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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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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이다. 이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내 스스로 대통령이 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고, 시장은 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습성적으로 맞지 않다. 나는 철저하게 당인(黨人)으로서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다. 집권하면 당인으로서 계속 국회의원 하는 거고 못하면 깨끗하게 그날로! (정치는 그만 둔다)."

김무성(61) 새누리당 의원이 8년 전 한 말이다. <오마이뉴스>는 2006년 1월 "정치인 김무성의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로부터 두 번의 총·대선이 있었다.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김 의원은 현재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스스로 "대통령 될 자격은 없다"고 했던 그가 이처럼 당내 권력구도의 핵으로 자리 잡은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07년 대선 때까지는 '친박(친박근혜) 좌장'으로 불렸지만 2010년 세종시 수정안 사태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과 완전히 결별했다.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에서 낙천되기도 했다. 김 의원 측은 격앙됐다.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 "(탈박에 대해) 쇄신을 내걸고 보복하고 있는 것"이란 얘기가 쏟아졌다. 탈당 기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백의종군을 선택했다.(관련기사 : 김무성 "탈당 안 해, 정권 재창출 백의종군")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선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중간 투입돼 휘청거리던 캠프를 다잡았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 그에게 중국특사단장을 맡겼다.

청와대 '들었다 놨다' 하는 경쟁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그를 '복박(復朴 : 돌아온 친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더 이상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규정할 수 없는 인사가 됐다. 오히려 현재 그의 정확한 위치는 청와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경쟁자에 가깝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 8일 부산·경남 지역방송 KNN에 출연, "박 대통령의 회견을 두고 소통 문제 지적이 있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대화를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상대방이) 틀린 얘기를 하더라도 들어주는 모습이 우리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 다음 날인 9일에는 박 대통령에 힘을 실어줬다. 당내 비박(非朴) 중진인 이재오 의원의 개헌 주장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며 "'지금은 개헌이 아니라 경제회복에 주력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했다.

지난 연말 열린 새누리당 대선 1주년 자축 자선바자회에서 보여준 행동은 박 대통령을 향한 '구애'와 같았다. 박 대통령이 바자회에 내놓은 질그릇을 이병석 국회부의장, 남경필·홍지만 의원 등 총 8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400만 원에 낙찰 받은 것. 그는 그 이유로 "대통령의 온정을 담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현재 여의도는 이같은 김 의원의 행보를 '소신' 혹은 '차기 당권'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기춘 민주당 사무총장과 함께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를 중재하면서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무엇이든 청와대는 달갑지 않다. 현 대통령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내부 실력자의 등장은 현 정권의 균열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이미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여의도 대통령'으로 자리하며 직접 증명한 것이다.

김무성 "난 결재 안 받는다"

새누리당 김무성, 김태흠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이윤석 의원은 지난 2013년 12월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소위를 구성하는 즉시 철도파업을 중단하기로 철도노조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 여야 "철도노조 파업 철회, 국회 소위 구성" 새누리당 김무성, 김태흠 의원과 민주당 박기춘, 이윤석 의원은 지난 2013년 12월 3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소위를 구성하는 즉시 철도파업을 중단하기로 철도노조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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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 출발점이 달랐기에 가능한 결과일 수 있다. 김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출신이다. 그는 1985년 2월 김 전 대통령이 운영하던 '민족문제연구소'를 직접 찾아가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멤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을 거쳐 1994년 12월 내무부 차관까지 지냈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민자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에 입성했다. 3당 합당이 아니었다면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는 선친 때의 '악연'도 있다. 그의 아버지인 김용주씨는 전방방직 설립자로 4·19 혁명 직후 2공화국(윤보선 대통령·장면 총리) 여당인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바 있다. 그러나 선친의 정치역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로 짧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김 의원은 "어떻게 보면 박정희 정권에 당한 김무성 집안이 그 딸인 박근혜 전 대표 최측근이 된 것"이라며 "그러나 과거 인연은 과거 인연이다"(2010년 5월 <매일경제> 인터뷰)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달랐던 그는 '입 안의 혀'처럼 박 대통령을 대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설사 불편해하더라도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직언하는 스타일이었다.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한 친박 의원은 총선 직후 "내가 본 박근혜 대표는 맡긴 일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다른 문제까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무성 의원 등은) 자기 임무를 넘어서 다른 일까지 하고 싶어 하는 유형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대선 때도 회복되지 않았다. 한 캠프 인사는 "원래 서병수 전 사무총장이 본부장을 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었는데 선대위 의장들이 김무성 의원을 시키라고 했다, 위기 상황이라 된 것"이라며 "(선거 당시에도)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 관계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권영세 주중대사가 (대통령과) 소통하는 구조였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조해진 의원, 안형환·정옥임 전 의원 등 친이계 인사들의 캠프 대변인 임명 역시 "김 의원이 허락 안 받고 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 의원도 대선 당시 캠프 출입기자들과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내가 (캠프) 오기 전에는 재량권이 없어서 뭐가 안 됐던 것"이라며 "난 (박 대통령) 결재 안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히 원상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도 대선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일했던 김 의원의 공을 인정했다, 그래서 중국특사로 보낸 것 아니냐"면서도 "그러나 그 이후에는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김 의원이 재보선으로 복귀하면서 (낙천했던) 지난 총선 공천 문제를 다시 언급하며 서운함을 또 표출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차기 당권 향해 광폭 행보 중... '김무성 사람' 모으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 1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2013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1층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김 의원은 "1년전 오늘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헌신과 열정에 눈물이 날 뿐입니다"라며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가슴 속에 평생 간직하십시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동지 여러분, 박근혜 정부가 잘 되어야 국민이 행복하고 대한민국 미래가 있습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다시한번 힘을 모으고 함께 뜁시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고 남겼다.
▲ 김무성, 대선 1주년 기념 대자보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 1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2013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1층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김 의원은 "1년전 오늘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헌신과 열정에 눈물이 날 뿐입니다"라며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가슴 속에 평생 간직하십시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는 "동지 여러분, 박근혜 정부가 잘 되어야 국민이 행복하고 대한민국 미래가 있습니다"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다시한번 힘을 모으고 함께 뜁시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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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치인 김무성'이 어느 누구의 참모, 어느 계파의 좌장을 넘어서 온전한 자신만의 정치궤도로 진입했다는 게 중론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4.24 재보선으로 복귀한 후 다양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을 출범시키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가장 먼저 출범시킨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은 주로 보수 우파 성향의 학자들을 국회로 초청했다. 김 의원은 이 자리서 '우편향·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며 보수우파 진영의 대표 인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특히, 이 모임에 여당 현역 의원 3분의 2 가량이 참석하면서 당권 및 대권행보를 위한 '세 불리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근·현대 역사교실'을 마무리하면서 참여 의원들에게 개근상과 정근상을 주기도 했다. 취지가 어땠든 '김무성 사람'이 누구라고 표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 환경 변화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국회 공식 연구단체 '퓨처라이프 포럼'은 이와 반대로 김 의원의 '포용력'을 대변하는 식이다. 여야 의원 43명이 참석하는 이 포럼에서 김 의원은 민주당 원혜영·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김 의원이 평소 친분이 있던 이들을 직접 찾아가 삼고초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김 의원은 다음 달 중 '통일'을 주제로 한 연구모임도 발족할 계획이다. '이념(근·현대 역사교실)'과 '복지(퓨처라이프 포럼)'에 이어 '통일'까지 주요 이슈·담론을 섭렵하며 지도자급 인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5월부터 대학 강연, 토크콘서트 등을 진행하며 젊은 층과 교감 넓히기에도 나서고 있다.

"조직장악력 뛰어나지만, 치밀함 부족하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김 의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일단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 의원의 뛰어난 조직장악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한 당직자는 대선 후 "김 의원이 (캠프) 오니 나부터도 안정감이 생겼다, 야전침대에서 자겠다고 하고 24시간 비상체제를 말하니 전통적 여권 지지층에도 안정감을 준 것"이라며 "그 때만 해도 후보는 과거사의 늪에 빠져 있고 당 지도부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김 의원이 와서 바로 잡았다"고 회고했다.

반면, 김 의원의 잦은 실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전 유출 의혹 때처럼 '말실수'가 잦다는 것이다. 그는 대선 당시에도 '중간층 투표 포기' 전략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앞서도 김 의원은 2002년 장상 총리후보 청문회 당시 "여자가 어떻게 군을 통솔하느냐"고 말해 당시 총재비서실장직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 당시 만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막말'을 한 사실까지 뒤늦게 밝혀졌다. (관련 기사 : 김무성 "기사 엉터리로 쓰면 나한테 두드려 맞는다" )

세련된 처세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김 의원은 당대표 감으로 충분하지만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다, 성숙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라며 현재 당권을 놓고 김 의원과 경쟁 중인 서청원 전 의원과의 일화를 밝혔다.

"서청원 후보의 화성갑 보궐선거 사무실 개소식을 할 때였다. 김무성 의원은 그런 날에는 갔어야 했다. 안 그래도 청와대에서 서청원 후보를 '김무성 견제용'으로 꽂았다는 얘기가 있는 판인데. 그런데 김 의원은 서 후보를 안 찾았다. 결국 당내에서 '김 의원은 코빼기도 안 비치냐'는 얘기가 나와서야 갔다. 김 의원이 사람은 참 좋은데 치밀함이나 성숙함이 부족하다."


태그:#김무성, #박근혜, #당권, #서청원, #대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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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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