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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를 비롯해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다른 상업영화처럼 막대한 제작비는커녕 이렇다 할 마케팅도 하지 못했다. '제작두레'와 배우들의 자발적 참여로 어렵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상영관을 얻지 못해 개봉 전날까지 실제로 개봉이 되는지가 불투명할 정도로 가슴 졸여야 했다. 삼성의 부당한 외압이 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 지키기에 나선 시민들의 자발적인 홍보로 상영관이 확대되고 있고, 지난 14일까지 누적 관객수는 약 29만 명에 이르고 있다. 각계의 '단체관람'도 늘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천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폭발적인 것은 아니다. 여러 상업영화와는 게임도 안 되는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경쟁에는 관심도 없다. 흑자를 못 내도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의 약속>에게 이어지고 있는 자발적 응원과 관심은 이미 이 영화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감독과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또 하나의 약속>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윤리의식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내 1위를 넘어 '초인류기업'을 지향하던 '삼성'이지만 그 실상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더구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그 사실을 은폐하고 노동자들을 협박하는 모습은 개인의 분노를 넘어 공분을 사기에도 충분했다(이미 사회적으로는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대중에게는 낯설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의 문제제기가 직접적으로는 삼성을 향한 것이지만, 꼭 삼성만이 아니라 기업 전체에게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 생각된다. 온갖 광고를 통해 그럴싸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기업들 그 이면에 담긴 진실을 보고자하는 것이 이 영화의 의도일 것이다.

"아빠는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마땅한 신경질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주)또하나의가족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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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교육당국에게도 적지 않은 메시지를 준다. 영화 주인공으로 그려진 고 황유미씨는 속초상고를 다니던 2003년 10월에 삼성반도체에 입사했다. 졸업을 하기도 전에 소위 '현장실습생'으로 나갔다가 졸업 후에 정식으로 입사한 경우이다.

그런데 이 현장실습제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교육과정의 일부로 진행되는데 실상은 교육은 없고 노동만 있으며, 그것도 성인노동자들도 하기 어려운 강도 높은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공 따위는 전혀 고려조차 되지 않고, 근로계약 대신 법적 강제력이 없는 현장실습계약만을 체결해 노동관계법령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특성화고에서는 기업이나 업체의 문제점을 알고도 취업률 관리를 위해 파견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힘들다고 하소연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의 경우에도 사정을 알아보기는커녕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냐?"며 정신력이나 태도에 대해 꾸짖는 것이 먼저다.

그러니 현장실습생들은 대부분 그냥 묵묵히 감내하는 쪽을 선택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영화에서의 문제가 현장실습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이 현장실습제도와 관련해서도 교육당국은 고민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의 약속'이 교육당국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가 더 있다. 영화에서 산업재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 주인공에게 아버지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자 주인공은 "아빠는 도대체 아는 게 뭐냐?"고 따져 묻는다.

그런데 필자는 그 질문이 아빠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교육당국에게 던지는 신경질로 느껴졌다. 자신을 이런 비참한 노동현장으로 내몰고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땅한 신경질이다.

우리 교육의 실상이 그렇다. 상당수의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노동현장에 투입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몇 교사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들조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2013년에 실시한 '청소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고용 사업장의 87%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노동현장의 척박함은 다르지 않다. 이런 척박한 현실인데도 그에 대한 교육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엄연한 교육적 직무유기가 아니겠는가.

유럽처럼 유치원에서부터 노동인권교육을 하자는 먼 이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노동현장에서 필요한 기본적 지식과 대응방법은 알고 나가게 하자는 것이다. 교육과정까지는 어렵더라도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진로체험, 특별교육 등 다양한 기회를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아르바이트생과 현장실습생이 있으면서도 오로지 입시교육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고등학교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고 황유미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에게 직업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만 혹 노동인권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교육이 노동인권문제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또 하나의 약속>의 문제의식을 기업에 대한 책임을 묻고 사회적으로 아파하는 것으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교육당국은 그에 대한 교육의 책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계가 아닌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교육이라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허창영 씨는 현재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또 하나의 약속, #삼성반도체, #반올림, #황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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