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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은 자신들만이 지혜롭다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 두 남녀가 지극히 사랑하는 순애보 또한 인간들만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인간만 지혜롭고, 인간 세상에만 사는 이야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 사는 세상에 이런 곡절과 저런 사연이 무지기수로 있듯 새들이 사는 세상, 풀들이 자라는 대지, 곤충들이 서식하는 숲에도 그들이 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더불어 만들어지는 사연이 있습니다.

550여 장 사진으로 엮은 자연의 사는 이야기

<행복한 자연 읽기>┃글·사진 박영욱┃펴낸곳 자연과 생태┃2014.1.13┃1만 6000원
 <행복한 자연 읽기>┃글·사진 박영욱┃펴낸곳 자연과 생태┃2014.1.13┃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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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연 읽기>(글·사진 박영욱, 펴낸곳 자연과 상태)는 박새 선생님으로 알려진 저자가 550여 장의 사진으로 엮어낸 '자연계 사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는 숲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새와 곤충, 풀과 꽃들에 얽힌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엿보 듯 찍은 사진, 엿듣 듯 모은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자연 속 생명체들의 사는 이야기를 포토에세이처럼 구성해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쫑긋해집니다. 인간만 지혜롭고, 인간만 모성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린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쇠재두루미 가족을 만났습니다. 어린 새를 가까이서 촬영하고 싶은 욕심에 다가가서 차를 세웠는데 새끼 두루미는 뛰어가다가 땅에 납작 엎드렸고, 부모 새는 새끼들을 두고 백여 미터를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목을 쭉 빼고 큰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습니다. 새끼들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이자, 나의 관심을 자기들에게 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미안한지 빨리 차를 돌려 자리를 떠났습니다."(<행복한 자연 읽기> 26쪽)

쇠재두루미 어미는 저자가 나타나자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일지도 모르는 저자를 고성과 춤으로 새끼들과 떨어진 곳으로 유인합니다.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과장된 행동은 새끼를 보호하려는 모성애이며 지혜입니다.

쇠재두루미 어미만 모성애가 지극한 건 아닙니다. 겁이 많기로 유명한 까투리가 알을 품을 때는 사람이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때까지 다가가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유래한 '꿩 먹고 알 먹고'란 말은 위대하고 숭고한 모성애의 상징입니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떠난 집을 황토흙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는 동고비. 인간들만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황토방도 알고 보면 이렇듯 동고비가 원조입니다. -<행복한 자연 읽기> 90쪽-
 큰오색딱따구리가 떠난 집을 황토흙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는 동고비. 인간들만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황토방도 알고 보면 이렇듯 동고비가 원조입니다. -<행복한 자연 읽기> 90쪽-
ⓒ 자연과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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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색딱따구리의 빈 집은 스스로 구멍을 뚫지 못하는 새들에게 참으로 고마운 임대주택입니다. 임대료도 받지 않으니, 말 그대로 무상임대주택이지요. 찌르레기와 파랑새는 살짝 청소만 한 뒤 바로 사용하지만, 황토방 리모델링의 원조 격인 동고비는 진흙을 물어다 입구에 발라 구멍의 크기를 조절하고, 벽에 흙을 바르며 고쳐서 사용합니다."(<행복한 자연 읽기> 86쪽)

'최첨단'이라는 말로 수식되는 장비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내놓는 많은 결과물들 중 적지 않은 것들은 잠자리의 눈, 거미가 뽑아내는 거미줄, 새들의 날갯짓 등을 포함한 자연계 현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들만의 전유물쯤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황토방도 알고 보면 이렇듯 동고비가 원조입니다. 책에서는 자연 속 이야기들이 어떤 사연을 속삭이듯이 소곤소곤 이어집니다. 까치가 한겨울에 집을 짓는 이유, 물까마귀가 폭포 안에 둥지를 트는 이유, 소리는 들리지만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못 찾겠다. 꾀꼬리'가 된 꾀꼬리 등에 얽힌 사연들 읽다보면 그들에게도 생존과 삶을 위한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황토방 원조는 동고비

"많은 사람들이 야생화는 산과 숲속에 피어 특별히 찾아가서 봐야 할 귀한 꽃으로 생각하며, 집 모퉁이나 보도블록 사이에 난 풀꽃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꽃 피우는 모든 풀이 야생화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야생화, 관심 밖에 있으면 잡초가 되니 야생화와 잡초의 차이는 관심인가 봅니다."(<행복한 자연 읽기> 342쪽)

'꿩 먹고 알 먹고'의 숨은 진실에서부터 '좋으면 야생화 싫으면 잡초'로까지 이어지는 쉰넷 꼭지의 글마다 사연과 곡절이 넝쿨을 이루고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도 마음을 졸이며 살아가야 하는 야속함이 있고, 목숨을 위해서라면 최후의 선택을 해야 할 결전의 순간도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어있는 들꽃에도 사연은 있고, 돌돌 말린 풀잎 속에도 내일을 꿈꾸는 번데기가 들어있다는 걸 알 때쯤이면 자연계의 모든 생명이 엮어내고 있는 사는 이야기에 저절로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새기다 보면 인간의 지혜를 훌쩍 뛰어넘는 순리(무위자연)가 느껴집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새기다 보면 인간의 지혜를 훌쩍 뛰어넘는 순리(무위자연)가 느껴집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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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땅에서 태어나고 사는 인간은 모름지기 땅을 본받고, 땅은 그것이 속한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그것의 근원인 도의 자연스러움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냥 훌훌 넘기며 보면 잘 찍은 사진에 몇몇 지식을 덧댄 관찰 기록에 불과하지만 무수한 새들과 곤충들, 들꽃과 들풀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하고, 자연과 조화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새기다 보면 인간의 지혜를 훌쩍 뛰어넘는 무위자연의 순리가 감칠맛 나게 읽힙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까닭, 곤충들이 활짝 핀 꽃들을 희롱해야 하는 이유,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걸고 애간장을 태워야 하는 어미들이 만들어 내는 숲속 사연과 이야기들을 55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엿보 듯이 보고, 엿듣 듯이 읽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새가 되고 마음은 야생화로 피어나는 숲속 친구가 돼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자연 읽기>┃글·사진 박영욱┃펴낸곳 자연과 상태┃2014.1.13┃1만 6000원



행복한 자연 읽기 - 박새가족의 숲속 친구들

박영욱 글.사진, 자연과생태(2014)


태그:#행복한 자연 읽기, #박영욱, #자연과 생태, #동고비, #황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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