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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진보당 사건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암살당하거나 처형됐다. 이후 박정희는 '인혁당' '민청학련' '긴급조치 1~9호' 등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고문하고, 투옥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들을 정죄한 판결들이 잘못됐다며 결과가 뒤집히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한 피를 흘렸는가. 그런데 판결이 뒤집힌 것은 생존해 계신 분들의 삶이 고통과 가난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지금이라도 그분들의 억울함이 풀려 다행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결과가 뒤집어진다고 한들 그들의 힘들었던 삶을 누가 보상하겠는가. 더욱 역설적인 것은 그 잘못된 판결을 내린 이들이 버젓이 살아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회를 호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개강좌에서 내란음모?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언론에 공개된 '내란음모' 결심공판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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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런 조작의 역사는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을 둘러싸고 '내란음모 사건'이 발생했다. 무슨 내란음모를 공개강좌에서 한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10여 명 이상 참여했다는데, 나라를 뒤집겠다는 모임을 애들 데리고 가족 소풍 오듯 모여서 한다는 말인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보자'라는 이가 제공한 녹취록은 수백 군데가 왜곡돼 있어 증거로 삼을 수 없는 상태고, 법정에서 일일이 녹음을 듣고 재판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 사건은 오는 17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의사를 결정하는 제도라기보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가능한한 소수의 의견을 주류의 흐름 속에 수렴해 나갈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선거로 당선된 진보 세력을 말살하겠다' '국민의 10% 이상이 지지한 정당을 다수당이 해체하려 한다' '51%가 10%를 해체하고 죽인다'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는 이 정부가 종교인까지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인 까닭은 그들의 원죄인 부정선거 스캔들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다. 민족의 장래를 '대박'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천박함을 탓하지는 않겠다. 북에서 강하게 나오면 '호전적이다, 전쟁광이다'라고 하고, 평화제의가 나오면 '못 믿겠다'고 비난하는 것은 오직 남의 체제로 흡수통일하겠다는 것 아닌가. 바로 그런 행태가 호전적인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집권 세력은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모면하기 위해 북을 들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죄가 또 다른 죄악들을 낳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부르고,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른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나중에 제 목을 조르게 될 것이다.

로마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이유

예수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셨다. 그런 착한 분을 왜 로마가 정치범을 살해하는 십자가형에 처했을까? 관용을 토대로 하는 로마가 할 일이 없어 이렇게 착한 복지를 펼치시는 분을 정치범으로 처형했나?

예수께서 '민중을 선동했다'든가 로마라는 식민지 체제에서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여"라고 외치며 예루살렘을 입성했다든가, 뒤로는 로마와 협력하며 로마의 지배를 포장하고 합리화시키는 유대 지배체제의 중심인 성전을 뒤집어 엎으셨다든가 하는 것은 분명 정치적 행위이지만 그것만으로 십자가를 지기에는 이유가 좀 약하다. 그 답은 예수께서 실현코자 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를 따르는 교회의 실천에 있다. 본래의 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희랍어로 '에클레시아'(ekklesia)이다. 여기서 에크(ek)는 '밖에' '밖으로'라는 뜻이고, 클레시아(klesia)의 원형은 '클레오'라는 동사다. 클레오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데 '부른다' '모으다'라는 뜻이다. 즉 문자적 뜻은 '밖에 회중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헬라식 민주주의에서 통치기관을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공의회' 또는 '민회'라고 부른다. 그들은 직접 민주제도인 광장(아고라)의 정치를 했다. 의회도 있지만 최고의 권력기관은 광장에 모인 회중들의 에클레시아다. 의회는 에클레시아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보조기관에 불과했다. 에클레시아는 행정관을 선거하고, 대사를 보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재판의 집행과 법률제정에 있어서 최후 결정권을 가졌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로마는 B.C. 509년에 이미 공화정을 세웠다. 그들이 자기 역사의 굉장한 긍지로 삼는 것은 에클레시아를 중심으로 한 민주정치다. 그러나 이 정치 참여의 주인이 되는 시민권은 로마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도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가능했고 로마인(헬라인), 자유인, 남자, 성인에 국한돼 있었다.

당시 로마의 시민들은 정복한 점령국가에서 막대한 세금을 모아들이고 잡아온 노예로 최고의 특권을 누렸다. 식민지 국가의 주민들은 검투사 등으로 로마의 시민을 위한 노리개가 됐고, 그들의 부를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반면, 하나님의 교회가 추구하는 정치방식은 다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 하나님의 백성은 로마의 시민의 자격에서 제외됐던 가난한 자가 주인이 되고 이방인과 노예·여자도 함께 참여한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교회는 희랍의 최고기관인 에클레시아라는 용어를 그대로 크리스천의 새로운 모임을 표현하는 말로 받아왔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들이 배척했던 사람들이 주인이 되며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나라라고 했다. 그들은 교회라는 말 안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담아왔다. 그것이 교회의 출발이다. 그러니 로마와 충돌하고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병이나 고쳐주고 빵이나 먹여주는 분이었다면 굳이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었으며 교회가 큰 박해를 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험한 길인 줄 알면서도 굳이 좁은 길로 나가기를 다짐한 무리들이었다. 

모두의 평화 없다면... 그건 특권층을 위한 정치

박근혜 정부는 비판적인 종교인에 대해 '종교인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한다. 본래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 있고, 밖에 있고 우리의 삶과 역사가 진행되는 현장에 있는 것이다.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참여적인 것이 교회다. 회중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지는 것도 교회이다. 교회는 정치를 배제한 종교적 영역 안에 있는 말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클레시아)의 머리라는 선언은 그리스도의 주권이 교회나 종교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체제, 제국과 맞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통치로 세상을 세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정치와 공권력이 하나님 없이 나아가면 그것은 소수의 기득권을 지키는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의 이익, 즉 홍익인간이든, 민주주의든 모두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정치는 특권층을 위한 사병의 정치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다. 월터 윙크는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이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악한 세력(정치·경제·문화적인 지배체제라는 구조악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실재, 로마제국의 악마적인 영)들을 연구했다. 그는 요한복음의 '세상'(kosmos, 코스모스)이라는 단어를 인간을 소외시키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인 '체제'(system)라고 번역한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반박하기를,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23)고 했다. 윙크는 이 문장에서 코스모스를 세상(world)이라고 번역하면, 마치 예수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딴 세상의 존재, 그리하여 환영만의 사람(docetin person)인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세상'을 '체제'로 해석하면, 그의 말은 문자 그대로 맞는 것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체제에 속한다. 그는 로마의 체제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코스모스를 거부하는 것은 이 세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말하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kosmos·지배 체제)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kosmos·지배 체제)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고 했다.

로마라는 지배체제의 가치와 예수의 가치는 서로 같은 표준으로 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예수는 옛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질서를 건설한다. 넘어지고 깨지고 힘있는 자들의 밥이 되고 당할지라도 우리는 나아간다. 이 불의한 체제를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고 담대하게 나아간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그 나라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간다. 그것이 이 땅에서 정의로운 양심을 가진 자들이 가야 할 행보이고, 신앙인들이 나가야 할 마땅한 길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 33절)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경호님은 들꽃향린교회 목사입니다.



태그:#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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