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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2월 취임식 3일 전 "한국노총과 항상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둘은 '노정대립'의 당사자들이 됐다. 한국노총은 정부와의 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대립 전선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서로 기분 좋게 출발한 박근혜 정부와 한국노총은 왜 등을 지게 됐을까.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둘의 지난 관계를 되돌아보면서 현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2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2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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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정말 분위기 좋았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아래 한국노총) 사무실. 한 고위 관계자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에 사진 한 장을 띄우면서 말했다. 2013년 2월 22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노총을 방문한 날에 찍은 사진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언제든 만나 대화를 가질 것이며, 한국노총과 항상 끊임없이 소통하고 문제점과 애로를 해결하는데 각별히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약 1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는 강경 성향의 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은 물론 중도·온건 성향의 한국노총과도 대화가 단절된 상태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두 달 째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하고 있다. 앞서 박 당선인 방문 사진을 보여줬던 고위 관계자는 한숨을 푹 쉬면서 "정부와 우리 관계가 1년도 안 돼 무너지는 건 심각한 현상"이라고 혀를 찼다. 이명박 전 정권 때와 비교해도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지난 1년 간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박 대통령, 한국노총 방문해 "끊임없는 소통" 약속했지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최인백 사무처장에게 손피켓과 행사 자료를 받고 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1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최인백 사무처장에게 손피켓과 행사 자료를 받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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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선 후보 때부터 한국노총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후보였던 박 대통령은 2012년 10월 22일 문진국 당시 위원장과 만나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약속하면서 다른 노동 현안도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언급했다. 이후에도 한국노총 소속 택시노동자들과 만나 이들의 고충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고, 대선 약 한 달 전인 11월 17일에는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을 공약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후 운영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두고 '고용'만 있고 '노동'은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대통령 취임식 3일 전 한국노총으로 달려갔다. 당시 박 당선인은 노조 활동과 노동 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한국노총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마지막까지 '노동계 끌어안기' 행보를 보이려 했다.

박 대통령의 노력에 한국노총도 화답하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노동'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한국노총은 "첫 여성대통령으로서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감싸 안고 날로 심화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진정성 있는 정책을 펼치길 희망한다"고 기대했다.

홍보선전본부 관계자는 "취임 초반에는 박 대통령을 어느 정도 믿었다"며 "취임 앞두고 직접 우리한테 찾아와서 노동계와 계속 대화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성대통령으로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계의 입장을 유연하게 정책에 반영해줄 수 있을 거라고도 기대했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정부와 한국노총 관계에는 청신호가 켜졌다. 고용노동부(아래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사이가 점점 삭막해지는 것과는 달리,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5월 한 달 동안 참여했다. 정부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한국노총 고위 관계자는 "질적인 측면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청년·장년·여성을 위한 일자리는 필요한 과제였다"며 "당시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하는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한국노총도) 적극 협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도' '온건' 한국노총이 정부와 대화 중단한 이유는?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위해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며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한 가운데 2013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동상앞에서 전태일재단 주최로 민주노총, 한국노총 지도부와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던 노동자들이 모여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노동자 짓밟는 정권은 살아남지 못한다"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위해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며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한 가운데 2013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천 6가 전태일 동상앞에서 전태일재단 주최로 민주노총, 한국노총 지도부와 박정희 정권 시절 노동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던 노동자들이 모여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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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노총의 기대와는 달리, 박 대통령이 애초 공약했던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위한 노조법 제·개정 등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요원했다. 또한 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화 하면서 노동기본권 축소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중도·온건 성향의 한국노총이 정부를 향해 대립 전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6일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고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과 '무노동' 기류를 강하게 비판했다. 문진국 당시 위원장은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대선 때 공약을 정부가 이행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면서 '투쟁 결의'를 내놓기도 했다.

2013년 12월 22일, 경찰이 민주노총에 강제 진입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한국노총과 정부의 대립 전선은 더욱 짙어졌다. 당시 한국노총은 하루 뒤 긴급 대표자회의를 열고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하면서 "폭압적인 공권력 투입에 대해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28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여하라는 독려 지침도 하달해 당시 1000여 명이 참가했다.

7개 산별·지역본부도 별도의 정부 규탄 성명서를 통해 "박근혜 정권이 노동 탄압과 공포 정치를 즉각 중단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저항에 돌입할 것을 강력 경고한다", "반노동자, 반민주적 형태를 지속한다면 대정부 연대투쟁에 가열차게 동참할 것"이라고 투쟁 의지를 밝혔다.

한국노총은 경찰의 민주노총 '침탈' 사건을 노동계 전체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병균 사무총장은 "경찰이 총연맹을 침탈했다는 건, 그만큼 노동계를 얕본다는 것"이라며 "일요일 쉬는 날 TV 생중계로 (민주)노총 본부를 점령해가는 모습을 본 노동자들 모두 울분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러다가는 정부가 한국노총에도 강제로 들어올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느꼈다"고 털어놨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부터 통상임금 지도지침, 공공부문 정상화 대책 문제가 터지면서 정부를 향한 한국노총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정부가 기업에 유리한 내용을 결정해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다는 지적이었다.

정문주 정책본부장은 "이 때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무노동'에서 '반노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인수위 때부터 '노동'이 없긴 했지만, 우리가 가서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적극 협조했어요. 그런데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무노동'이 아예 '반노동'으로 바뀌어버린 거죠. 지금은 노동계를 무시하고 짓밟고 있잖아요. 정부는 자꾸 '비정상의 정상화'를 얘기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야 말로 비정상입니다."

"박근혜식 '일방주의', 노정관계 파탄 원인"

2월 들어 김동만 신임 위원장 체제로 집행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한국노총과 정부의 관계는 냉랭하다. 지난 17일에는 방하남 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에 직접 찾아와 노사정위에 복귀해달라고 제안했지만 김동만 위원장은 "경찰의 내셔널센터(민주노총) 침탈 이후 경색된 분위기를 풀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노총이 정부와 1년 만에 등을 지게 된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내부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일방주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 현안과 관련해 노사와 충분히 논의를 한 뒤 정부 방침을 발표해야 하는데, 노동계는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방침을 하달한다는 것이다.

정 정책본부장은 "박근혜 정부는 노사관계라는 자체를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노조와 사전에 협의해서 노동 현안을 풀겠다는 인식 자체를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병균 사무총장은 "박근혜 정권이 1년 동안 일방주의를 고수하면서 노동계와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노총도 정부를 향해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남은 4년, 박근혜 정부와 한국노총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하기에 달렸다는 입장이다. 일방주의를 버리고 처음 방문했을 때 약속했던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바람이다.

김동만 신임 위원장은 취임 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동정책을 통보하는 식의 태도를 고수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와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다"면서 "정부가 민주노총 침탈 사건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노동계와의 신뢰를 회복해야 우리도 정부에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정책본부장은 "지금 노사정 관계에서 '노동'이란 상다기라 부러져 있으므로, 이 다리를 세우지 않고 대화를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는 자세로 나와야 대화를 통한 노동 현안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박근혜 정부가 지금처럼 '원칙'을 이유로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 관계자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정부 때는 한국노총이 길거리 투쟁에 나선 적은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박근혜 정부가 일방주의식으로 가면서 우리랑 평행선을 그린다면…. 결국 길거리로 나가서 싸우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그런 일은 없길 바라야죠."

역대 정부 vs. 한국노총
한국노총은 1946년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으로 발족했다. 이후 1954년 어용 성격이 강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으로 개칭됐다가 1960년 11월 다시 한국노총으로 결성됐다. 현재 국내 양대노총 중 한 곳으로, 178만1000명의 조합원(2013년 기준)이 가입돼있다. 

한국노총은 1960~1970년대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개입 때문에 노동운동에 적극 나서지 못 한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 움직임이 일면서, '어용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움직임이 내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1997년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려는 노동법 '날치기'에 항의해 민주노총과 4차례에 걸쳐 연대 총파업을 벌였다.

노동문제를 노사 자율에 맡긴 김대중 대통령 때는 정부와 한국노총이 서로 큰 갈등 없이 5년을 지냈다는 평이 나온다. 오히려 한국노총은 김 전 대통령과의 정책 연대를 맺기도 했다.

한국노총-노무현 정부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비정규직 법안 등의 문제로 노동계와 극심하게 대립했었다. 당시 한국노총은 정권퇴진운동에 돌입하면서 무기한 총파업 농성을 벌였다. 이후 한국노총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정책연대를 맺었지만, 총선 공천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면서 2년도 안 돼 연대를 파기했다. 



태그:#한국노총, #박근혜정부, #박근혜 1년, #노동부,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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