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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끝나고, 김장이며 메주 쑤기도 끝났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 말은 본격적인 마을회관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말과 같다. 딸기 하우스 하는 두 집 빼고, 대부분의 마을 분들이 아침부터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회관에 모여서 점심을 같이 먹고, 화투도 치고, 놀다가 저녁까지 같이 먹고... 때로 흥이 나면 더 놀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회관으로 출근한다.

다른 철에는 아침 일찍부터 논밭에 나가느라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마을에서 이렇게 매일 얼굴을 맞대고 놀며 큰 상을 두 개, 세 개씩 차려서 점심 저녁을 같이 먹으니 날마다 잔치집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날마다 잔치
 날마다 잔치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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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지금쯤이면 베짜느라고 잠도 못잘 때 아니여?"
"아먼. 베짜서 물들여서... 아이고 그 일을 어찌께 다 했는지 몰라."
"베만 짜간디, 유과 만들고 콩강정 만들고..."  

예전의 음력 섣달 풍경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오매, 이게 누구여, 어서 들어와. 밥 먹었어? 밥 먹어."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화들짝 반기는 이는 모처럼 고향집을 찾은 누군가의  자제분이다. 그들은 회관을 들여다보고 귤 박스며 소주 박스를 내놓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막간을 이용한 갖가지 장사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병풍, 상, 약, 이불, 굴비, 닭... 그 중 압권은 '꼴딱이 장사'다.

'꼴딱~~ 꼴딱~~ 침이 넘어가는 두부가 왔어요~ 따끈~따근~한 두부가 왔어요~.'

아예 정기적으로 마을에 들리는 이동식 수퍼마켓으로  두부, 콩나물, 기름, 설탕, 달걀, 오징어, 조기 등 없는 것이 없다.

꼴딱이 장사
 꼴딱이 장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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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나무를 해 댈라고 그래. 기름보일러로 바꿔부러." 

멋모르고 놓은 화목 보일러 때문에 남편과 내가 산에 나무하러 간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충고한다. 요즈음은 산에 나무는 널려있는데, 그것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외지에서 들어온 세 집을 빼고 동네에서 나무로 불 때서 방을 데우는 집은 거의 없다.

모두 기름보일러로 난방한다. 하지만 비싼 기름을 함부로 땔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웬만하면 전기장판에 의지해서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뜨듯한 회관으로 모여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날이 추울수록 회관 출석율도 높아진다. 회관이야말로 한겨울의 화톳불 같은 존재다.

마을 분들이 회관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이처럼 '아무리 추워도 회관에만 가면 따뜻하다'라는 데에 있는데 이 '따뜻하다'에는 현실적인, 온도계상의 따뜻함 말고도 정서적인 따뜻함도 함께 들어있다. 춥고 메마른 겨울, 회관 나들이라도 하지 않으면 갈 데도, 만날 이도 볼 이도, 같이 이야기 할 이도, 같이 놀이도 없는 것이 시골 마을이다.

아무리 방바닥이 따뜻해도 사람이 없으면 썰렁하게 보이는 회관에 연세높으신 할매들을 시작으로 점점 모여들다 보면 모락모락 훈기가 감돈다. 이렇게 모여서 서로의 온기로 겨울을 나는 것이다.  

겨울 사랑방 마을회관
 겨울 사랑방 마을회관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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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촌 , #섬진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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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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