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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Scene 작품앞에 선 작가 디렌리
Last Scene작품앞에 선 작가 디렌리 ⓒ 윤솔지

"팝아트와 회화의 중간인 것 같아요."

평생 그림쟁이라고 불렸으면 좋겠다는, 보다 전문적으로 일컫자면 회화화된 일러스트. 디렌 리가 자평하는 본인의 화풍이다. 홍익대 미대에 입학하자마가 우연히 찾아간 사주카페에서 점쟁이가 예언한 것처럼 그녀는 본인이 디자인한 고양이 캐릭터로 만들어진 상품으로 인기를 누리며 오롯이 20대를 보냈다.

그러던 2년 전 어느 날, 그녀는 홀연히 자신의 독립적인 작품의 세계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세 번째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이(2월 22일~3월 11일) 한창 중인 이태원 소울 잉크(Soul Ink) 갤러리에서 만나봤다.

Don't be afaid '사라지는 것들' 디렌 리 개인전
Don't be afaid'사라지는 것들' 디렌 리 개인전 ⓒ 윤솔지

- 전시회 부제가 '사라지는 것들' 이예요. 어떠한 것들의? 
"부정적인 사라짐도 있지만 긍정적인 사라짐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사라져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대표작인 'Don't be afraid'에서는 두려움과 트라우마의 사라짐, 'Teeth : 작은 뼈의 시작'에서는 머무는 것, 즉 정체됨의 사라짐과 그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해요."

Sea: 나만 이상한 건가 Sea: 나만 이상한 건가
Sea: 나만 이상한 건가Sea: 나만 이상한 건가 ⓒ 윤솔지

- 'SEA: 나만 이상한 건가', 이 작품에서는 어떤 사라짐을 표현한 것인가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처음 독립을 했을 때였는데요.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마음에 저에게 맞다, 틀리다, 너는 이렇게 가야 한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나름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는데 말이죠.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데로 살면 안 되나하는 마음이 들었죠. 결국 이 그림에서는 남들이 강요하는 남들과 함께 묻어가는 것 그것에 대한 사라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 두려움, 정체됨, 남들과 함께 묻어감. 이런 것들에 대한 사라짐이라면 지난 2여 년간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의식의 파편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혼란의 극점에 있었을때  'Last scene: 너의 눈에 비친 내가 보는 마지막 너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어요. 파랗게 질린 얼굴을 죽이려고 하는 빨간 손. 그런데 그 살인자는 죽는 사람의 동공에만 보이고 있는 순간을 표현한 거죠.

생명과 기억이 사라지지만 동시에 죽기 전의 두려움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자기암시도 숨어있어요. 이 작품을 끝내고 나서 그 당시 겪고 있던 제 안의 많은 어두운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는데요. 이후부터 오히려 색감이나 선의 선택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속은 뻔히 어두운 데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밝은 색을 억지로 쓰려하지 않는 것 같은."

-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깊었어요. 하지만 하루 12시간씩 7년을 고양이 그림만 그리다보니 몸도 지치고 이제는 제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급기야는 폐렴에 걸리고... 쉴새없이 달려오다 보니 제동이 걸린 거죠. 하지만 정작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직장 7년까지 어쩌면 한순간 소속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고, 이제부처 나 혼자 서야 하는구나 하는 두려움과 함께 설렘도 느꼈었는데…. 딱 울타리 없는 들개의 심정이었어요."

-그럼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열심히 뛰기 시작한 들개라고 할까요?(웃음)"

시작의 알림 발레 발레
시작의 알림 발레발레 ⓒ 윤솔지

-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작품을 꼽는다면?
"'발레'예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틀을 깨는 것인 데. 성별에 제한적인 예술에 대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레리노, 발레리나 단어부터가 발레에 대해서 남녀를 구분 짓는 거잖아요. 자세히 보시면 여기에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이 성별이 모호한 이 사람이 어디론가 뛰고 있잖아요? 틀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에요.

저에게는 이 전시회를 위한 첫 작품이기도 했고요. 저에겐 처음 제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징표와 같아요. 그래서 가만 보시면 여기 크기도 훨씬 큰 대표작보다 터무니없이 몇 배나 가격이 높아요. 결국 제가 간직하고 싶은 작은 욕심이라고 할까요?(웃음)"

디렌리 3번째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
디렌리 3번째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 ⓒ 윤솔지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가까이는 3월 15일부터 30일까지 파주 헤이리 논밭예술학교에서 열리는 2014 로봇전에 참여해요. 그 곳에서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추억이 담긴 장난감로봇을 모티브로 작품을 완성해서 그 안에 담긴 사연을 텍스트에 담아 전시하는 건데요. 현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고요. 궁극적으로는 실컷 그림 그리고 싶고 콜라보도 많이 하고 싶어요. 조만간에는 제 그림으로 파우치와 같은 제품들을 만들어서 보다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디렌리 3번째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
디렌리 3번째 개인전 사라지는 것들 ⓒ 윤솔지

전시회 진행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처음계획이자 꿈대로 되었다고 한다. 전시회 중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시작을 알리는 발레만 빼고 전 작품이 완판 되었다. 물론 그 인기의 시작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주인공들의 담담한 듯 묘한 표정과 미묘하게 어우러지는 감정 상태에 대한 정확하고 당당한 표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넘지 않는 발칙함과 세련된 디자인, 그 안에 빼곡히 채워진 디테일과 차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색감의 절묘한 결합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까지 매료시키는 점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은  말하면 알만한, 하지만 더 이상 작가는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고양이그림과 함께 보낸 그녀의 20대에서부터 쌓여온 실력에서도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새로운 국면의 장을 자기 자신만의 브랜드로 열기 시작한 디렌 리의 가벼운 첫 발걸음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디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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