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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정부가 환자-의사 간 원격의료 허용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대한의사협회는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마침내 3월 의사파업이 현실화 된 지금까지 원격의료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은 상반됩니다. 보건복지부는 도서, 벽지에 사는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형 병원과 IT 기업들의 돈벌이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원격의료가 과연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전국 산간벽지·오지, 낙도 특수지 등지의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들의 생생한 현장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가는 릴레이 기고입니다. [편집자말]
제가 근무하는 보건지소(아래 지소)에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지소에 내원하는 환자의 대부분은 감기 같은 비교적 경미한 질환의 약이 필요하거나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 치료 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분들입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일반 병원의 진료비가 부담스러운 분들이 다수이기도 하고요.

제가 학생 시절에 들었던 여러 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의학에 관한 지식과 기술에 많은 진보가 있겠지만,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환자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앓아왔던 병들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듣는 것, 그리고 환자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관한 것은 물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 꼼꼼히 신체검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변화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가 직접 환자를 대면해 병력을 청취하고, 직접 신체를 검사하는 것은 환자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제 곧 3년 차가 되는 공중보건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끼는 점은, 환자가 단순히 신체적인 병 치료를 위해서만 보건지소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처음 지소에서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참 답답했습니다.

특별한 실수 없이 진단했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제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은데도 환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진료실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경험이 쌓이면서 알았습니다. 환자가 원하는 건 의사가 좀 더 자세히 자기들의 몸을 살펴봐 주고, 몸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다시 진료를 보러 오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감을 쌓지 않으면 환자들은 의사를 의심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의사가 주는 약조차 제대로 먹지 않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제 의사가 환자를 화상으로 진료하는 원격진료가 시행된다고 합니다. 물론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의 의학적인 지식과 경험은 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가 병원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감기와 같은 경미한 병들, 혹은 당뇨와 고혈압처럼 간단한 검사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증상입니다. 이런 환자분들을 진단하는 데 저와 '대형병원 선생님' 사이에 아주 큰 벽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환자들이 신체검사 없이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감을 쌓고 원활한 치료를 진행할 수 있을지도 크게 의심이 들고요. 게다가 원격 진료가 실제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환자들 각각이 수십만 원 이상 달하는 생체계측기를 사고 부착해야 합니다. 근처 병원의 진료비도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에게 그런 기구를 사기 위한 돈은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올까요?

대부분 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값비싼 장비를 동원한 의료기술이 아니라, 직접 의사와 마주한 채로 언제든지 상담받고 진찰받을 수 있는 든든함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든든함은 원격진료로 결코 대체될 수 없고, 사람이 사람인 이상에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겁니다.            


태그:#의료민영화, #원격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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