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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주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992년 1월 8일 처음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다.

수요시위는 지난 수요일 1108번째의 세월을 맞았다. 이 기나긴 '한'의 시발점은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하셨던 최초의 공개 증언에서 나왔다. "산 증인이 있는데 내가 왜 말을 못 해. 그래서 결국은 나가게 돼서 그래서 처음 시작 된 거야." 사회적으로도 쉬쉬하던 분위기와 피해자 할머니들조차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당시로선 굉장한 용기였으며 사회적 센세이션이었다. 그 후 일본총리 미야자와 기이치가 내한을 했고 그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22년간의 길고긴 여정인 <수요시위>가 시작되었다.

<수요시위>는 22년 동안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켰다. 단,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에는 지진 희생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시위를 대신했다.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1.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2.'위안부' 진상 규명, 3.일본 국회의 사죄, 4.법적 배상, 5.역사교과서 기록, 6.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7.책임자 처벌 이상 일곱 가지다.

이러한 요구를 받는 일본은 식민지 시대의 모든 배상은 3공 당시 김종필이 주도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할 때 모두 끝냈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반박한다. 왜 지배층끼리의 이기적인 야합 속에 서러움은 항상 민중의 몫일까? 피해 할머니들이나 일본정부나 스물두 돌을 맞았던 수요 시위가 더 이상 열리지 않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같다. 그러나 그 사연의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 더 큰 괴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 떳떳한가? 하시모토의 "너희도 베트남전쟁에서 똑같은 짓했으니 같이 반성해."하는 말에 대한 반박을 "너희가 행한 폭력에 피해를 당한 주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온전히 상대의 양심과 선의에 기대하는 식의 반박 이외에 다른 논리적인 반박을 할 수 있는가? 우리 군이 사실상 명분이 없었던 그 전쟁에서 행했던 잔인성을 어느 교과서에서 다뤘는가? 나는 베트남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졌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또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자리 알선 등으로 속거나 납치를 당해서 '위안부'에 차출 당했을 때는 언제나 중간에 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지옥 같은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거나 어찌어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돌아온 그들을 맞는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냉대와 화냥이라는 낙인뿐이었다.

모든 역사가 그렇겠지만 '위안부' 문제는 더더욱 과거, 단지 그 시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할머니들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 중 '교과서에 기록'과 '사료관 건립'이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우리의, 그리고 너희의 피눈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럽 의회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낸 길원옥 할머니의 연설 중 일부를 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저는 해방되고서도 아주 긴 세월을 제 과거가 부끄러워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시위에서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제게는 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 아이들만큼은 내가 겪은 것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소망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올바르게 밝혀야 합니다. 힘들지만, 제 경험을 통해서 일본이 어떤 일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첨부파일
수요시위5.jpg


#수요시위#위안부#김학순#길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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