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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끝이 시작이다
 1219 끝이 시작이다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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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이긴 것 같아요."
"정말요?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누리꾼들 반응을 보니까 문재인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어요."
"아빠 문재인 대통령 되는거예요?"
"그럼."
"와 문재인 대통령이다!"

2012년 12월 19일 오후 5시 59분 59초까지 우리 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1초 후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본 우리 가족은 한 순간 '멍'한 상태에 빠졌다. 수요일이라 예배를 드리는데 항상 웃는 얼굴인 막둥이는 웃음끼 조차 없었다.

그래도 작은 희망은 가졌다. <오마이뉴스>와 <YTN> 조사 결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졌다. 일주일 동안 입맛이 없었다. 집 밖에서도 우렁차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큰 막둥이도 말이 없었으니, 우리 가족은 '멘붕'에 빠졌다. 

2012.12.19 '멘붕'... 2013.12.10 '안녕 대자보'는 희망

처음에는 문재인이 졌다는 것 때문에 멘붕에 빠졌지만, 지난 1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100%대한민국'을 약속했지만, "여왕님 즉위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얼마나 불통이면 루이 16세 왕비인은 마리 앙투아네뜨를 패러디한 '말이 안통하네뜨'라는 별명을 새로 얻어겠는가. 

절망만 가득한 대한민국이다. 그럼 희망은 없는가. 아니다. '스펙쌓기'에 바빴던 학생들이 '안녕 대자보'로 한반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선동'으로 매도하고, 교과부는 대자보가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고 한다. '먹통' 대통령과 닮아도 정말 닮았다. 하지만 '안녕 대자보'는 나만 생각하다 다른 이도 어렵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이들을 일깨웠다. 그것도 자발성이다.

그런데 여기에만 머물면 안 된다. 희망은 '말'과 '바람'으로만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조직 그리고 지혜과 실력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부족한 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동반되어야 한다. 2012년 12월 19일 우리를 멘붕에 빠지게했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함께 희망을 이루어가자며 <1219 끝이 시작이다>(바다출판사)를 펴냈다.

"패장은 말이 없다."

그렇다 패장은 말이 없어야 한다. 책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문재인 대선병 걸렸냐"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패장은 반성해야 한다. 반성 없는 패장은 미래가 없다. 문재인은 반성했다.
그는 "패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패장에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했다"면서 "패배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패배를 거울 삼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장은 말이 없지만, 반성해야 미래가 있다

"한마디로, 평소 실력 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준비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국정원의 대선 공작과 경찰의 수사 결과 조작 발표 등의 관권 개입이 더해졌을 뿐입니다. 전적으로 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을 총체적으로 놓고 보면, 저는 역시 준비와 전략이 부족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편이 NLL 공세나 종북 프레임 등 흑색 선전까지 미리 준비한 전략에 따라 선거를 이끌어 간 데 비해, 우리는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가는 동네 축구 같은 선거를 했다는 느낌입니다. 후보인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에 놀다가 벼락치기 준비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벼락치기로 준비했던 일들을 5년 내내 하면 됩니다."(297-8쪽)

실력 부족과 "전적으로 제가 부족했다"는 반성은 패장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남에게 패배 원인을 돌린다. 문재인에게 희망을 찾는 이유다. 물론 그 희망이 반드시 2017년 12월 문재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2012년 12월 19일 멘붕에 빠졌던 사람들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놀랍게도 문재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저와 경쟁했던 박근혜 후보와 다른 분 같습니다. 그 때 박근혜 후보는 국민들의 뜻에 자신을 맞추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며 "대통령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안 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국민 통합과 상생도 오히려 더 멀어졌습니다. 편 가르기와 정치 보복이 횡행합니다. 정치에서 품격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지금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서 때 이른 권력의 폭주를 느낍니다. 제 생각이 잘못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전망이 성급한 오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임기가 아직도 4년 넘게 긴 시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의 초심으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9쪽)

겉으로는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바로 문재인 자신과 민주개혁세력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 "정치에서 품격"을 갖추어야 하고, "권력의 폭주"를 우리에게서 지워야 한다.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개혁세력은 정치에 대한 품격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인은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정치혐오감'은 사실 수구세력이 민주세력을 자신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심어주는 계략이요 술수다. 어떻게 수구기득권세력과 민주개혁세력이 같은가? 하지만 과거가 달랐든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에게 나를 위하는 정치인, 정당도 있음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민주당을, 정의당을, 안철수 신당을 지지할 것이다. 그래야 1219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비판에서 우리가 가야 할 지혜를 깨닫는다

문재인은 "유신 시절 벌어진 일이든 지난 대선에서 벌어진 일이든 과거 일이라고 덮고 넘어가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국민 통합의 기준에서 보면 해법은 하나입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제라도 잘못된 행위를 진정성 있게 반성해야 합니다. 분명한 개선책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비결이 달리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은 아주 중요한 정치제도 하나를 제시한다. 그는 "심상정 후보와도 단일화를 이루면서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결선투표제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일"이라며 "이 둘은 정당민주주의와 지역주의 정치 구도 타파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입니다. 반드시 지키고 노력해야 할 책임이 제게 남아 있습니다"고 말한다.

영남이라는 철옹성을 가진 새누리당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제도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사실 호남이라는 철옹성을 가진 민주당도 속마음은 내키지 않다. 하지만 2극체제(새누리당과 민주당)는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를 깨는 방법이 결선투표제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따위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시민들을 설득하면 새누리당도 끝까지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말한다. "도대체 민주당 내의 '그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요. 대선 승리와 정권 교채라는 지상의 목표보다도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은 민주당 내의 '그 무엇.'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무엇이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 강경투쟁을 하라는 세력, 민생을 챙기라는 세력, 친노와 비노 사이 싸우지 말라는 세력 등 민주당을 향한 비판은 매섭다.

변해야 사는 민주개혁세력, 어떻게 변해야 하나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수권정당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을 배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정권을 다시 찾는 일은 김대중때보다 더 쉽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를 다시 찾아야 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문재인이 '국가'에 대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개혁세력이 그 동안 등한히 했던 주제라 낯설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제안이다.

"민주 진영은 담론에서, 그동안 '국가'나 '애국'이라는 가치에 관심을 덜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국가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더 많은 헌신과 희생을 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애국'이라는 가치를, 실상과 다르게 보수 세력의 전유물처럼 내줬습니다"(245쪽)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안보에 대한 신뢰 없이 수권정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안보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 대응해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NLL포기가 전혀 사실이 아님을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은, 앞으로 종북 프레임을 깨는 데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니다. 민주당이 안보 이슈에서도 새누리당에 꿇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나갈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250쪽)

민주개혁세력은 말은 아니지만, 삶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했다. 안보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부때가 훨씬 잘지켰다. 이제 우리 스스로 진정한 애국세력은 바로 민주개혁세력이라고 강조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노무현에 대한 애잔한 마음도 가득하다.

문재인은 대선 내내 '노무현의 비서실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참모'일 뿐, 대통령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을 배반하지 않았다. 책 곳곳에서 노무현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드러난다. 그 중 하나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심정을 밝힌 대목은 독자가 읽어도 마음이 아린다.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저도 시민들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착잡한 마음을 혼자 소주 한잔으로 달랬습니다. 그 심경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소주 한잔합니다. 탈상이어서 한 잔, 벌써 3년이어서 한 잔, 지금도 '친노'라는 말이 풍기는 적의 때문에 한 잔,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두고 낯선 세상 들어가는 두려움에 한 잔."
지금 읽어도 글에서 소주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135족)

이런 문재인이 좋다. 그리고 문재인에게 소주 한 잔 받은 노무현이 그립다. 당당하게 "나는 '친노'요"로 말하는 문재인은 <1219 끝이 시작이다>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저와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저와 민주당이 다시 희망과 믿음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입니다. 끝이 다시 시작입니다."(365쪽)

그와 함께 끝이 아니 다시 시작을 함께 하고 싶다. 아니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럼 2017년 12월 20일 '멘붕'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리라.

덧붙이는 글 | <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지음 ㅣ 바다출판사 펴냄 ㅣ 15000원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

문재인 지음, 바다출판사(2013)


태그:#문재인, #노무현, #1219, #민주개혁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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