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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그만큼의 역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등국민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라면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략) 우리가 희망하고 꿈꾸는 미래사회의 실현, 그다지 거창한 일은 아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운영으로 신뢰와 찬사를 받는 정치, 학생들과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교육현장, 정당한 근로 대가로 일할 맛이 넘치게 하는 산업현장, 생각해보면 지극히 평범한 욕구가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필요로 할 뿐이다." - 홍문종 의원 블로그 '미래를 꿈꾸자(2012.1.15) 글 중에서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재작년 블로그에 쓴 글 일부다. 이 글에서 그는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투자임을 강조하면서, 일등국가와 일등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글을 읽으면서 홍문종 사무총장이 말하는 일등국가, 일등국민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신뢰와 찬사를 받는 정치, 즐겁고 행복한 교육현장, 일할 맛이 넘치게 하는 산업현장이 지극히 평범한 욕구라는 홍문종 사무총장. 그러나 최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포천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 사태(관련기사 : 아프리카노동자 '눈물의 기자회견'...하루식비 4천원, 체불임금 1억5천)를 접하면서 그의 숨겨진 욕구는 위에 언급된 글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을지로 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이 12일 경기도 포천 무림마을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 외국인노동자 기숙사를 방문해 벽면에 핀 곰팡이를 살펴보고 있다.
▲ 곰팡이 핀 벽에 놀란 은수미 의원 민주당 을지로 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이 12일 경기도 포천 무림마을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 외국인노동자 기숙사를 방문해 벽면에 핀 곰팡이를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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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된 사진 속 이주노동자의 눈빛을 접하면서 참 착잡했다. 이국땅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 카메라를 쳐다보는 한없이 깊은 눈망울은 절망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난방도 안 되는 방, 몸을 뉘이기도 좁은 합판 위에서 잠을 청했을 그들... 그들이 꿈에 보았을 고향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월급 60만원에 여권까지 압수... 이건 뭔가

일등국가 일등국민, 듣기에는 좋은 말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파시즘의 관념을 내포한 용어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등국가 일등국민을 외치는 정치인에게는 전체주의의 다그침이 항상 존재한다. 그 다그침에 동화된 국민들은 우월주의와 배타주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일제 침략 시 일본은 내선일체를 통해 일등국민의 대열에 합류하라며 을사늑약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근세 침략 전쟁 대부분은 일등국가, 일등국민의 우월성과 배타성이 원인이었다. 그래서 정치인의 일등국가, 일등국민 주창은 인간의 보편적 인권에 앞서서는 안 된다. 보편적 인권에 기초하지 않는 일등국가론은 침략의 합리화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사태는 약자에게 한없이 냉혹한 정치인의 우월적 사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월급 60만 원에 귀국 비행기표를 미리 사느라 매월 10만 원씩 공제하고 여권마저 압수하는 행위는 이국 노동자들을 노예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홍문종 의원은 자신의 글에서 '정당한 근로 대가로 일할 맛이 넘치게 하는 산업현장'을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프리카 예술박물관은 정당한 근로 대가가 주어지는 일할 맛 넘치는 산업 현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우월감과 이국 노동자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야만의 인식이 빚어낸 참상이다. 그가 말하는 일등 국민이 그가 생각하는 이등, 삼등 국민에게 못할 짓을 했다. 인권의 침략이고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필리핀 이주여성 이자스민을 비례대표 17번에 배정했다. 100만이 넘는 이주 외국인들을 대변하고, 대한민국이 이들을 외면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게 공천 이유였다. 야당과 언론에 의해 학력 논란이 일자 새누리당은 소수자를 보호하는 비례대표 공천에 흠집을 내려한다 거나, 편협한 인신공격이라며 맞받았다. 새누리당의 이주여성 비례대표 공천은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대한민국 법의 테두리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진일보한 공천이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를 대하는 새누리당의 태도에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다문화 사회를 두고 "깜둥이와 같이 산다"거나 몽골 학생들 앞에서 "야만족이 유럽을 200년이나 지배했다"는 등 반인권적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연임이 가능했던 건 새누리당의 지지와 동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격을 낮춘 건 야당이 아니라 홍문종 사무총장

민주당 을지로 위원장 우원식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12일 경기도 포천 무림마을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 외국인노동자 기숙사 윌리씨의 방의 바닥을 손으로 짚어 보고 있다.
▲ 을지로 위원들 "이 냉골에서 어떻게..." 민주당 을지로 위원장 우원식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12일 경기도 포천 무림마을에 있는 아프리카박물관 외국인노동자 기숙사 윌리씨의 방의 바닥을 손으로 짚어 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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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사태 이후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의 묵묵부답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소위 친박 핵심인사로 분류되는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이 관여된 일이건만, 지난 총선에서 이자스민을 극구 변호하며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주창할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사학비리 연루에 이어 수해골프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홍문종 의원이 여당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아이러니하지만, 이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새누리당을 더 이해할 수 없다. 특히 100만 이주외국인을 대변하겠다던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의 초심이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일등국가, 일등국민을 외친다 해도 인권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은 변명이고 폭력 방조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해 특검을 요구하는 야당을 향해 '국격을 낮추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홍문종 사무총장. 하지만 그는 한편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었다. 국격을 훼손한 건 야당이 아니라, 홍 사무총장이고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다.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안 신의도 염전 노예생활 소식을 접한 뒤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이주노동자의 삶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장애인들을 섬에 감금하고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냉방에서 지내게 하고,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며 노예 노동을 강요한 염전 주인이나 홍문종 사무총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박물관의 행위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누구는 숱한 손가락질과 법의 처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은 여당의 사무총장이라는 권좌를 지키고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비정상적인 일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대통령 말을 존중한다면 홍문종 사무총장은 스스로 용퇴해야 한다. 또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침묵을 거두어야 한다.


태그:#홍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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