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 마을의 표지석  여객선에서 내리면 보인다.
▲ 두 마을의 표지석 여객선에서 내리면 보인다.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인 진도군 조도면. 마치 흙 한줌 흩뿌려놓은 듯한 모양새를 자랑하는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그 섬들 한 모퉁이에 시간의 흐름을 모르고 사는 '섬속의 섬' 사람들이 있다. 진도군 조도면 관사도 얘기다. 주변 관매도 조도 등이 관광개발과 영화 촬영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목포에서 하루 한 번, 진도항에서 하루 한번 한 시간 가량 가면 아무도 반겨주는이 없는 썰렁한 선착장이 보인다. 선착장에 내려도 적막하기조차 한 부두엔 만남의 기쁨이나 헤어짐의 아쉬움도 없다. 섬은 외지인의 접근을 거부 하는지 민박집이나 먹을거리를 마련 할 구멍가게도 없다. 소소한 생필품 하나까지 일일이 육지에서 사와야 하므로 문명의 혜택을 잊어 버린지 오래다.

관사도는 조선시대에는 바로 바로 앞에 있는 대마도,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들을 관리하던 관청이 이 섬에 있었기 때문에 관청도라 부르기도 하였다. 178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의 기록에 의하면 '관청도(官廳島)'로 표기하고 있다. 군마를 키우던 막사의 흔적과 목장성이 남아있단다.

또한 유물과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의 석기인 마제석부 2점이 출토되어 당시에도 이곳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게 해준다. 처음 섬에 들어온 시기는 300여 년 전으로 정안 차씨와 한양 조씨가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 남북 방향으로 관사와 관작마을이 나뉘며, 관사마을 (26가구 42명)은 모래밭으로 되어있어 미역, 톳과 김 양식업이 발달했고, 관작마을( 30호 46명)은 자갈밭으로 되어있어 목축업과 전복양식이 발달하여 대조를 이룬다.

면적 1.626㎢, 해안선 길이 5.5㎞의 관사도는 면소재지인 조도와 8km, 진도항과는 17.1km, 목포와는 6시간 거리이다.

마을 앞 어선  톳을 뜯으로 가는 배
▲ 마을 앞 어선 톳을 뜯으로 가는 배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며 북서쪽에 높은 절벽이 이루어져 있다. 섬의 북쪽에 173m의 높은 산이 우뚝 소가 마치 차일을 쳐놓은 듯한 형국을 하고 있는데, 이 산이 빛을 가리어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그래서 주민들은 좀 살 만하면 이 섬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농산물로는 쑥과 보리와 고구마 등이 있으며, 연안 일대에서는 조기, 민어, 참치, 새우, 우럭, 장어 등이 많이 잡히고, 미역, 톳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주변 해역이 맑고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관사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모래가 많은 섬으로 유명했으나 근해 모래 채취탓인지 모래층이 줄었다. 주요 수입원은 톳, 미역, 쑥 채취로 년 평균 한 가구당 250~300만 원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데 절반 이상이 정부보조를 받고 있다. 

평균 연령이 72세인 노인들과 아이들이 있는데, 섬에서 가장 시급한 부분은 의료부분이다. 질병이 발생하면 육지까지 나가 진료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여객선이 하루에 2회 운행을 하고 있어서 병원에 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관사도는 면적은 넓은 편이지만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논은 4,000평, 밭은 27ha에 불과하다. 관사 마을 앞에는 200여 m 가량 가는 모래가 깔려 있는 해수욕하기 좋은 환경이어서 여름이 되면 피서를 겸한 낙도 봉사단이 심심치 않게 찾는 곳이다.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300년된 해송이 보이는데 예전에 당제를 모셨던 곳이지만 새마을 운동 이후 미신으로 간주되어 지금은 풍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섬 주변을 살펴보면 사방이 '쑥밭'인데 민간요법의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섬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라고 한다. 마을에 모여 있는 집들은 지붕이 낮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바닷가 마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마을 앞 해수욕장  모래가 고은 해변
▲ 마을 앞 해수욕장 모래가 고은 해변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관사마을에 모래가 많아 마을 처녀가 모래 서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전하듯 모래가 많다 하여 관사도라 한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이 유명했으나 근해 모래 채취탓인지 모래층이 줄었다. '관사도해수욕장'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해수욕장처럼 생겼나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백사장 길이는 200m, 모래가 가늘고 곱다.

방파제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 해안은 모래해안. 좌우로 모래가 있는 해안으로 섬 이름답게 모래가 많다. 방파제를 나오면 앞에 오래된 건물로 대합실이 있다. 마을 쪽으로 조금 더 가면 '관사도길 6'에 들어선 개인집 같은 건물 한 채가 있는데 이곳이 조도파출소 관사도출장소다. 그러나 지금은 폐쇄된 상태라고 한다.

해안길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해안길을 따라 마을 즉 서쪽으로 발길을 돌려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물탱크가 있고 그 옆으로 좁은 샛길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학교 가는 길이다. 이 길 끝에 교문이 있다. 조도초등학교 관사도분교장이다.

바닷에 있는 학교  조회대 위에 서 있는 관광객
▲ 바닷에 있는 학교 조회대 위에 서 있는 관광객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제법 넓은 운동장 뒤로 교사가 3채나 된다. 교실로 보이는 두 채는 크기만 다를 뿐 같은 형태로 나란히 있고 한 채는 서쪽 방향 교문 옆에 있다. 교실은 판넬로 된 조립식 건물로 아주 깔끔하다. 학생이 3명이란다. 1학년과 4학년 그리고 5학년 각 1명씩이란다. 학년 구분이 없는 교실 하나에는 서로 등 돌려 의자에 앉은 것으로 고학년 저학년을 구분한다.

1대1식으로 공부하니 가정교사처럼 좋은 점도 있지만 사회성 결여와 어릴 때 마음껏 뛰놀며 사귀어야 할 친구들과 단절이 자칫 소심한 이아로 만들 수 있다. 때마침 전교생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백사장에서 소꿉장난을 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동심으로 그려가고 있었다. 모래집을 짓고 모래 속에서 게를 잡고 여름이면 해수욕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관사도분교장은 1952년에 초등학교 본교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83년에 분교장으로 격화되어 조도초등학교에 소속되었다. 2년 전만 해도 10여 명의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3명만이 남은 것이다.
 
보건진료소 모습 전문의는 아니지만 마을의 의료를 돌아본다.
▲ 보건진료소 모습 전문의는 아니지만 마을의 의료를 돌아본다.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학교 옆으로 길이 하나 있는데 이 길이 보건진료소로 가는 길이다. 마치 별장을 연상시키는 건물로 붉은 벽돌로 된 건물 상태로 보아 새로 건립되었다. 옛 건물은 바로 앞에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까지 관사도에서 일박하기도 하고 세 번을 방문했는데 1997년도에 그 당시에 만났던 보건소장 최미영(당시 24세)을 기억한다.

지금은 10년 동안 근무를 마치고 육지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진료소장이다. 그는 처음에는 섬에서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불편해서 적응이 힘들었지만 "육지와 달리 섬에 사는 노인네들은 사소한 것도 잘 몰라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애를 먹을 보고 고쳐주었다"고 한다.

기술자는 아니지만 보이라 수리, 우물에 모타 설치, 집수리를 비롯하여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었다. 최미영씨는 마을에 품앗이 전통이 아직 계승되어 궂은일에 마을 사람에 협동하고 있으며 어르신들이 작은 것에도 고마워해서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보건소 옆에 낮은 언덕에 해송이 수십 그루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에는 약 1.5㎞ 남짓한 길에 350년 됐다는 해송 93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있다. 이 해송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는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곳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이 당산으로 예전에는 이곳에서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무교(巫敎)를 미신이라 단정지은 새마을운동으로 더 이상 고목에서의 풍습은 사라졌단다. 앞 바닷가가 모래밭 즉 관사도해수욕장으로 예전에는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가는 모래로 바람에 날려 관사 처녀 모래 서말 먹어야 시집간다는 속담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당산 숲이 사방 겸 방풍림 역할까지 했단다. 물론 지금은 해안도로를 낸다고 모래가 줄어들었다.
 
보건진료소에서 해안도로로 나오면 바로 마을회관이 있다. 그 주변에는 쉼터가, 그 뒤로는 해송숲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물양장이다. 바로 앞에는 긴 방파제가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가면 끝자락에 교회가 있다. 교회 건물 자체도 붉은 벽돌로 규모에 맞게 잘 만들어졌다. 아담한 예배당이다. 관사 역시 아담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관사마을 주민 중 절반 정도가 이 교회의 신도다.

교회 앞으로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섬과 연결되어있다. '소불장도'라고 한다. 마치 거북이 꼬리처럼 보인다. 시멘트포장길이 계속 이어졌다가 섬 앞에서 끊겼다. 오른쪽은 갯바위 해안. 사이사이에 모래가 많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며 북서쪽에 높은 절벽이 이루어져 있다.

우물과 펌푸 물이 귀한 섬의 모습
▲ 우물과 펌푸 물이 귀한 섬의 모습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해안도로를 타고 어느 정도 가면 왼쪽으로 건물이 한 채 보인다. 지난 2009년에 만들어진 해수담수화시설로 '상수도정수장'이다. 지하수를 이용한 상수원으로 이곳을 통해 마을로 상수원이 공급되는 것인데 고장이 잦다고 한다.

골목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공동우물이 있는데 1967년에 만들어진 우물이다. 40년도 넘은 우물인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조금 더 들어가면 보호수가 있는데 150여 년 된 팽나무와 250여 년 된 해송이다. 두 그루 다 높이가 13m. 둘레는 모두 3m가 넘는다. 그 옆으로 스님을 모신 사당인 관작 당집이 있다.

마을 정자  해변가에 있는 쉼터
▲ 마을 정자 해변가에 있는 쉼터
ⓒ 이재언

관련사진보기


70년대 초까지 제사를 지낸 이 당집은 시멘트로 1.2X1.4m 크기의 시멘트 담장을 지어 신위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제를 모셨으나 무교를 미신이라 단정지은 새마을운동으로 더 이상 고목에서의 풍습은 사라졌단다. 아직 해상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관사도는 1947년 3월 주민 7명이 풍랑을 만나 배가 전복되어 실종되는 대참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동네 주민의 장례식을 참석하고 목포에서 돌아오던 마을 주민 9명이 타고 있던 1t 미만의 채취선이 큰 풍랑을 만나 전복되었는데, 2명만이 생환하고 나머지 7명은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불상사로 인해 마을 전체가 충격에 빠져 울음바다가 되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거의 섬에 풍선과 노젓는 배가 다녔고 객선이라는 주민들의 발은 큰 섬에만 다닌 아주 원시시대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해난사고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섬에 살기 때문에 가난과 바다의 위험을 운명처럼 안고 살았던 그들에게 문명의 혜택이 주어진 관계로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는 않지만 그들이 살았던 그 시절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 관사도 개요
관사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1.626㎢, 해안선 길이 5.5㎞, 인구는 56여 가구 88여 명이다.

지명유래
관사마을에 모래가 많다 하여 관사도라 한다. 조선시대에 부근 대마도,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들을 관리하던 관청이 이 섬에 있었기 때문에 관청도라 부르기도 하였다. 178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의 기록에 의하면 官廳島로 표기하고 있다.

☛ 관사도 가는 길
   목포항 8시 반 출발 6시간 소요,  진도 팽목항 9시반 출발 1시간 소요 

▣ 관광명소
◈ 관사도해수욕장
  백사장 길이는 200m, 모래가 가늘고 곱다. 아직 사람이 발길이 적어 깨끗하다.


#관사도 #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으로 2019년까지 10년간 활동, 2021년 10월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섬을 촬영중이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재정 후원으로 전국의 유인 도서 총 447개를 세 번 순회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집필했음,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 내용이 들어있음, 지금은 '북한의 섬' 책 2권을 집필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책 '북한의 섬'을 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