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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방에서도 추위를 느끼는 집사람.
 안방에서도 추위를 느끼는 집사람.
ⓒ 이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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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안 사람 나이는 78세, 나와 동갑내기다. 우리 부부는 아들 한 명과 딸 두 명을 두었다. 딸들은 시집을 가서 집을 떠났고, 아들은 정신 장애 1급 환자로 19살 때 발병해서 지금 흰 머리카락이 무성한 50세가 되었다. 아들은 오산 승우 요양원에 장기간 입원 중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집에 전화가 '따르릉'하고 오면 가슴부터 내려앉는다.

집으로 오는 전화는 대부분, 아들이 요양원에서 사고를 쳤던가,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후송해야 한다는 전화들이다.

우리 부부는 자식 걱정에 주름살이 깊이 패이고, 머리카락이 남달리 빨리 희어졌다. 남들은 술 장사를 해 가면서도 자식들이 KIST를 나와 일류기업에 취업하거나, 의과대학을 나와서 종합병원의 전담 의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자연히 우리 부부는 우리 자식을 하면, 가슴이 썰렁하게 내려앉아 싸늘한 냉기를 느끼곤한다. 우리 부부는 겨울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추위를 타서, 나는 두꺼운 내복을 입은 다음 겨울 잠옷을 입고 그 위에 바지와 오리털 잠바를 걸치고 겨울을 보낸다.

우리집 사람은 나보다 한 술 더 떠서 두꺼운 내복을 두 벌 씩 입고 겨울 잠옷을 입은 다음, 누비바지와 누비 윗옷을 걸치고 목도리를 3개씩이나 목에 감고, 양말은 3켤레씩 껴 신고, 그 위에 버선을 2개를 덧신었다.

집사람이 문 밖을 나가려면 버선 2짝과 양말 2겹은 벗어야 신을 신을 수 있었다. 두터운 겨울옷 차람으로 인하여, 우리 두 부부는 마치 펭귄이나 된 듯 뒤뚱거리며 걸었다.

집사람은 주한미군 우체국 사무직원으로 40년간 근무하였다. 미국 이민법에서 규정한, 미국정부기관에 15년 이상 근무한 자에 해당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으면 미국 이민이 보장된 사람이었다. 이런 후한 조건에도 정든 한국을 떠나기 싫어서, 우리 부부는 한국 국적을 자랑스럽게 지켰다.

집사람은 주한 미군 부대를 퇴직한 후에도 영어 사랑만은 가시지 않아서, 아침 6시에 89.1MH 영어회화를 매일 듣고 필기한 300페이지 공책이 30권이나 쌓였다. 집사람이 영어회화를 열심히 듣고 반복 복습하면서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영어 회화 공부를 열심히 한다기보다 밀려드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을 잠시 잊어버리려는 방편으로 영어회화 방송을 열심히 듣고 배운 것으로 보였다.

집사람은 취미로 일주일에 한 번 해수탕에 갔다. 해수탕에 가는 날은 소풍가는 날처럼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침 9시에 해수탕에 가서 저녁 7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목욕탕에 가면 20분을 있기 힘이 들어 목욕탕에 들어갔다 금방 나오고 마는 데, 집사람은 10시간을 해수탕에 들어가 몸을 지지고 나서, 시원하다고 하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집에 돌아온다.

요 사이엔 승우 정신 요양원에 입원 중인 아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아버지 언제 면회 오세요?"라고 물어오는 전화가 온다. 정신이 혼미해진 결과인데, 어쩌다 요양 중인 아들에게 전화가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두 달에 한 번 2째 주 금요일 날 면회를 주기적으로 가는 아버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면회를 하는 중에도 "아버지 언제 면회 오죠?"하고 똑같은 물음을 반복하여 나에게 묻는다.

내 친구 중에 지방은행 지점장으로 있던 이 외아들은 유신정권 때 연세대 영문학과를 다녔다. 그 때 유신정권 반대 학생 데모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강제 징집되어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그 친구 아들은 최전방 초소에서 야간 보초 근무 중 자신이 소지한 자동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을 했다.

김영삼 정권 때, 유신 항쟁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최전방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위로금 3억이 유신정권에 항쟁하다 죽은 열사로 아들이 추서 되어 열사의 아버지에게 주어져서, 정낙이가 은행을 퇴직하고 리스산업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려 알거지가 된 딱한 처지에 생활자금이 보태지는 금쪽같은 돈이 되었다.

친구는 똑똑하고 자랑스럽던 아들이 죽자, 아들 생각에 매일 폭음으로 생활을 이어 갔다. 우리 집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 집과 같이 자식 농사를 그르친 것이다.

집사람이 아들 생각에 냉가슴을 앓을 때마다 나는 집사람에게 "내 친구를 보세요"라고 말하고, "여보, 우리집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나마 살아있어서 아들이 '아빠!, 엄마!'를 부르지 않소?" 라고 말하고 뒤돌아서 눈물짓는다.


#집사람#안방에서도 추위에 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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