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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EBS(교육방송)는 '하나뿐인 지구'라는 큰 제목 아래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이하 <당신의 캠핑은...>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현대문명비판을 주제로 세운 이 프로그램은 오늘, 우리의 캠핑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짐 바리바리 싸들고 자연으로 나가 수 백만의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에만 전념하면서 자연은 누리지 못하고 쓰레기만 남기고 온다며 비난한다. 캠핑장으로 끌고 가는 문명의 무게를 줄여 홀가분하게 갔다가 자연을 즐기다 오는 것이 캠핑이 진정 가야 할 길이 아닐까하는 물음을 던지고 끝을 맺는다.

30여분의 짧은 다큐멘터리가 수 백만 명이 즐기는 문화현상을 다각도로 살피고 대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분량이라면 어절 수 없는 축약과 생략이 발생하고 일면만을 다루기에도 숨이 가쁘다. 그렇다고 비난을 위한 비난이나 실효성 없는 결론맺기는 곤란하다. 사람들이 왜 캠핑을 떠나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그 결과로 불거져 나온 문제만 붙잡고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건 편협하다. 비난하기에만 급급하고 문명비판이라는 주제에 캠핑이라는 소재를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방송을 만들어 내기 위한 편의주의 아닌가?

캠핑이 붐을 이루게 된 데에는 도시의 삭막함이 큰 영향을 미쳤다. 회색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 사면 콘크리트 환경, 학교와 학원을 잽싸게 오가느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가족, 직장과 가족 어디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혹사당하기만 하는 가장.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가족을 공동체를 되살리고 지켜보자는 게 캠핑 붐의 추동력이다.

우리의 오토 캠핑에는 쉼, 자연, 가족이 있다

백패킹은 가족단위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 EBS 방송내용 갈무리 : 백패킹 백패킹은 가족단위로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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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신의 캠핑은...>가 대안으로 내세운 백패킹에는 아이들이 없다. 취향이 같은 개인들만 있고 가족은 없다. 애초에 서너살짜리 애들 등에 배낭을 지우고 눈 속에서 추위를 견딘다는 게 가능하지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백패킹은 혼자 홀가분하게 누리는 다른 형태의 들살이[野生]일 뿐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캠핑을 떠나는 대다수의 캠핑인에게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백패킹이라면 오래 전부터 등산의 한 부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겼다. 이게 오토캠핑의 대안이라면 왜 그 인기가 이어지지 않았겠는가. 백패킹은 새로울 것도 없고 묘책도 될 수 없다.

또, <당신의 캠핑은...>은 뻔한 대안찾기로 외국 캠퍼들의 사례를 들면서 왜 한국 캠핑인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지 여유를 즐기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질문이 잘못 되었다. 캠핑장이라는 자연 속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며 1박2일을 보내면 안 되나? 어찌 보면 대부분 대도시에 거주지를 두고 사는 캠핑인들은 콘크리트 문명을 피해 숲으로 도망쳐왔거나 가족을 피신시킨 사람들이다.

애써 도시를 피해왔으니 자연에 파묻혀 지내기도 매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또, 가족끼리 둘러앉아 집밥을 먹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것을 취객의 고성방가와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부당하다. 아니 그것은 음해다. 엄마가 밥하고 아빠가 집짓고 연료를 구해와 땅에서 같이 생활하는 게 주변을 여행하는 것보다 값지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여름 휴가라면 모를까 1박2일은 자연 속에서 생활하기도 시간이 모자라다. 모르긴 몰라도 외국의 캠핑카들은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그렇다고 지금의 오토캠핑 방식이 '절대캠핑'이며 세계에 널리 알릴 만큼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가 있다. 장비과시욕과 쓰레기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쉼, 자연, 가족이라는 캠핑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비과시욕은 '내 집' 한풀이?

장비과시욕과 쓰레기 문제는 오토캠핑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 EBS 방송내용 갈무리 장비과시욕과 쓰레기 문제는 오토캠핑이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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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캠핑인들은 유독 장비에 대한 욕심도 많고 보여주려는 심리도 강하다. 누가 더 크고 비싼 텐트를 소유했느냐, 또 그 속에 얼마나 많고 편한 장비를 들여놓았느냐에 관심을 두고 경쟁적으로 쇼핑을 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우스게 소리로 토치 하나로 시작한 캠핑이 텐트 부피가 커지고 살림살이가 늘다보니 차가 SUV로 바뀌더니 결국 그 짐을 둘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과한 측면이 분명 있다. 경쟁을 피해 한 숨 돌리려고 떠났으면서, 도시에 질려 자연으로 들어갔으면서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의 심리와 전자제품의 편의를 두고 오기란 쉽지 않다. 이 또한 도시생활에 지나치게 시달리고 익숙해진 탓이리라. 어쩌면 그 한풀이를 캠핑용품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집을 사야한다는 강박, 전월세라면 2년 뒤에는 더 큰 집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강박, 그마저도 안 된다면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지 않게 집을 꾸미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캠핑용품 사제기로 풀어내는 건 아닐까? 제 아무리 크고 좋은 텐트라도 (수억짜리 집에 비해) 끽해야 200만원이면 내 것이 되고 으리으리한 용품이라고 해봐야 몇 십만 원이면 살 수 있으니 원없이 누려보자는 심리는 아닐까?

하지만 그 유혹은 끊는 게 여러모로 좋다. 가계를 위해서나 원만한 부부사이를 위해서나. 물질로 생긴 허한 마음을 물질로 채워 봐야 허기는 커질 뿐이다. 그렇다고 면벽수련으로 도를 닦아서 끊을 성질의 유혹은 아니다. 그저 누구를 위한 캠핑인지 한 번쯤 상기해보고 캠핑 용품을 사들일 때면 아내의 표정도 찬찬히 살펴보고 통장잔고를 확인하다보면 자연스레 해소될 문제다.

여기에 비하면 쓰레기는 해결나기 어려운 문제다. 사람이 생활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발생한다. 그건 도시의 집에서나 캠핑장에서나 마찬가지다. 캠핑장에 갔으니 조금쯤은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생활습관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면 쓰레기 문제도 달라질 게 없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캠핑은...>가 쓰레기에 문제에 접근하는 몇 장면은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마냥 실효성이 부족하다. 변을 되가져오거나 소금으로 양치를 한다? 캠핑장에다 버리면 쓰레기고 집으로 가져오면 보물인가? 지구입장에서 따져보면 장소를 옮겼달 뿐 쓰레기는 어딜 가나 쓰레기다.

따라서 쓰레기를 가져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 길을 찾는 일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캠핑장에서는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수거된 쓰레기는 적절한 방법으로 처리를 하고 있지만 일부 캠핑장은 그럴만한 여건이 안 된다. 오폐수 정화시설도 없고 쓰레기 수거차량이 오가기에는 너무 외진 곳에서는 그 많은 쓰레기와 오폐수를 과연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소리다. 그게 조금 더 현실서 있는 접근방법이 아닐까?

근본적으로는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한다. (캠핑장) 현지 전통시장 찾아가기 같은 한가하고 말랑말랑한 소리는 하지 말자. 애들 입히고 씻기고 준비시켜 짐 싸서 출발해도 토요일 오전 시간은 길바닥에서 다 보내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이 언제 시장 찾아가서 구경하고 흥정하다 구매까지 한단 말인가. 미리미리 준비해도 시간이 모자란 1박2일이다. 그것보다는 신용카드를 싹둑 자르고 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확실한 지폐쓰기 운동을 벌이는 게 더 낫다. 아무래도 지갑이 얇아지는 게 눈에 확 들어오면 소비는 줄게 마련이고 구매량은 준다. 그러면 쓰레기는 자연스레 준다.

무엇보다 쓰레기 문제는 단지 캠핑장 생태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후세를 위한 과업이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일상생활에서조차 쓰레기를 줄이는 데 많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며 말 그대로 전 지구차원의 난제다. 그럼에도 마치 우리나라 캠핑인들만이 유독 쓰레기 처리를 못하는 무뢰배처럼 몰아가는 편집은 비난하기 쉬운 악을 만들어내는 음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구가 아프다. 공감한다. 그렇다고 가족끼리 단란하고 쾌적하게 즐기던 캠핑을 접고 산으로 들어가 야생 버라이어티를 찍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돗자리 한 장만 들면 홀가분하게 떠나기는 좋겠지만 정말 돗자리 한 장이면 지금의 오토캠핑이 주는 즐거움을 대신해줄 수 있나?

안다. <당신의 캠핑은...>가 사고의 전환에 목적을 두고 답이 아닌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물음의 방식이 서울 도심의 밤골목에서 토사물과 취객과 드잡이, 고성방가만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서울사람들은 이제 환락의 밤을 끝내고 일찍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라고 묻는 것과 뭐가 다른가.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현실을 똑바로 오래 지켜봐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선이 전파를 탈 때 누군가는 하소연도 못하고 괜한 자책만 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아날로그캠핑, #캠핑문화, #EBS 방송, #당신의캠핑은몇G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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