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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병력을 투입한 가운데, 집입작전 도중 파손된 유리문쪽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있다.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병력을 투입한 가운데, 집입작전 도중 파손된 유리문쪽에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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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민영화 논란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2주를 넘어서자, 정부는 22일 5000여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진입했다.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위한 것이었지만, 지도부는 그곳에 없었다. 결국 정부는 무리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건물에 경찰이 투입되던 그 시각, 서승환 국토교통부(아래 국토부) 장관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서 장관은 "정부는 철도공사가 설립하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 어떤 민간자본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수차례 밝혀 왔다"고 '민영화가 아님'을 다시 천명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지난 15일 "불법 파업 엄정 대처 하겠다"면서 "수서발 KTX법인은 민간회사가 아니"라고 밝혔고, 정홍원 국무총리도 지난 18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수서발 KTX 분리는 MB정부에서 추진한 것이고 현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KTX 민영화에 반대한다'고 했던 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코레일 사장부터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도민영화 안 한다고 하지만 노동계, 야당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이를 믿지 못하겠단 입장이다. 최근 JTBC가 리서치뷰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1.0%가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말로는 철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부는 노동계와 야당에서 요구하고 있는 '철도 민영화 금지 입법화'를 반대하고 있다. 회사의 정관을 통하여 민영화를 금지하고 민간 매각 시 허가 자체를 취소하겠다면서, 또 앞으로도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면서, 정작 이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이때문에 정부와 새누리당은 '앞으로 언제든지 철도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민영화 아니라면서 '민영화 금지 입법' 왜 반대하나

현재 박근혜 정부와 코레일 측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철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국토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서발 KTX 운영 구간을 민간에 맡길 계획이라고 밝혔기에 더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외국이나 우리나라 다른 공공부문에서 시설과 운영의 분리, 자회사 설립 등이 먼저 추진된 후 민영화와 해외매각이 이뤄졌다는 점을 볼 때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 등의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

철도노조와 노동계, 야당이 박근혜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바로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초강경 대응 때문이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이미 "어머니의 마음" 어쩌고 하면서 노조원 8000여명을 직위해제했고, 지난 21일에는 7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급기야 민주노조의 상징인 민주노총에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일각에선 정부가 노동계의 철도 민영화 반대 움직임의 싹을 잘라 이후 진행될 의료와 가스, 수도 등에 대한 민영화 반대 움직임을 사전에 막으려고 하는 전략적 선택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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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논란의 중심에 만영화가 있지만, 곧 해외 매각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우려는 지난 11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때 더욱 커졌다. 국내에서 철도와 같은 규모가 큰 공공산업을 인수 또는 운영하려면 대기업 정도는 돼야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해외 자본들의 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기업과 해외자본 배불리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지점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프랑스는 현재 철도, 특히 고속철 관련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 한 연설에서 프랑스 기업가들이 큰 박수를 친 대목이 어디였느냐다. 바로 철도 개방에 대한 언급이었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은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되면 도시철도 분야 진입 장벽도 개선될 수 있다"는 부분이 '한국의 철도 해외 개방이라는 선물'을 의미하는 것이며 여기에 프랑스 기업들이 큰 기대감을 표했다고 보도했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KTX 분리 경쟁 체제 도입이 결국 민영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해외 매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구한말 우리의 철도, 광산, 산림 등 각종 이권을 놓고 구미열강들이 쟁탈전을 벌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서 조선은 정치·군사 주권보다 먼저 경제주권을 빼앗겼고 이것이 국권상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역사로부터 이런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 수상에 대한 평가에 귀 기울여야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공기업의 민영화나 해외매각은 마치 세계적인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건을 기점으로  이런 신자유주의 민영화 추세는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도 철도 등 공공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1941년 공포된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3장 건국(建國) 제6항은 토지와 광산 등과 더불어 교통, 운수 사업 등 공용적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87조도 중요한 운수, 통신, 수도, 가스 등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일 서울광장에 켜진 철도민영화 반대 촛불
▲ "철도 파업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 19일 서울광장에 켜진 철도민영화 반대 촛불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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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와 광산 등 국가 기간산업이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는 인식은 국가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일제 강점기의 임시정부 헌법이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에도 명확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 2013년에 살고 있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공공성 인식은 그 때보다 훨씬 못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가장 평가가 어긋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일 것이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서 1980년대 영국 경제를 부흥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되지만, 국가의 공공성을 해치고 공권력으로 노조를 탄압한 장본인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는 국영 화물회사에서 시작하여 석유, 통신, 전력, 수도, 철강 등 국가기간 산업을 민영화하고 영국의 자랑이었던 무상의료 시스템(NHS)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 삭감을 통하여 의료 공공성을 대폭 후퇴시켰다. 여기에 저항하는 노조들을 공권력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초기에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부정적인 평가가 늘었다. 그가 사망하였을 때 영국 정부가 그에 대한 국장(國葬)을 추진하자 영국민들은"대처의 장례식도 최저가 입찰을 통하여 민영화하라"며 분노했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대처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은 개인 성명에서 "영국의 가난한 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정부 개입 배제 정책에 의해 부자들 배만 불렸다"고 비판했으며, 영화 감독 켄 로치도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매에 올려 가장 싼 가격의 장례업체에 맡기자, 그게 그녀가 원했던 방식이니까"라고 독설을 쏟아냈다. 실제로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는 인터넷 청원운동에 3만 명이 넘는 이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정권이 철도, 의료, 가스, 수도 등 줄줄이 쏟아지고 있는 민영화 논란 국면에서 돌아봐야 할 장면이다.

최근 한 방송인이 철도민영화 논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팔려거든 몸이나 팔아라'라고 일갈해 논란이 일었다. 물론 몸을 팔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지만, 그 표현만 제외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재산인 철도, 가스, 수도 등 기간산업을 마음대로 팔아선 안 된다. 이것이 주권자 국민의 뜻이다.


태그:#철도민영화, #박근혜,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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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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