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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옥상에서 농사도 짓고 얼마나 좋아 그래. 근데 저거는 뭐요?"
"이... 이거요. 목초액입니다. 나무를 태울 때 연기에서 나오는 수증기."

몇 년 전, 이사한 집의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봄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옆집의 3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창문을 통해서 옥상텃밭을 수시로 들여다봤다. 어느날 한가득 올려논 페트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순간 당황하여 엉겁결에 목초액이라고 거짓말을 하고는 한 병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다행히 그런일은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그후로 페트병은 보이지 않도록 숨겨놓았다.

가장 쉽게 만들수 있는 오줌액비 페트병에 채우고 뚜껑을 닫은후 7일 이상되면 발효되어 사용할 수 있다.
 가장 쉽게 만들수 있는 오줌액비 페트병에 채우고 뚜껑을 닫은후 7일 이상되면 발효되어 사용할 수 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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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된 오줌은 좋은 거름이다"

페트병에 들어 있던 것은 농사에도 쓰이는 목초액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받아낸 나의 오줌이었다. 할머니께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것은 혹시라도 오줌냄새를 빌미로 옥상농사에 어려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발효된 오줌냄새는 그리 나쁘지 않다. 더욱이 물을 10배정도로 희석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냄새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오줌에는 식물성장의 필수영양소인 질소성분이 많아서 옛날부터 농촌에서는 따로 모아두고 거름으로 사용했었다. 입식화장실의 도시에서도 페트병에 오줌을 채우고 뚜껑을 닫은후 일주일 이상 시간이 지나면 냄새의 원인이 되는 암모니아 등은 발효되고 좋은 거름이 된다.

가정에서 자급할 수 있는 농사거름으로는 오줌말고도 쌀뜨물이 있다. 쌀을 씻은 후 물을 따로 받아두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하얀 쌀가루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위쪽의 맑은물은 따로 받아내서 세숫물로 사용하면 피부영양에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미강이라고 하는 쌀가루는 피부영양제로 만들어져 판매가 된다.

바닥에 가라앉은 쌀가루만 약간의 물과 함께 페트병에 모아서 뚜껑은 조금 느슨하게 닫은후 한달 이상 발효시키면 역시 식물성장의 필수 영양소인 인산거름이 된다. 발효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므로 뚜껑은 완전밀폐보다는 가스가 빠질 정도로 잠그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수시로 가스를 빼줘야 뚜껑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올해 가을배추는 오줌액비만으로 키워냈다.
 올해 가을배추는 오줌액비만으로 키워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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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는 액비거름만으로 충분하다"

"아저씨 배추가 아주 실하네 저기 빨간통에 있는 것이 뭔데 배추에 주는 거요?"
"한약재 달이고 남은 찌꺼기를 물에다 발효시켜서 거름을 만들었어요."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 동네 한의원에서 무료로 얻어온 한약재 찌꺼기를 물통 속에 넣고 석 달 이상 발효시켰다. 가을 배추에 거름으로 주는것을 본 옆집 할머니는 "사람한테 좋은 것이니 배추에도 좋겠다"면서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고 옥상텃밭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고 한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할머니는 나의 옥상텃밭을 보며 분명 '힐링'이 되었을 것이다.

한약재 찌꺼기뿐만 아니라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참깨나 들깨의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도 물에 넣고 발효를 하면 좋은 거름이 된다. 다만, 재료의 영양분이 물에 충분히 녹여나올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물에 재료를 넣고 만드는 거름을 액비(액체비료 또는 물거름)라고 한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약재,작물의 줄기와 잎,산야초(풀),깻묵으로 만든 액비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약재,작물의 줄기와 잎,산야초(풀),깻묵으로 만든 액비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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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비재료는 동물성분만 빼고는 썩는 유기물이면 모두 가능하다. 풀을 비롯해서 먹기 어려운 채소나 과일을 비롯해서 생선류도 매우 좋은 액비거름이 된다. 만드는 방법도 물속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고 재료나 방법에 따라서 발효물질을 추가하기도 한다. 재료가 흩어지면 사용할 때 불편하므로 쌀포대나 양파자루에 재료를 담고 물을 3~5배 정도로 하여 물통속에 넣은 후 뚜껑을 닫거나 비닐로 씌워서 3개월 이상 발효시키면 된다.

숲의 낙엽이 발효되어 유익한 미생물이 많은 부엽토, EM(유용한 미생물)과 같은 미생물을 넣어주면 발효를 촉진하고 영양가를 높인다. 공기를 통해서 퇴비를 만드는 것과 다르게 액비는 물속에서 혐기발효(산소가 없는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은 불쾌한 냄새가 발생하는데 당밀(설탕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을 충분히 넣어주면 냄새는 줄어들고 영양가는 높아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대한 걱정은 뚜껑이나 비닐로 밀봉을 하기 때문에 괜찮으며 실외는 물론 베란다에서도 만들 수 있다.

음식으로 쓰기 어려운 채소액비는 작물에게 아주좋다. 발효과정을 거쳐 완전숙성되면 맑은 액비가 된다.
 음식으로 쓰기 어려운 채소액비는 작물에게 아주좋다. 발효과정을 거쳐 완전숙성되면 맑은 액비가 된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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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작은 텃밭농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겨울동안에 열심히 오줌과 쌀뜬물만 모아도 거름으로 충분하다. 조금 큰 규모가 있는 텃밭을 한다면 한의원에 가면 한약재 찌꺼기를 무료로 얻을수 있으며, 기름을 짜는 방앗간에 가면 깻묵은 맷돌 만한 것을 1000원이면 구할수 있다.

액비를 만들고 난 후 작물에 사용할 때는 물과 50~100배로 희석해서 사용하지만 원액상태에 따라 물과 희석 비율은 줄이거나 높여서 사용하면 된다. 가정이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액비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면 성취감과 만족도가 매우 높아진다.


태그:#액비, #텃밭농사, #도시농업, #오줌,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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