치우치는 현상)을 알 수 있음'이란 제목의 글 중 일부다.

닭들이 쪼거나 맞는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맹렬히 쫒는 모습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쫒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다. 

식욕과 성욕, 번식에 필수적인 본능은 모든 동물에게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큰 뇌를 가졌기 때문에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중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동물보다 장점인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망각한 채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부류들이 있다.

나아가 욕심을 채운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온갖 추잡한 짓거리들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부류들을 이익은 '닭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략 270여 년 전의 생각이건만 글을 읽는 순간 몇몇 정치인들의 모습이 쉽게 떠올랐을 정도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명태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북어라고 불렀다. 노봉 민정중(1628~1692)이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이 들어맞은 셈이다. 내가 원산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 <임하필기>-(<조선 동물기>에서)

<조선 동물기>에서 다루는 동물은 큰 범위의 동물이다. 말이나 소, 돼지, 닭, 오라 등 흔히 가축이라 부르는 동물만이 아닌 고래, 명태, 복어, 해마 등과 같은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나, 개구리, 두꺼비, 뱀 등과 같은 파충류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먹는 생선에 관한 것들도 접할 수 있다.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1814~1888)의 문집인 <임하일기>의 명태란 명칭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다.

'명천에 사는 태씨라는 어부가 잡아 관찰사에게 헌상했으나 아무도 그 이름을 몰라 명태라고 부르게 했다'는, 명태라는 명칭의 기원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미 많이 알려졌다. 때문에 이 명칭이 생겨날 무렵부터 우리가 명태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책에 의하면 우리의 문헌에서 명태에 관한 기록은 조선 중기인 중종 25년(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라고. 인조와 숙종 재위 시대에 살았던 노봉 민정중(1628~1692)이 "300년 뒤에는 귀해질 것"이라 예견할 정도로 명태라는 명칭 이전에 이미 많이 잡아먹은 생선이었다고 한다. 한강에 쌓아놓은 땔나무처럼 쌓아놓고 팔만큼 말이다.

여하간 놀라운 것은 300년이 조금 넘는 지금, 당시의 예견처럼 명태를 한반도 근해에서 더 이상 잡을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한류성 어족인 명태는 한반도 주변의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한반도 근해에서 잡기가 매우 힘든 생선이 되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처럼 워낙 많이 잡혀 겨울철 값싸게 먹었던 명태는 이제 수입과 원양에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

300여 년 전의 민정중이 가볍게 흘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 우리나라의 기온 변화와 명태의 생태적 특성을 세심하게 관찰한 후 말했을 것이고, 회자되어 이유원에게까지 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명태에 관한 이런 것들은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활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책 <조선 동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책은 조선 사람들 눈에 비친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 중에는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이 있어 칠성어로 불린다는 물고기 삶은 물로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면 천연두를 막을 수 있다거나, 소는 코로 소리를 듣는다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무쇠 말편자를 만들었는지 등을 기록하였는지라 자료적 가치가 높은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떤 동물들과 살아왔으며, 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이 책 <조선 동물기>를 통해 알아봄도 나름 재미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동물학계에서는 동물이 색깔을 나타내는 이유를 신호를 전달하고,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본다. 동물은 색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의 신체적, 감정적 상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많은 어류가 매우 화려한 혼인색을 나타내 자신이 번식기에 있음을 알린다. 포식자, 천적과 기생동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다른 사물로 위장하거나 다른 동물을 흉내 내기도 하며 다른 동물을 혼란에 빠지게 할 때 색을 이용한다. 얼룩말의 세로줄 무늬는 흡혈파리의 눈을 혼란시켜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포유류가 가지고 있는 멜라닌 색소는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신체가 화상을 입지 않도록 막는다.

그리고 동물이 색을 나타내는 이유가 다양한 것처럼 색을 나타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멜라닌과 같이 빛을 흡수하는 색소, 문어처럼 신경계의 조절을 받아 다채롭게 색을 변화시키는 색소 세포, 조류의 깃털이나 곤충의 표면에서 빛을 굴절·산란시켜 색을 만드는 구조적 체섹, 그리고 반딧불이나 해파리에서 나타나는 생물발광에 의한 색소가 그렇다." -(<조선동물기>)에서.

위의 인용은 <성호사설> '말의 생김새와 빛깔'이란 글에 동물학자 정종우씨가 쓴 해설. 그간 여러 권의 고전 관련 책을 쓴(<청소년을 위한 택리지>,<한자의 신>, <한국의 모든 지식>,<고사 성어랑 일촌 맺기>등) 김홍식이 옛 문헌에서 동물 관련 글들을 뽑아 엮고, 모든 글에 동물학자 정종우씨가 해박한 동물 지식을 해설로 넣었다.

그래서 책은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힌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 두 명의 이와 같은 조합의 글 씀이 책의 가치를 훨씬 살려줌은 물론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의 수고와 해박한 지식이 더해져 훨씬 가치 있어지는 이런 책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조선동물기>(김흥식(엮은이).정종우(해설) | 서해문집 | 2014-03-15 |15,000원



조선동물기 - 조선 선비들 눈에 비친 동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세상

김흥식 엮음, 정종우 해설, 서해문집(2014)


#조선동물기#명태#닭#성호사설#지봉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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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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