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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 유혜준

"나는 천재가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겠지만 석수시장을 방문했을 때 인상이 깊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지난 18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양에서 <오마이뉴스> 주최로 '찾아가는 10만인클럽 특강'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안양의 '석수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천재기'가 있다며 "다 허물어져 가는 재래시장에서 예술적인 프로젝트를 했다"고 극찬했다.

27일 오전, 박찬응 본부장을 군포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나 박 시장과의 인연, 석수시장 프로젝트를 포함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기획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하는데,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 본부장은 지난 2013년 3월, 군포문화재단이 창립하면서 예술진흥본부장으로 채용됐다. 2013년 2월 25일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파출소가 돌아왔다'는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했고 군포문화재단은 연말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군포문화재단은 출범하면서 인력채용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논란을 빚어, 군포시의회가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를 열었고, 인력채용문제와 관련해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감사원은 지난 9일, 군포시의회에 군포문화재단의 인력채용 문제에 대해 예비감사를 벌인 결과 "위법·부당한 사항을 발견할 수 없어 '공익사항에 관한 감사원 감사청구처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이와 관련, 박 본부장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감사원에서 기각결정을 했으니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고 재단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박 본부장과 한 인터뷰 내용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마이뉴스>의 '찾아가는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천재기'가 있다고 극찬했다. 언제 박 시장을 만났는지?
"지난 2009년 겨울로 기억한다. 나를 인터뷰 하러 석수시장으로 찾아오셨다. 당시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대표였는데, 전국의 지역문화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었다. 내 방에서 인터뷰를 하고, 같이 순댓국을 먹었고, 시장을 같이 둘러보았다."

당시 박 본부장은 석수시장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재래시장 살리기를 하고 있었다. 박 시장은 박 본부장에게 '석수시장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와 성과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보통의 재래시장은 돈으로 화장을 한다. 돈을 들여 화장을 한 것을 보고 화장 잘 했네, 예쁘네, 한다. 석수시장은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게 내 콘셉트였다. 나는 공공미술을 돈을 투여해서 '뼁끼칠'을 하고 화장을 해서 보여주는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도 주민이고, 주민도 예술가로 그냥 같이 사는 거다. 살면서 같이 하다 보니 공동체가 된 것이지,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 식의 공공미술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럴 돈도 없었다."

박찬응 본부장 "석수시장 프로젝트, 30년 내다보고 시작했다"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 유혜준

그는 시장으로 국내와 국외의 예술가들을 불러 들였다. 가게와 가게 사이에 예술가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시장에 머물면서 활동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 예술가들은 한동안 시장에 머물다가 떠나고, 그 자리를 다른 예술가들이 메웠다. 시장에서 예술이 일상이 된 것이다. 시장상인과 예술가들이 이웃이 되면서 시장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그것이 시장 외부의 치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박 시장은 그런 것을 중요하게 본 것 같다. 나는 30년을 내다보면서 석수시장 프로젝트를 했다. 문화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개념으로 하면 안 된다. 10년, 20년, 30년, 꾸준히 했을 때 그 흔적들이 묻어나고, 외부에서 그것을 보러올 때 관광화가 될 수 있다. 5년동안 '뼁끼칠' 해놓고 와서 보라고 하면 그게 무슨 문화가 되나. 그건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석수시장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그곳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박 본부장의 아버지는 시장에서 만화방을 하고, 부동산을 하기도 했단다. 이후 박 본부장이 석수시장에서, 부근에서 미술학원을 하거나 카페를 하면서 머물렀다. 그의 삶에서 석수시장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때에는 석수시장이 갖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석수시장을 '재발견'하게 된 것은 2002년.

당시 박 본부장은 하던 일이 쫄딱 망했다. 도망치듯이 가족을 이끌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휴식을 빙자한 일종의 현실도피였다. 차량을 빌려서 텐트를 싣고 유럽 9개국 22개 도시를 둘러보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면서 작은 마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안에 깃든 역사를 함께 보게 되었다는 것이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석수시장이 오버랩되면서 그곳도 마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작업실 천장을 뜯어내고 사무실을 개조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획한 것이 '리빙 퍼니처'였다."

그는 주로 외국의 작가들을 불러들여 전시를 하면서 '석수시장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2002년, 박 본부장은 예술공간 '스톤 앤 워터'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다.

옷가게와 생선가게 사이에는 '예술'이 있다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2005년부터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2002년부터 구상에 들어갔기 때문에 시작점을 2002년으로 잡을 수 있다. 2007년부터는 '석수시장 아트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의 석수시장 프로젝트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뉴타운 개발을 시작하면서 위기에 몰린다. 석수시장이 만안뉴타운 개발지역 안에 포함이 되면서 사람들이 개발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것.

"나한테는 가라앉는 시기였다. 나는 30년을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하는 건데 이제 석수시장은 개발로 사라지게 된 거다. 더 이상은 할 수 없구나 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가 뉴타운 반대 얘기를 꺼내면 돌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박찬응 본부장은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며 "어차피 개발될 것이라면 개발될 때까지만 신나게 예술하는 사람들과 놀다 가자"는 생각을 한다. 석수시장 프로젝트에 '아트'가 포함된 건 그 때문이다. 판은 벌어졌고, 외국의 예술가들을 석수시장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옷가게와 생선가게 사이의 가게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창작활동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 때 박 시장이 그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뉴타운은 부동산 경기의 하락으로 거품이 빠지면서 지역주민들이 반대로 돌아섰고, 석수시장은 현재진행형으로 '예술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현재 박 본부장은 석수시장에서 '발을 뺀 상태'.

"석수시장은 내가 있든 없든 돌아가고 있다. 내가 없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문화예술생태계이겠나. 내 개인의 꿈이지. 능력있는 친구들이 잘 만들어내고 있다." 

- 군포문화재단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1년과 2012년에 굉장히 힘들었다. 소셜 아트 컴퍼니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빚만 지고 손을 떼야 했다. 직원들 퇴직금을 주지 못해서 회사의 주식을 퇴직금으로 나눠주고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빚만 남은 상황에서 그는 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다시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진 그가 택한 곳은 뉴욕이었다.

"딸과 같이 뉴욕으로 갔다. 채소시장에 가서 배달을 해볼까 하고. 친구가 채소 도매시장에서 일을 한다. 뭔가 도망갈 구실을 찾고 있었다."

뉴욕에서 눌러앉을 수도 있었던 그는 결국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에 지원, 채용된다. 당시 그는 안양문화재단 예술총감독에도 지원했지만 서류심사만 통과했다. 그는 군포문화재단도 "서류심사는 통과해도 면접에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며 "면접을 본 뒤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문화재단의 역할, 공연장 중심에서 벗어나야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본부장 ⓒ 유혜준

"문화재단이 예전에는 공연장 중심으로 시설관리만 해왔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는 문화재단이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하는 시기가 왔고, 그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해 뽑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현재는 석수시장 프로젝트와 같은 새로운 기획이,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시기로 문화재단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데 자신이 적임자라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박 본부장은 새로운 판을 군포에서 벌여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화재단에 입사한 그는 군포시를 돌아다니면서 빈 공간으로 버려진 파출소들을 찾아냈고, 그 공간을 '예술'로 채우는 '파출소가 돌아왔다'는 기획을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문화융성 코드로 복합문화커뮤니티 센터를 동네마다 구축하라는 콘셉트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파출소가 돌아왔다'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콘셉트를 내가 잡아냈지만, 재단이 함께 일을 추진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박 본부장은 "지원금을 따와서 군포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했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며 "군포에서 예술의 새로운 판을 벌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군포문화재단 창립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광부장관상'을 받았다는 것은 큰 성과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올해 계획은?
"파출소가 돌아왔다 시즌 2와 마을아리랑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올해는 군포의 축제인 철쭉제를 맡아서 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철쭉제와 다른 것을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종의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해온 관례가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유형의 축제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나 혼자 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과 같이 합의하면서 힘을 합쳐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 석수시장 프로젝트와 문화재단 일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재미있나?
"여기(문화재단)는 무엇을 하면 받쳐주는 힘이 있어서 좋다. 석수시장은 혼자서 삽질을 하면서 물이 나올 때까지 우물을 파야했다면, 여기는 일을 추진하면 동력이 팍팍 붙으니까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어 참 좋다."


#박찬응#박원순#석수시장#군포문화재단#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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