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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 그런데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교회나 성당 대신 난데없는 사찰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경찰에 쫓겨 서울 조계사로 피신한 철도노조 집행부들 때문이었다. 경찰은 '특급 검거 작전'을 내세우며 한바탕 전투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경찰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기만 하면 '불법' 딱지를 붙인다. 거의 무조건적이다. 그들에게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멋진 연말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어떻게 1계급 특진이라는 '현상금'을 내걸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야만스러운 일이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코레일의 케이티엑스(KTX) 자회사 설립 승인으로 촉발되었다. 경쟁과 효율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뿐이지 사영화가 아니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철도노조를 포함하여 대다수 국민은 철도 사영화의 시작이라고 반대한다. 양쪽의 논리는 그 어떤 접합점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레일은 정부와 함께 노조에 폭력으로 응답했다. 징계와 검거의 칼날이 노동자들의 목을 내리치고 있다.

공공인프라 '철도',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효율적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철도노조 총파업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무궁화호 한 대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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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공공 인프라다. 상·하수도와 도로, 전기·통신도 마찬가지다. 이들 공공 인프라는 국가가 소유하면서 직접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왜 그런가. 경쟁과 효율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을 점검해 봄으로써 이 문제를 살펴보자. 경쟁은 과연 효율화를 위한 절대불변의 전제조건인가.

통신을 예로 들어보자. 통신은 원래 대표적인 공공 인프라다.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나 통신회선의 효율적인 관리 등을 고려할 때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일 통신망을 구축해 운영하는 국가 또한 '체면'을 살리기에 좋다.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값싼 비용으로 국민들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옛날 한국통신 시절이 그랬다. 국민들은 '통신'이나 '전화' 하면 자동적으로 '한국통신'을 떠올렸다. 모든 통신·전화 업무가 한국통신 창구로만 통하니 일을 처리할 때 헷갈릴 염려도 없었다. 관리·감독 주체인 정부의 무능과 태만, 한국통신 자체의 경영 부실 등을 제외하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거대 통신 기업이 세 개나 있다. 에스케이(SK)와 케이티(KT), 엘지텔레콤(LGT)으로 불리는 이 회사들은 서로 죽자 사자 경쟁하고 있다. 서로 각자의 기지국을 만들어 안테나를 달아대고, 인터넷 회선망을 깔면서 자기네 통신서비스나 통화음질, 데이터 전송속도가 더 낫다고 외쳐댄다. 국가가 일괄적으로 통신을 관리하는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효율적인 자원 낭비가 '투자' 명목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경쟁은 경쟁이되 저쪽 손님을 이쪽으로 누가 더 많이 빼오는가 하는 소모적인 경쟁이다. 동일 설비로 구성되는 기지국을 누가 더 많이 세우는가 하는 자원 낭비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과도한 경쟁으로 생기는 손실분은 통신 이용객들인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채운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경쟁은 결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진정한 경쟁이 아니다.

케이티엑스 자회사를 설립하려는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경쟁 체제 도입을 통해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요금 인하와 서비스 개선 등의 결과를 얻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와 같은 논리는 철도 사영화의 '선배 국가'인 영국 사례를 보면 명백한 허구임이 금방 드러난다.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 박흥수가 쓴 <철도의 눈물>(후마니타스, 2013)을 따라 살펴보자.

민간회사의 철도산업 투자 외면, 대형열차 사고 발생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 경찰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총과 철도노조에 대한 폭력 탄압을 규탄하며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철도는 우리 모두의 것" 1995년 민주노총 설립 이후 경찰이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기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23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노총과 철도노조에 대한 폭력 탄압을 규탄하며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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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국영으로 운영되던 영국 철도산업은 사영화 이후 정부 재정 지원이 중단됨으로써 철도에 대한 정부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철도산업에 끼어든 민간회사들은 철도산업에 대한 투자를 외면했다. 그 결과 시설 노후화에 따른 대형열차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영국 정부는 철도에 돈을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애초 재정 부담의 줄어들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내려갈 것이라던 철도 요금은 "영국 시민들의 인내심을 바닥내"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철도의 눈물>에 따르면, 영국의 철도 요금은 직장인 평균 연봉의 20퍼센트까지 육박한다. 100만 원을 벌면 20만 원을 철도 요금으로 쓰는 셈이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영국 수도인 런던 지역에는 통근 열차 운임이 연간 900만 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 주장의 허구성은 기존에 민간자본이 투입된 공공인프라 산업의 현재를 통해서도 방증된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북부 구간(퇴계원~일산) 요금은 남부 구간(일산~퇴계원)의 2.6배에 이른다. 이 요금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남부 구간은 대한민국 정부 돈으로 만든 반면 북부 구간은 민간이 투자한 돈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다국적 투자회사 맥쿼리가 끼어 있는 서울 우면산터널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우면산터널의 운영을 맡고 있는 우면산인프라웨이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인 지난 2005년 서울시와 연평균 270억 원의 수입 보장에, 이에 못 미치면 서울시가 부족분을 보전해주는 '환상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우면산인프라웨이는 지난해에 통행요금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했다. 그런데 요금 인상으로 통행량이 줄어들어 수입 보장 금액에 못 미치자 서울시가 시민 세금으로 55억 원을 추기 지원해 주었다. 서울시는 이런 웃기지도 않은 짓을 2033년까지 해야 한다. 우면산인프라웨이의 사업 운영권이 30년(2004년 1월~2033년 12월)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철도 사영화의 출발이 '분리'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철도산업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철도의 눈물>에 나오는, 국제운수노련(International Trade Federation: ITF) 철도 분과 의장 아슬락센의 말을 빌리면, 효율화를 명분으로 간선과 지방선을 분리하고, 여객과 화물을 분리하는 것은 철도 운영을 민간에 매각하기 위한 사전 조치일 뿐이다.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서발 케이티엑스 분리와 화물 부분의 분리, 지역 적자선의 민간 개방 추진 등이 경쟁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영화 절차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철도는 분리보다는 통합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달리는 열차가 표준화한 네트워크(레일) 위를 달리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주체(회사)가 복잡하게 나뉘면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상호 협조하기가 어려워진다. 역이나 열차에서 급작스러운 문제가 터졌을 경우 승객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길 수 있다.

기차 문이 고장 나 멈춰 선 상황에서 한 승객이 도와 달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미안합니다만 그것은 우리 회사 일이 아니에요."

<철도의 눈물>에 소개된, 1990년 사영화를 전제로 주식을 발행하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독일에서 실제 일어난 일화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는 철도 선진국이라는 '독일식' 모델을 따라 철도산업을 개혁하려고 하고 있다. 분리와 경쟁, 효율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011년 국토부가 밝힌 제2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철도에 투자될 예산이 49조4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4대강 예산 22조 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4대강사업이 그랬던 것처럼, 이 막대한 돈을 민간 사업자들을 위한 '돈 잔치'에 쏟아붓지 말란 법이 있을까.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침 내일 모레(28일)는 100만 국민 행동의 날이다. 질주하는 '사영화 정부'의 브레이크를 국민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철도 사영화, #케이티엑스 자회사, #경쟁과 효율, #'독일식'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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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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