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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길 끝에는 마을이 있다.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길 끝에는 마을이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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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변에 서 있는 필리핀참전비가 세워진 것은 지난 1974년 10월 2일. 필리핀은 한국전쟁 때 1개 대대를 파병했다. 왜관, 김천, 평양, 개성, 철원지구 전투에 참가했다는 필리핀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바로 필리핀참전비다.

고양동누리길은 그 필리핀참전비가 출발지점이다. 높이 솟은 탑을 보면서 한국전쟁에서 피흘리면서 죽어간 필리핀 군인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지난 2월 26일, 송강누리길과 고양동누리길을 이어서 걸었다. 미세먼지가 세상을 온통 뿌옇게 하던 날이었다. 미세먼지를 막는 마스크를 쓰고 하루 종일 걸었더니 나중에는 귀가 얼얼했다. 마스크 크기는 작지 않았는데 고무줄이 짧아서 너무 팽팽했던 것. 귀가 잘라질 것 같아 고통스러웠으나, 마스크를 벗고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다행이었다.

고양동누리길은 필리핀참전비에서 시작돼 최영 장군묘를 거쳐 안장고개까지 이르는 길로 전체 길이는 7.1km, 소요예상시간은 2시간 40분이다. 필리핀참전비에서 최영 장군 묘로 가는 길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무덤이 여럿 있다.

유난히 무덤이 많은 고양동 누리길... 최영 장군 묘로 가는 길

죽은 자의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이상하게 쓸쓸해 보인다.
 죽은 자의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이상하게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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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게 성령대군의 묘. 성령대군은 태종의 넷째아들로 14살의 나이에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혼인을 했다고 하니, 홀로 남은 어린 아내가 안쓰러워진다. 후사가 없는 성령대군의 뒤를 이은 이는 효령대군의 여섯 째 아들 원천군이라고 한다.

성령대군이 죽은 뒤 태종은 몹시도 애통해하면서 대자산에 대자암을 지어 명복을 빌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대자암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외에도 김홍집의 묘와 경안군과 임창군 묘가 있다.

경안군은 드라마 <추노>에서 오지호가 지키려고 했던 왕손으로 소현세자와 강빈의 세 아들 가운데 막내다. 4살에 제주도로 귀양을 갔던 비운의 인물로 2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단풍나무 길을 한참 걸으면 최영 장군 묘로 가는 길이 나온다. 미세먼지는 가라앉지 않고 공중에 뿌옇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 미세먼지를 헤치면서 걷는다. 갈림길에 뻥튀기 기계를 놓고 튀기는 이가 있고, 그 주변에 너덧 분의 할머니가 모여앉아 있다가 길을 걷는 우리 일행을 힐끔거리면서 본다.

기와를 얹은 옛집은 지나갈 때마다 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흙벽 앞에 장작더미가 쌓여 있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고. 지방에 내려가도 보기 힘든 집이다. 나이가 드니 이런 집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된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걸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날 때마다 꼭 사진을 찍는다.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되는 집. 정감이 있어 좋다.
 볼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되는 집. 정감이 있어 좋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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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숲길
 대자산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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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숲길... 여름에는 녹음이 무성해진다.
 대자산 숲길... 여름에는 녹음이 무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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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으로 접어들었다. 높이가 210미터인 대자산의 숲길은 나무가 우거진 걷기 좋은 길이다. 한 여름이면 나뭇잎 사이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시원한 길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를 내놓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그래도 좋다. 해빙기를 맞이한 숲길은 질척거리면서 미끌거리지만 걷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오르막을 한참 걸으니 드디어 최영 장군 묘 입구가 나온다. 계단이 이어지는 길로 깔딱고개라고 부를 만하다.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한 여름에는 최영 장군 묘 앞에 사람들이 와서 돗자리를 깔고 논다.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대자산 숲길은 걷기 좋은 길... 한 여름에 더욱 시원

최영 장군 묘
 최영 장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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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묘 가는 길.
 최영 장군 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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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좌우명을 남긴 최영 장군. 무당들이 가장 많이 모시는 신이기도 하다. 임경업이나 남이 장군도 신으로 모시지만 최영 장군에게는 어림이 없다던가.

최영 장군 묘 뒤에는 아버지 최원직의 묘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최원직의 묘비는 아들인 최영 장군이 직접 썼다고 한다. 길은 최영 장군 묘 뒤로 이어진다. 묘를 지나가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걷기 좋은 숲길이다. 마른 낙엽이 발밑에서 부서지면서 밟히는 길. 이런 길은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지치거나 질리지 않지만, 아쉽게도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오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 간벌을 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있다. 멀리서 나무를 잘라내는 전기톱 소리가 여운을 길게 남기며 들려온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계속 따라 걸으면, 고양향교가 보인다. 고양향교를 내려다보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있다. 향교는 오늘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고양향교 옆에는 중남미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중남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들른 적이 있기 때문에 패스.

중남미문화원
 중남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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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문화원 앞에서 숲길은 끊기지만,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마을이 나온다. 길은 이렇듯 숲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마을로 들어서면서 끊어진 숲길, 옛길은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거나 옛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았다.

39번 국도를 건너면 선유랑 마을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이 길, 예전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오갔다는 길이다. 길이 제법 넓은 것은 사람들만이 오간 것이 아니라 조공품을 실은 마차들도 같이 오갔기 때문이란다. 사신들이 다닌 길을 통해 다양한 물품들이 중국으로 가거나 우리나라로 오거나 했을 것이다.

안장고개 가는 길, 산수유 꽃 필 때 다시 걸으리라

선유랑 마을 가는 길. 예전에 중국 사신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선유랑 마을 가는 길. 예전에 중국 사신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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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는 성황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돌무더기가 쌓여 말없이 성황당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중국을 오가던 사신들이나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길 위에 이야기로 남았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기온이 쑥 내려간다. 석양빛이 조금씩 산을, 숲길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부는 바람은 차가운 기운을 품었다. 걸음을 재촉해야할 것 같다.

선유랑마을을 벗어나기 전, 조선 왕실의 묘 앞을 지난다. 중종의 후궁인 숙원 홍씨, 중종과 숙원 홍씨의 아들인 해안군, 세종의 손자인 귀성군의 무덤이 있는 곳이란다. 비석과 문인석 등이 흩어져 있다.

안장고개로 가는 길은 이차선도로가 구불거리면서 이어지고 있다. 이 길 한쪽에는 산수유나무가 지천이다. 가을에는 이 길을 잘 아는 이들이 산수유 열매를 따러온다.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 이 길을 걸으면 좋으리라.

[고양동누리길] 전체길이 7.1km, 소요예상시간 2시간 40분
필리핀참전비 - 최영 장군묘 - 고양향교 - 중남미문화원 - 선유랑 마을 - 안장고개


태그:#고양누리길, #고양동누리길, #최영 장군, #성령대군, #선유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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