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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 리움미술관 전시장 입구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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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실 내부
▲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 내부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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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현대 사진의 기라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히로시 스기모토 (1948~) 의 사진전이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2013년 12월 5일부터 2014년 3월 23일까지 개최된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40년 가까이 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기술과 고유의 철학적 사고를 결합하여 정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작업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본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히로시 스기모토의 첫 개인전으로,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대표적 사진 연작들과 영상작업, 설치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을 폭넓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구겐하임 박물관과 히로시 스기모토가 콜라보레이션한 산바소 공연 장면
▲ 공연 영상 구겐하임 박물관과 히로시 스기모토가 콜라보레이션한 산바소 공연 장면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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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관 입구에는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영상이 설치되어 있다. 600년의 전통을 가진 일본의 전통 공연인 '산바소'의 무대디자인을 히로시 스기모토가 맡았으며, 이 공연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상연되었다. 리움 전시관에 걸린 <번개 치는 들판>이 무대의 배경을 구성하고 있다. 관객들은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앞서 일본의 전통 문화와 스기모토의 현대 사진이 절묘하게 결합하여 무대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Lightning Fields Composed 012 (Detail), 2009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49.2×716.3cm/2 sets 
Private Collection
▲ 번개 치는 들판 구성 012(부분) Lightning Fields Composed 012 (Detail), 2009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49.2×716.3cm/2 sets Private Collection
ⓒ Hiroshi Sugi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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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갤러리에서는 최근작 <번개 치는 들판 (Lightning Fields)>, 제주에서 촬영한 <바다풍경 (Seascapes)>, 1999년 구겐하임 미술관의 후원으로 제작된 <초상 (Portraits)> 연작 등이 눈길을 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최근작 <번개 치는 들판> 연작은 40만 볼트의 전기를 금속판에 맞대는 실험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번개의 이미지를 실버 프린팅한 작업이다. 번개는 실제로 보기 힘든 자연현상인 만큼, 그것을 사진에 표현했을 때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 소재가 되어 왔다. 스기모토는 번개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정적인 고요함과 강렬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선사한다.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11.9×149.2cm 
(152.4×182.2cm framed) 
Leeum, Samsung Museum of Art
▲ 황해, 제주 Yellow Sea, Jeju 1992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11.9×149.2cm (152.4×182.2cm framed) Leeum, Samsung Museum of Art
ⓒ Hiroshi Sugi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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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풍경> 연작은 스기모토가 전 세계의 바다를 찾아다니며 담아낸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어떤 작품에서보다도 짙은 정신성을 마주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서로 다른 바다를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사진 속에는 그 바다의 장소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드러나 있지 않다. 황해를 찍은 사진에서도 우리는 사진 속의 바다가 황해라는 그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대신 빛, 바람, 안개 등의 자연적 기후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미묘한 공기의 변화만이 포착될 뿐이다. 관객들은 모든 이름과 표식, 특징이 제거된 바다 그 자체만 존재하는 초월적인 장소에서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 비로소 경건한 종교적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49.2×111.9cm 
Odawara Art Foundation
▲ <초상> 연작 헨리 8세 Henry VIII 1999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49.2×111.9cm Odawara Art Foundation
ⓒ Hiroshi Sugi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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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작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에서 소비사회는 이미지와 상징이 실재의 자리를 대체하는 하이퍼리얼리티의 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하이퍼리얼리티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이다. 실재보다 가상을 더 중시 여기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보드리야르처럼, 히로시 스기모토 역시 런던 마담투소 박물관의 밀랍 조각을 사진에 담았다. 위의 사진은 헨리 8세의 밀랍 인형을 사진으로 재활영한 작품이다. 실제의 인간을 모사한 밀랍 인형이라는 복제품을 사진이라는 첨단 복제기술을 이용해 두 번 복제한 셈이다. 복제품을 복제하는 과정이 하나의 작업으로 탄생하는 흥미로운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실재'라는 것이 단지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11.9×149.2cm 
Private Collection
▲ 부처의 바다 001 Sea of Buddhas 001 1995 젤라틴 실버 프린트 Gelatin silver print 111.9×149.2cm Private Collection
ⓒ Hiroshi Sugi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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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에는 <부처의 바다> 연작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13세기 초에 지어진 교토의 사찰 산주산겐도 내의 천수관음보살 1001개를 28장의 사진에 담은 연작이다. 일본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산주산겐도의 불상은 사후의 낙원세계를 일컫는 '정토'를 구현한 것이다. 불상을 촬영할 때 스기모토는 관념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형광등을 비롯한 모든 인공 조명을 제거한 채 작품 자체만을 촬영하였다. 800년의 세월을 견뎌 온 천수관음보살 조각상은 끝없이 복제되면서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 섬세한 움직임은 간접적인 열반의 경지로 관객들을 이끈다.

이처럼 히로시 스기모토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작업이나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업들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촉구한다. 나아가 그의 작업에는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 즉 열반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스기모토 자신의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속도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은 스기모토의 강렬하면서도 고요한 흑백의 이미지들을 통하여 근원적인 관념을 숙고하고 잃어버린 정신적 가치들을 잠시나마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히로시 스기모토, #리움미술관, #현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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