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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겉표지
 <농담> 겉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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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65년 서유럽의 변방 체코에서 서른 중반의 나이에 자전적 소설을 쓴 작가가 있다.

이 소설은 훗날 그 유명한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밑거름이 된다. 소설의 제목이 재밌는데 '아주 하찮은 일'이라는 의미도 갖는 <농담>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서른  중반의 작가는 밀란쿤데라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농담처럼 여길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장난은 개인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 루드빅이 찬양이 금지된 사상과 인물을 과격하게 언급함으로써 경험하게 된 깊은 나락의 원인과 과정에 함께하는 인물들을 좇는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 2차 세계 대전 후 세상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로 굳어졌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하면서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로 사회주의는 공산당 일당독재로, 각 체제의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변형되면서 모든 가치는 인간 외적인 것들에 집중되고 말았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시스템은 권력자들의 욕망에만 조준되어 있었다.

민중의 굶주림을 외면한 소련이 붕괴되면서 일극체제의 막강한 권력에 도취된 미국 역시 힘을 잃고 있다. 인간성 보다는 자본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한 결과다. 반세기도 못 버티고 허물어져가는 2강 체제를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과 아래로부터 다시 말해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은 모든 가치는 그릇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복지국가들의 약진이 바람직한 사회, 바람직한 국가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소설 <농담>에 따르면 지금은 유럽연합의 회원국인 체코는 50년쯤 전엔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다. 체제의 이론적 학문적 토대가 되는 대학으로부터 주인공의 비극은 시작된다. 여자친구에게 보낸 주인공 루드빅의 농담이 적힌 엽서는 본인의 대학생활을 끝장나게 했으며 스스로를 강제 징집 대상자로 전락시켰다.

주인공이 아무리 농담이었다고 별것 아닌데 뭘 그러느냐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체제에 교조적으로 종속된 대학생들 만큼 무서운 집단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자존심을 접고 빌었어야 했지만 지성인의 깜냥으로 냉소를 유지하던 루드빅은 그냥 나락을 선택하고 말았다.

여자1, 마르케타
주인공 루드빅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스무살 시절의 그 재앙을 "나는 바보같은 농담이나 즐기는 치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마르케타는 농담을 절대 이해 못하는 치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자신의 운명을 희화화 하고 있다.

루드빅의 여자들에 집중하면 소설 <농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 번째 여자는 대학시절의 재앙을 가져다 준 마르케타인데, 그녀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 정도로 책임감 정도는 있는 후배였다. 물론 냉소와 자존심으로 무장되어 있던 루드빅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한다.

여자 2, 루치에
두번째 여자는 감옥과도 같은 군대시절 루드빅에게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 였던, 순정한 여인 루치에다. 그녀는 루드빅의 병영생활에 의미를 부여해 준 최초의 인간이자 여인이기도 했고 제대 후 희망하는 삶의 반려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둘에게 육체와 정신에 깊게 음각된 젊은 날의 상처가 그들 사이에 벽으로  가로 놓이게 된다.정신적으로 유린 당한 루드빅과 육체적으로 유린당한 경험이 있는 루치에가 육체적 정신적 결합을 완성하기엔 그들이 아직 어렸다.

여자 3, 헬레나
헬레나는 대학시절의 루드빅을 나락으로 내 몬 동기생 제마넥의 아내다. 루드빅은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를 유혹해 성적으로 유린하기로 계획한다. 15년이나 지나 모두에게 희미한 기억으로 남은 루드빅 개인의 재앙은 지극히 개인의 일일 뿐 누구의 뇌리에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복수극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나버린다.

머리 좋은 제마넥은 시대의 조류에 편승해 더욱 승승장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내를 버리고 자신이 가르치던 젊고 아름다운 학생을 애인으로 거느리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마넥은 자신의 잘못을 알 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공소시효 또한 지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운 나빴던 친구로서 루드빅을 기억할 뿐이다.

루드빅이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과 추구한 가치

젊은 날의 사랑은 가치롭지만, 사소한 오해 또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그 진행방향을 알 수 없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오해가 풀리고 상황이 이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드빅이 허위와 냉소를 버리고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은 루치에일 것이며, 그가 추구한 가치는 '바보 같은 농담'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루드빅이 설계한 복수는 헬레나의 설사처럼 더러운 악취를 풍기며 그조차도 미덕일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선과 악이 순환하면서 올바른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악이 계속적으로 진화하면서 올바른 가치의 정의를 조금씩 허물어 뜨려 온 것인지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라비아라는 지역의 민속음악과 '왕의 행차' 등 소위 전통이라는 것들은 그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느리고 착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느리고 착한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빠르고 못 된 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하는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잘못된 것들을 고칠 시간도 없고, 시간의 부족은 의지부족의 핑계로 적합하다. 루드빅의 입을 통해 내뿜는 밀란 쿤데라의 독설이 제발 거짓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 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 못이 잊혀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농담>,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민음사(1999)



농담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민음사(1999)


태그:#농담, #밀란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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