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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덜란드, 도대체 넌 누구냐?

첫 캠핑이다. 론강 산책로 옆이다.
 첫 캠핑이다. 론강 산책로 옆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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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캠핑생활자가 되었다. 첫 번째 캠핑장은 론강 옆에 있는 별 세 개짜리 국립 캠핑장이었다. 90%가 노부부의 럭셔리 캠핑카, 5%가 13살짜리 아들을 동반한 또 럭셔리 캠핑카 그리고 나머지 5%가 쾌차 텐트인 우리 가족이다. 

블로그 어느 사이트에서 봤을 때는 분명 20~25% 정도가 텐트이고 나머진 다 캠핑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장소와 시간대에 따라 다른 듯하다. 즉 다국적 여행자가 많은 유명한 곳엔 텐트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것 같고, 알 만한 사람만 찾아 올 듯한 깨끗하고 산책로 끝내주는 이런 곳엔 현지인 캠핑카가 있나 보다.

여하튼 현지인들은 확실히 캠핑카가 압도적이다. 사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현지인은 우리 옆 집 뿐이었다. 나머진 다 네덜란드 캠핑카였다.

론강을 따라 산책로가 있었다. 일반 시민이 사용하는 산책로와 캠핑장 사이에 철망 펜스가 있었지만, 거리상 1m도 안 돼 시민들의 목소리, 발소리가 다 들린다. 심지어 애완견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런데 2박하면서 보니 우리 텐트 전, 후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부쩍 많이 들리고 웃음소리도 들린다.

무료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그들의 산책 시간에 아마도 우리의 캠핑이 대화의 소재가 된 것 같다. 캠핑장에서 유일한 텐트라 마음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는데... 마치 그들에겐 '응답하라 1990' 정도의 느낌인지 몰라도 왁자지껄 시끄럽다. '피이~' . 텐트를 접던 날 옆집 프랑스 아저씨에게 물으니 옛날 옛적에 부모님과 텐트를 친 기억이 있다는 투로 말씀하신다. '하아~'

마치 우리가 한국민속촌에서 무명저고리 입고 절구 찢고 마당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월급이나 받지 우린 월급도 못 받고 구경거리만 되는 느낌이다. 하필 산책로 옆이라서 그렇다.

"에이, 우리만 봐."
"웃기냐? 그럼 웃어. 니들도 우리도 행복하면 됐지 뭐. 아~ "

그런데 어찌나 바람이 강력한지... 우리 텐트를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우악스럽게 불어댄다. 어둑해지면 바람은 더 거세진다.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신기하면서도 한편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리 보금자리를 쳐다본다. 그 표정을 나에게 딱 들켰다. 그때 내 마음에 이는 미묘한 느낌. 그리 경쾌하지 않더군.

그러나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면서 첫 캠핑장과 캠퍼들에게서 느꼈던 이상한 의문이 하나씩 풀렸다. 그 날 그곳 캠핑카의 번호판은 파란색과 노란색이었고 'NL'이라 적혀있었다. 이는 즉 네덜란드 차량이란 뜻이었고 4개 국어(모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우리 차 번호판의 'F'를 보고 프랑스 국적자로 판단하여 아침, 저녁으로 볼 때마다 '봉주르'와 '봉수아'만 줄기차게 했던 것이었다.

아침이면 봉주르, 저녁이면 봉슈아. 정확히 때를 지켜 인사말을 바꾸는 그들에게서 좋게 말하면 예의, 나쁘게 말하면 '이 정도 거리를 두자', '더 이상 말을 섞지 말자'란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예의있다고 생각했고 나중엔 매정하다고 생각된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 어르신들은 프랑스 사람들의 잘난척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차량을 가진 우리를 프랑스인으로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인사만 해준 것이었다.

깔끔하게. 신속하게. 미처 우리가 '하이', '헬로우'라고 말하기도 전에.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유럽 사람들은 국가 간 서로에 대한 입장과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아주 케케묵은 역사에서부터 현재 진행형인 경제 문제까지 한 마디로 복잡하다. 어쩌나 호감국은 적고 비호감국은 많고.

5월 중순, 그 즈음은 네덜란드 어른들이 자국을 떠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따뜻한 남쪽 국가를 향해 휴가를 가는 시기였고 론강 옆 캠핑장은 '휴가 대이동'의 길목에 있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아직도 의문은 '어떻게 그날 그곳엔 네덜란드 차량이 많았던 것일까?'이다. 동호회? 일가친척? 유럽인 중 네델란드 사람들이 유독 캠핑카를 이용하여 휴가를 즐기긴 하지만 그럼에도 90%는 신기하다.

그래도 왜 그랬어요? 홀랜드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곳이 우리에겐 첫 캠핑지였는데. 우린 꽤 외로웠었는데. 쌀쌀하던 저녁 공기,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흘러가던 론강은 괜히 울적함을 더했고 모처럼 용기를 내어 시민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걷고 놀이터에서 함께 섞여 놀 때 우린 투명인간 같았었는데.

작은 도시라 서로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우리 곁에서 자기들끼리만 서로 떠들고 즐거워 보이고. 같은 장소에 머무는 당신들이라도 어쩌다 동양인이 프랑스에 정착해서 사는지 물어봤더라면 우리는 단숨에 '한국에서 날아온 리씨네 가족'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늘 호기심 충만한 당신네들 욕구도 충족시켜줄 수 있고 우린 덜 외로웠을 것이고.

#2. 외롭다, 심란하다,울적하다

외롭게, 그러나 외롭지 않은 듯 의연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네덜란드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누나가 한국인 입양아를 키운다고 했다. 아직 어린 나는 그 분의 눈빛과 음색이 무엇을 더 말하고 싶어 하는지 짐직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발걸음은 참 심란했다. 몇 년 전 나와 같은 혈색과 모습을 한, 중국인 입양아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경험이 떠올라 마음이 더 울적하다.

시간을 거슬러 점점 어두워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어린 아이들은 참 간헐적으로 꾸준히 울었었다. 새로 구입한 원피스를 입은 듯했고 머리는 모두 빡빡 머리를 했었지. 백인 양부모 품에 안겨 울지 않던 한 아이를 보며 엄마였던 난 마음이 더 힘들었었는데. 그만 생각하자.

송현이와 송주는 좁은 호텔방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해보였다. 야외에서 엄마와 책을 읽다가 심심하면 아직 푸른 것이 덜 돋아나 뭘 뜯고 구경하며 놀 것도 없는 캠핑장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구경했다.

난 틈틈이 책을 읽으며 가끔 농약통을 지고 캠핑장을 관리하던 아줌마가 일하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가까운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물론 호텔 생활로 밀려 있던 빨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마음이 개운하다.

그래도 즐겁단다. 다행이다. 애미, 애비 마음도 모르고.
 그래도 즐겁단다. 다행이다. 애미, 애비 마음도 모르고.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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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도 본다. 현지인들은 우리를 보겠지.
 가끔 책도 본다. 현지인들은 우리를 보겠지.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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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린 마음도 날씨도 더 추워질까 무서워 햇빛이 남아도는 남쪽을 향해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일한 말 상대였던 캠핑장지기, 마음 따뜻한 필립 아저씨. 비록 2008년 것이긴 하지만 그 당시엔 비쌌을 책도 주시며 우리의 여행을 따뜻하게 격려해주셨다.

"고마워요. 아저씨가 주신 온기 덕분에 그곳을 나와서 우리가 만난 길, 집, 사람, 꽃이 어쩌면 더 정겹게 느껴졌을 거예요."

피터씨는 따뜻한 눈빛을 가졌다.
 피터씨는 따뜻한 눈빛을 가졌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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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단 목욕가운을 사는 것은 보류하시라

이틀 내내 아침이면 화장실에서 나오다 목욕가운을 입은 할아버지와 마주치며 살짝 놀랐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목욕가운을 입고 샤워장을 드나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게 되니 "우리도 앞으로 캠핑을 쭉 하려면 목욕 가운을 하나씩 사 입어야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캠핑을 할 때는 아침에 모두 목욕가운을 입고 샤워장을 드나드니 미리 준비하세요"라고 말하기엔 내 눈 앞에 보이는 분들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이것이 프랑스 노부부의 문화인지, 노커플의 문화인지, 전반적인 유럽인의 문화인지 알 길이 없어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일단 목욕가운을 사는 것은 보류하시라.

꿀꺽.


태그:#유럽캠핑, #맞벌이 가족여행 , #유아동반 여행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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