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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25일 오후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가 고공농성장을 찾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있는 모습.
2012년 10월 25일 오후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가 고공농성장을 찾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새정치'가 화두다. '새정치'의 진원지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 그는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를 통해 지난 5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하면서 소위 '새정치'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새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새정치는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이에 대한 답인 듯, 윤 전 장관은 안 의원측에 합류하면서 "새 정치는 아시다시피, 여기 모인 우리 모두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열망"이라며 "시대의 요청이고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소명"이라고 화답했다. 특히 그는 "이는 지난 2년 간 '안철수 현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들과 함께 지난 2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펼쳐라! 새정치, 응답하라! 국민추진위' 거리 설명회를 열면서 시민들에게 '새정치'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같은 행보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개입이 만천하에 드러나 국민 감정이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새정치'는 지방선거에서 물타기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노동자의 도시' 울산의 취재 현장을 다니면서 느껴온 것이 있다. 새정치란 것이 어느날 불쑥 신기루처럼 찾아오는 희망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 새정치를 외치는 동안에도 어제의 새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감옥으로, 혹은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게 이를 입증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지도부 구속과 거액 손배 판결로 고통

한동안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던 현대차 비정규직. 같은 생산라인에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과 처우에서 불이익을 받아온 비정규직들의 지난 10년간 힘겨운 싸움은 이제 거론하기조차 지쳤다.

문제는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철탑농성과 공장점거 농성을 이끌던 노조 지도부가 잇따라 구속되고 많은 조합원들이 거액의 손배소 판결을 받아 파탄이 날 지경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관련기사: 현대차 비정규직에 잇딴 손배 판결... "생계도 힘든데").

하지만 불과 1년 전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희망'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2012년 10월 17일, 두 조합원이 현대차 명촌정문 앞 철탑 위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한 뒤 2012 대선 후보들이 연이어 농성현장을 찾으면서부터다.

노동계를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대선 후보로 나선 당시 안철수 대선후보도 철탑농성장을 찾아 비정규직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2010년, 2012년 대법원의 잇따른 '정규직 인정' 판결에도 회사 측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신규채용을 하면서 곤경에 처했던 비정규직들이 안철수 후보의 방문과 서면약속에 한가닥 희망을 가졌던 것. 그 이유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새정치'에 대한 기대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울산, 아산, 전주공장)가 25일 오후 1시 30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 농성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 질의서 르 ㄹ전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울산, 아산, 전주공장)가 25일 오후 1시 30분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앞 송전탑 농성장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 질의서 르 ㄹ전달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2012년 10월 25일,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는 울산의 철탑농성장을 방문했다. 안 후보는 철탑에 올라간 최병승 조합원과 통화한 후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법 규정에 허점이 없는지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안 후보는 "돌아가서 열심히 언론과 국회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차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인 만큼 우리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조그만 더 참아 달라,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가 수 년간 지원을 하면서 싸움을 벌여왔지만, 오히려 불이익만 가해지는 와중에 안철수식 새정치는 이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겼던 것이다. 취재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한 간부는 "10년 이상 도와준 진보정당보다 안철수 후보에게 더 기대를 걸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더 고무된 것은 대선후보들에게 보낸 서면질의에서 나온 답변 때문이었다. 2012년 11월 5일 안 후보는 이메일로 비정규직노조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재벌총수 등 사회적·경제적 특권층 누구라도 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사실 관계를 확인해 엄정한 법 적용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안철수 의원은 대선을 중도사퇴하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이 끝난 뒤 4개월 뒤 서울 노원병 재보선에 출마해 국회로 입성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지금의 안철수를 어떻게 바라볼까

정치인이 된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8월 30일 남산 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전국건설기업노조연합 간부수련회 초청 대담에 참석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법정에서 이미 심판했는데도 말을 안 들으면 매일 과태료라도 부과하면서 압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3권분립 나라가 맞는지 회의가 든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 직후 안 의원은 국회 입성 넉 달만에 차명거래 방지와 자금세탁 근절을 위한 일명 '자금세탁 방지 3법'을 처음으로 대표 발의한 데 이어 중증질환자·희귀난치성질환자의 진료비부담 경감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현대차 비정규직을 위한 법안이나 행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가 대선을 앞두고 현대차 철탑농성장을 찾아 비정규직들에게 약속한 "돌아가서 열심히 언론과 국회를 통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철수식 새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지도부는 최근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고, 회사 측이 제기한 200여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 중 9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소송은 계속 진행 중이다.

당시 '새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현대차 비정규직들은 다시 바람몰이가 시작되는 '새정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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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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