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스스로 생을 저버렸다는 허망한 이야기들. 왜, 도대체, 무엇이 단 한 번 주어진 이 삶을 포기하게 만든 걸까. 추측만이 난무하다.
그런데 여기, 치열하게 사랑하며 생을 붙드는 사람들이 있다. 11명의 특별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살아갈 이 아이들을 세상은 '장애아'라 부른다. 그리고 아이들 곁을 밤낮 서성이는 부모들이 있다. 그들의 기쁨, 슬픔, 사랑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오마이북)가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를 집필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혜원씨다.
"취재 땐 꽉 참았다가, 원고 쓰기 전 한바탕 울었어요""책을 쓰는 과정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오며 배우지 못했던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난 너무 작은 일에도 힘들어하는구나 싶었습니다."두 아이의 엄마로서, 시민기자 생활을 함께 한 지도 어느덧 11년 째인 그에게 "무척이나 떨렸다"던 하루. 지난 10일 서울시 강남구 일월본동 밀알학교 밀알아트센터에서 열린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출간 기념 저자와의 대화'에서 김혜원씨가 한 말이다. 이날 자리에는 독자를 비롯해 첫 취재 기획을 제안했던 밀알복지재단, 사진작가로 함께 참여한 추연만씨 그리고 책의 주인공들이 함께했다. 마이크를 잡게 된 부모들은 긴장된 듯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김혜원 시민기자는 책의 인세 중 일부를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책의 실린 글들은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기사들이다. 당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혜원씨에게 쪽지를 보내 도움의 방법을 묻는 이들도 많았고, 밀알복지재단 후원도 늘었다. 사회를 맡은 <오마이뉴스> 김지현 기자는 이 연재의 편집을 담당했었다. 그는 "(눈물이 나서) 기사를 편집하다 사무실을 뛰쳐나가곤 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정작 김혜원씨는 어땠을까. 그는 "울 수 없었다"고 한다.
"제가 눈물을 흘리면 제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어떻겠어요. 가능한 웃었어요. 속없는 여자로 보였을지도 몰라요. 꽉 참고 있는 거였는데. 그리고는 원고를 쓰기 전 한바탕 울며 감정을 덜어내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어요."고통을 뚫고 자란 행복... 그리고 우려되는 미래
눈물로 쓰여진 이 책의 실제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모들은 역경을 관통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아이들과의 지독한 전투. 그런데도 너나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선천성 희소병인 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을 앓고 있는 혜연이의 아버지 황보석씨. 책 속에서나 실제 모습이나 그는 엄연한 '딸 바보'였다.
"지금도 저희 아이를 누군가 '자폐아'라고 규정할 때 낯설어요. 모자란 게 아니라, 조금 느린 거라 생각합니다.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아, 네가(혜연이가) 너무나 특별한 아이였구나. 네가 나에게 그런 존재였구나."뇌성마비 장애아 현호의 어머니 박향숙씨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할 게 있단다.
"저는 18년 동안 현호를 '틀림'으로 키워왔어요. 넌 나 없으면 못하는 사람이야, 라고요. 현호를 소중하게 대해준 도우미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난 너한테 해준 게 없는데 왜 고마워해? 우리는 친구잖아.' 감동 받았어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어요. 이제는 아이와 많이 공감하고 있어요. 아이 아빠는 늘 그래요. 터널의 끝은 있어, 우리가 중간에 있어서 어둡게만 보이는 거야. 저 끝에 가면 밝은 빛이 있을 거야."걱정은 크다. 아이들의 독립된 삶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를 지닌 채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에, 현재 장애인 복지제도는 틈새 투성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있어야 한다"는 소원을 빈다. 남보다 왜소한 몸을 가진 딸 예인이와 같은 병명(연골무형성증)인 어머니 이선혜씨는 "사막 위의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이란다.
"예인이가 이제 사회에 나갈 시기가 와요. 아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예인이를 사회에 내보내려 해도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얼마나 많은 좌절이 있겠어요. 몇 명씩 의무적으로 채용하는 방식이 있지만 돈으로 무마하는 회사도 많아요."황보석씨 역시 "그 답은 사회가 함께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해맑게 웃던 천재미술소년, 서번트 증후군의 세준이와 함께 행사장을 찾은 어머니 윤혜선씨는 "저는 하루라도 아이보다 더 살길 바라지 않아요"라며 "내가 없더라도 이 아이가 혼자서 사회와 충분히 소통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삶을 이어주는 사랑, 특별한 너희 덕분이다
따뜻한 박수와 함께 마무리된 행사, 이후 김혜원씨에게 물었다.
- 요즘 생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음울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힘내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분명 아픈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그게 제가 바라던 바예요. '힘내서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 사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슬픔에 도취될 시간도 없어요. 매 시간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돈을 벌고, 시간이 남으면 옆에 꼭 붙어 있어요. 이들은 아이들을 주어진 만큼 사랑하는 게 아니라, 힘써 노력하며 사랑합니다.
그들을 보면, 내 사랑은 평생 2%도 안되겠구나 싶습니다.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갱년기가 왔는데도 느낄 새가 없이 지나갔다고. 그들은 부모의 정수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쳐나, 전투사가 되신 분도 계세요. 자식을 위해 세상과 싸우고 있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도 '아 멋지다! 나도 힘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사실 누구보다 "죽고 싶다"는 생각, 이 분들이 많이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강하게, 힘차게 살아 있으세요. 그 동력이 무엇일까요."물론이에요. '운전 중에 지금 이 핸들만 꺾으면 아이와 내가 다 죽을 수 있다, 그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분도 계셔요. 책에도 나오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고요. 그런데 이분들은 연약한 자식일지언정, 그들의 생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또 세상에 네가 태어난 의미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세요.
그리고 무엇에 집중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볼 것인가.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 볼 것인가. 결국 삶은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이 아닐까요. 그분들은 삶을 이어지게 하는 사랑을 하고 계세요. 연약하지만 밝은 이 아이들이 만들어준 '힘'입니다."
정말이었다. 11명의 아이들은 '특별한 너'였다.
덧붙이는 글 | 김혜원 시민기자는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인세의 일부를 계속해서 밀알복지재단에 후원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