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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여전히 거친 사회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곤 했다. '일하면서 싸우자'는 식의 살벌한 구호가 판치던 시절이었다. 요즘이라고 다르지 않다. 급속 성장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보니,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고도성장을 위해 희생했고, 또 그 혜택을 누리는 세대일수록 더하다. 이들은 현재 젊은 세대들의 유약함을 비난하고, 아이 낳지 않는 상황에 혀를 찬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그런 모습은 상당 부분 기성세대들 때문이다. 고도성장 세대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일자리, 사회적 지위, 복지와 세금을 둘러싼 전쟁이다. 바로 세대전쟁이다.

50대 이상에게 집은 최고 자산이자 노후 복지

우리 부동산 시장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50년간 우리 부동산 시장을 지배해 왔던 '만성적 주택부족, 고도성장, 가격상승'이라는 순환구조의 틀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저출산에 따른 수요 감소, 저성장, 가격안정'이라는 새로운 틀이 차지했다. 덩달아 젊은 사람들은 굳이 내 집을 장만하지 않으려는 경향까지 생겼다. 힘들게 빚내기 보다는 다른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불안정한 직장 때문에 집 장만에 우선순위를 두기 어려운 사정도 한몫하고 있다.

지금 50대 이상은 내 집 마련을 지상의 과제로 삼았다. 변두리 전셋집에서 시작해서, 소형분양, 중대형으로 옮기기까지, 말하자면 주택 사다리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 것이다. 때로 한꺼번에 두 칸을 올라선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도로 한 칸 내려서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올라가는 사다리였다. 인구는 늘어났고, 한국 경제도 성장하는 만큼 이 사다리는 절대로 넘어질 리 없어 보였다.

주택 사다리는 또한 복지 사다리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이렇게 장만한 집이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힘들지 않았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복지를 챙겨주지 않더라도 내 집을 통해서, 또 가족이 힘을 합해 나의 노후를 준비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전문 용어로 '자산기반 복지시스템'이라고 한다. 비록 국가 복지가 부족하더라도 개인과 가족이 주택을 통해 스스로 복지를 준비하는 방식이다. 일본,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중노년층'부동산 기반 복지' 위기 봉착... '집값 올려줄 정치인' 선호

주택 사다리에 바탕을 둔 자산기반 복지시스템은 근본적 위기에 봉착했다. 무엇보다 자산 자체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 현상에다 청년층의 고용불안정 때문에 미래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올라가는 방향만 있는 줄 알았던 주택 사다리가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내 노후의 전 재산이자 복지수단이 불안하니까, 어떻게든 집값을 올려줄 수 있는 정치인을 기다리게 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뉴타운 총선', 2012년 '부채탕감 대선'은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50대의 이상의 경이적인 표 결집에는 이런 이해관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반면 청년층들은 집값이 더 떨어지지 않으면 부동산 시장에 참여할 마음이 없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집값이 유지되거나 오르기를 원한다면, 그 자녀인 이른바 에코 세대들은 집값 내리기를 촉구하면서 일종의 소비 파업을 일으키고 있다. 베이비 붐 세대는 월세를 올려 노후소득을 벌충하려하지만, 에코 세대들은 월세 부담 때문에 저축하기조차 버거운 현실이다.

집값상승으로 청년층은 주택구입 포기... 국가의 역할 더욱 중요해졌다

청년층들은 집 사는 부담을 지기보다 부모 집을 물려받기를 기다릴 뿐이다. 반면 부모 세대는 집 말고는 재산이 없어서, 노후소득을 위해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될 처지다. 부모는 집값과 세가 올라야 노후생활이 가능하고, 그 자녀는 그럴수록 생활이 쪼들리고 집사기가 어려워지는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세대전쟁이야말로 지금 우리 부동산 시장과 정책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코드이다. 이것을 세대전쟁이 아니라 세대연합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없는가? 베이비 붐 세대와 에코 세대가 집과 일자리를 놓고 다투지 않고 공존할 방법을 없을까? 한국 경제의 미래는 이 지점에 달려있다. 일본은 둘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노후세대는 노후세대대로 불안감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청년세대는 청년세대대로 주택소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년 일본 장기 부동산 침체의 근본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되어야 청년층의 구매 동기도 살아난다. 대신, 노후세대에게는 집값이 아니라 국가의 복지가 그 공백을 채워줘야 한다. 복지를 대신해 왔던 집값이 안심하고 연착륙하기 위해서라도 연금과 복지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금과 복지를 미래세대의 빚으로 채울 것인가, 아니면 현재 세대의 세금으로 채울 것인가는 또 다른 세대전쟁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필자 칼럼, <세대전쟁, 부동산 문제를 푸는 또 하나의 코드>(이데일리, 2014.1.6)를 고쳐 쓴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으며 <부동산은 끝났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세대전쟁#부동산#하우스푸어#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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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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