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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날 강 씨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은 1992년 대법원 판결 등 자신들의 판단과 징역 등 일련 과정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저는 당사자로 재판받았지만 주변에서 똑같이 아파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 분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고 바람"이라고 말했다.
▲ '유서 대필' 강기훈 무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날 강 씨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은 1992년 대법원 판결 등 자신들의 판단과 징역 등 일련 과정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란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며 "저는 당사자로 재판받았지만 주변에서 똑같이 아파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 분들의 아픔이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고 바람"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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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무죄 판결 순간에도 강기훈씨는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16일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유서대필사건' 재심 판결(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 부장판사 권기훈)이 예정된 서울고등법원 505호 법정 방청석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찼다. 마련된 좌석 36석은 물론이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선 채로 재판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계륜, 이미경 민주당 의원과 김희선 전 의원,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의 모습도 보였다. 몇몇은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강씨는 일찌감치 오후 1시30분 경부터 와서 복도에서 대기했다.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오후 1시55분 경 그는 법정으로 들어왔고, 곧 변호인석과 반대쪽 검사석도 채워졌다. 2시 5분, 선고 공판이 시작됐다. 재판장은 꽉 들어찬 방청석을 보며 "관심을 가져온 분들이 많은데, 판결 선고가 마칠 때까지 정숙한 상태를 유지해달라"면서 준비한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1991년 국과수 감정 결과 공식적으로 뒤집혀

우선, 자살방조에 대한 1991년 기소 자체가 법리적으로 성립이 안되며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 주장에 대해서 판단했다. 결론은 '이유 없다'. 몇몇 변호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번째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강씨를 유죄로 만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재판부는 "한글의 필적은 문자 형태가 단조롭고 쓰이기 쉬워 많은 사람에게 상당부분 유사성 나타나는 특성 있어서 판별을 위해선 희소성 있으면서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항상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면서 1991년 감정서에서 언급한 필적이 "항상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강씨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들었다. 재판부는 당시 감정서가 ▲단어를 잘못 판단하고 감정했거나 ▲필적이 다른 부분이 있는데도 이를 분석대상에서 제외했거나 ▲부적절한 대조자료를 이용해 감정했다는 점 등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계속 지적했다. 이어 "1991년 감정결과는 신빙성에 있어서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강씨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검찰 주장을 배척하는 판단 내용을 계속 읽어내려갔다.

"전민련 업무일지가 조작됐다면 그같은 형태로 조작할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4~5시간만에 여러 가지 필기구를 섞어 조작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기가 분신자살 2~3개월 전인 것을 보면 조작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강씨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변호인단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강씨가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더 나아가, 정작 유서는 김기설씨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는 데까지 미쳤다. 재판부는 여러 가지 증언과 증거를 언급하며 "유서가 피고인이 아니라 김기설이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1991년의 그 난리는 무엇인가. 지난 23년 세월은 또 무엇인가. 본인이 직접 쓴 유서였는데.

재판부 "김기설이 직접 유서 작성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왼쪽 두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김상근 목사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 '유서대필' 무죄 판결에 축하하는 김상근 목사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강기훈 씨(왼쪽 두번째)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김상근 목사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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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만 남았다.

재판부는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1991년 국과수 감정서는 신빙성 없고, 검사가 제출한 다른 증거들만으로는 피고가 김기설의 유서를 작성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워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에 따라 법원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자살방조에 대해선 무죄 선고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씨의 완승이었다.

이렇게 23년만에 '유서대필사건'은 '유서대필조작사건'으로 뒤집어졌다.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강기훈씨는 1991년부터 자신을 변호해온 이석태 변호사에게 허리를 숙여 공손히 축하 악수를 나눴지만, 여전히 표정은 무덤덤했다.





태그:#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김기설,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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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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