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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을 넘기며 긴장된 맘으로 되뇌었다.

'난 학부모다, 학생이 아니다. 난 학부모다, 학생이 아니다'
'그래, 난 학생이 아니야! 학부모라구~'

오늘은 아들놈 선생님과 면담이 있는 날이다. 어제까지는 아무 느낌 없었는데 면담시간이 가까워지며 내 맘은 콩당콩당 뛰고 있었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했던 나인지라 학부모가 되어서 면담가는 것조차 떨리는가 보다.

나도 초등학생일 때 무던히도 선생님 속을 썩였다. 그 덕에 집에 가면 아버지께서 휘두르는 싸리 빗자루와 친해지는 계기도 됐다. 숙제도 하기 싫었고, 특별활동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래서 수업 팽개치고 놀러 다닌 적도 있다. 논두렁 밭두렁 뛰어 다니다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몰래 교실로 들어갔다.

더구나 미술 준비물이나 탐구생활 과제물은 유독 나한테만 시련을 주는지. 도대체 내 머리엔 모든 준비물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과제물을 내주는 순간에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었나 보다.

뿐인가? 아! 산수!! 난 산수가 너무 싫었다. 지금도 숫자와 거리를 두고 사는 건 다 그때의 트라우마(?)이다. 학교 다닐 적 매 맞을 때는 숫자를 세며 맞았다. 그래서 더 숫자가 싫다.
결정적인 것은, 대학교 들어갈 때 수학이 싫어 택한 전공이 경제학과였다. 그런데……. 아뿔싸! 경제수학이 버티고 있었다. 미적분에 행렬까지……. 그래서 난 대학교 다니는 내내 가늠할 수 없는 수의 세계보다 단순한 여섯 줄 통기타의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

지나간 내 어릴 적 생각에 젖어 한참을 서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난 아들놈이 급 불쌍해졌다. 이놈은 분명 나를 닮아 기억력도 안 좋고 숫자와도 거리가 멀 텐데…….오늘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난 스스로 위로하고 또 아들놈을 가여워 여기며 거울 앞에 섰다.

일 년에 한 두번 입을까 말까하는 캐주얼 정장
▲ 나름 아끼는 옷 일 년에 한 두번 입을까 말까하는 캐주얼 정장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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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두 번인가 입었던 상의를 꺼냈다. 이런 날 입지 않으면 아마 올해는 그냥 넘어갈 거다. 나름 아끼는 옷. 사진은 비록 후줄그레 나왔지만 입고나면 꽤 괜찮다. 직장에서는 늘 작업복 차림이니 오늘만큼은 나도 한 번 학부모 티 내보며 가봐야지. 팔을 넣고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옷으로 커버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임신 5개월은 될 즈음한 내 배다.

'다른 아버지들은 양복에 잘 차려입고 올 텐데. 어머니들도 정장 빼입고 올 텐데 나만 너무 없어 보이는 것 아닌가?'

일단 자신감을 가지고 배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 보루인 캐주얼 정장까지 꺼내 입지 않았나?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정기 면담이라 그런지 교실 복도에는 면담을 기다리는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몇 분씩 서 있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오는 학무모도 계신다. 조금 있으면 나도 저렇게 홀가분한 맘으로 나오겠지?

드디어 내 순서다. 노크를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선생님! 동안이신지 무척 어려 보인다. 나름대로 반 아이들의 여러 면들을 잘 파악하고 계셨다. 수업시간, 쉬는 시간, 식사시간에도 반 아이들을 예의주시하며 일일이 체크하고 계시는 듯했다. 한편으론 안심도 되었다.

'이런 선생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구나!'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약 30분간의 면담 후 나는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나왔다. 면담결과, 첫째 이놈! 나랑 똑같다. 마치 나의 어릴 적 비디오를 보는 듯. 한숨이 나온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며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선생님도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하나하나 돌보시느라 힘드시겠고,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라는 사회의 시간체계와 교육방법을 배워가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움직이려면 나름의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벗어나 사회성을 익히는 가장 초보 수준의 공동체가 초등학교다. 첫째 아이, 입학 후 적응기를 힘들게 거치며 지금은 나름대로 알아서 하고 있지만 많이 부족하다. 자신의 의지를 꺾을 줄 알고 지시에 따라야 하며 공동체를 위해 많이 양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니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퇴근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얘들아, 뭐 그리는 거야?"
"앵그리 버드요"

똑같이 합창을 한다.

"그래? 아빠가 더 잘 그리는 사람한테 상 준다"
"네!"

경쟁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둘째는 첫째보다 두 살 어린데 좀 아기자기하게 그림을 그리는 편이다. 색상도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고 마감도 깔끔하게 한다. 대조적으로 첫째는 강렬한 색상을 좋아한다. 크레파스 라인도 좀 투박하며 어딘가 '센' 느낌이 들게 그린다. 성격을 말해주는 거겠지.

왼쪽이 둘째 그림이고 오른쪽이 첫째 그림이다. 같은 주제이지만 둘의 성격차이인지 그림의 색상이나 크레파스로 칠하는 방법이 대조적이다.
▲ 아이들이 그린 앵그리 버드 왼쪽이 둘째 그림이고 오른쪽이 첫째 그림이다. 같은 주제이지만 둘의 성격차이인지 그림의 색상이나 크레파스로 칠하는 방법이 대조적이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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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그림을 보았다. 앵그리 버드! 왜 하필이면 '화가 난 새'일까? 스마트폰 게임에 만화까지. 각종 캐릭터 용품으로 부리나케 팔리는 앵그리 버드.

인간들에게 친숙하고 귀엽고 사랑스런 동물인 새가 왜 화가 난 채 이 세상 아이들의 놀이세계를 점령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밝고 따뜻함을 배워야 할 시기에 새들이 화내는 모습을 먼저 배워야 하는 상황이 좀 씁쓸하다.

기업의 상업성은 어린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어릴 적 전쟁놀이는 양반이다. 아이들의 게임에 잔혹동화와 하드 스릴러물이 넘쳐나고 있다. 다국적 거대기업의 주요 타깃은 유아들과 초등학교 아이들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부모들의 지갑은 잘 열리는 편이니까. 그렇지만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거쳐 만든 캐릭터들이 결코 아이들에게 이롭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슨 꿈을 꿀까? 근심 걱정없는 행복한 꿈을 꾸거라
▲ 깊은 잠을 자는 아이들 무슨 꿈을 꿀까? 근심 걱정없는 행복한 꿈을 꾸거라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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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버드 생각에 불편한 마음, 아이들이 자는 걸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하다. 불현듯 대학교 다닐 때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보았던 표어가 떠올랐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철드는 것이라면, 난 결코 철들지 않겠다'

산다는 것이 이런 건데, 내가 살아온 날의 고민과 걱정을 이제 이 아이들도 곧 느끼게 되겠구나. 인터넷과 신문지상을 점령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들의 진위를 제대로 파악할 줄 아는 날이 머지않았다.

이때쯤이면 난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철들었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아이들을 철들게 할 수 있을까? 진실과 정의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철든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을 까는 의문이다. 밤이 깊어가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본다.

자고 있는 아이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첨엔 '뽀로로'를 좋아하던 아이. 나중엔 '꼬마버스 타요'를 좋아하다가 '또봇'으로 갈아탔다. '앵그리 버드'에 한창 관심을 보이던 아들이 이제는 '건담'시리즈에 눈을 돌리는가 하더니 오늘은 그런다.

"아빠, 친구들은 다 핸드폰 있어요"
"그래?"
"예"
"그렇구나!"
"아빠 나도 하나 사주면 안 돼요?"
"학교에서 아빠한테 전화하려구?"

벌써 핸드폰을 사 줄 때가 된 건가…….​


태그:#학교입학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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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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