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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대자보를 게시할 수 있는가.'

지금 가톨릭대에서는 이 주제가 '뜨거운 화두'다. 고려대학교 주현우 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릴레이 형식으로 대자보가 게시됐다. 그리고 이런 대자보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이런 논란이 가톨릭대학교(이하 가대)에서도 발생했다. 하지만 다른 대학들의 상황과는 좀 다른 지점이 있다. 대자보 수거의 주체는 총학생회이며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학칙' 때문이라는 것.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13일(금), 고려대 주현우 학생의 대자보 내용을 SNS로 접하게 된 가대 배도현 학생(경영·13)은 이에 응답하는 대자보를 쓸 것을 결심한다. '우리 모두 안녕하지 못했네요'라는 제목으로 철도 민영화, 밀양 송전탑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스스로, '안녕하지 못함'에 대해 썼다. 배군 이외에도 1명의 학생이 밤 늦게까지 남아 대자보를 작성했다.

이들은 14일 오전 1시가 넘은 시각에서야 상대적으로 게시물이 덜 붙는, 국제관 OBF카페 옆 게시판에 대자보를 게시하였다. 하지만 14일 오후 7시쯤 배군과 같이 대자보를 게시했던 최희성 학생 등은 자신들이 쓴 대자보가 떼어졌음을 확인한다.

이를 두고 총학생회에서 떼어냈다는 의혹이 일었다. 떼는 장면을 본 한 학우가 이를 핸드폰으로 찍어 제보하기도 했다. 배군은 15일 오전 1시 30분쯤, 페이스북 가대 총학생회 계정 담벼락에 글을 남겼다.  요지는 총학생회에서 대자보를 수거했다는 의혹에 대한 해명요구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학생회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가대 총학은 같은 날, 대자보를 수거한 이유는 '내용검열'이 아니며 일전에 공지한 것과 같이 도장이 없는 자보를 수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입장표명을 했다. 댓글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가톨릭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담벼락
 가톨릭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담벼락
ⓒ 가톨릭대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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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줄이기 위한 방법, 대자보부착승인제도?

이 논란의 중심에는 가대 '대자보부착승인제도'가 있다. 3월과 9월, 각 동아리 및 기관 등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 이를 위한 홍보물이 대자보형식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특정 몇 곳에 빼곡하게 붙는다. 3월과 9월에 포화상태에 이르는 대자보가 '미관상'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학생처(VOS팀)에서 '대자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제안해왔다. 그 중 하나가 '대자보부착승인제도'다. 대자보나 홍보물을 붙일 때 학생처, 총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각 단과 학생회 중 한 단위를 선택해 도장을 받아야 한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의 이 제안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도장을 받지 않은 자보는 모두 철거하도록 했다. 배군의 대자보 역시 도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수거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도장 받지 않았기 때문에 떼어버렸다는 말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다. 도장이 있지 않은 자보 및 홍보물을 철거하기 위해 총학생회실에서 출동한다고 가정해보자.

도장이 없다는 이유로 떼었다고 하기에는 총학생회실에서 국제관으로 가는 길에 도장 없는 대자보 및 홍보물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몇몇 학생은 학교 내 각 건물을 돌며 도장이 찍히지 않은 대자보및 홍보물을 찍어 가대총학 타임라인에 게재하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뜨겁게 달궈진 댓글 판에서는 배군에 대한 마녀사냥도 서슴없이 이루어졌다.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댓글이 달리는가 하면 '이렇게 문제제기하면 의식있다고 생각해 줄 것 같지?', '물 타기하지 마라, 인생 그렇게 사는 것 아니다' 등과 같은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끝내 욕설이 달리기도 했다. 욕설까지 달리게 되자, 총학생회 측에서 조용히 해당 댓글을 삭제하였다.

대자보? 홍보물? 뜻을 모르나

훼손된 대자보.
 훼손된 대자보.
ⓒ 장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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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상민 가대 총학생회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도 배도현 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철거한 것에 대한 사과문이 아니었다. 대자보에 대한 학칙과 현재 대자보 부착승인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만이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자보부착승인제도를 개선해 보겠다는 것이다. 19일(목)에 이르러서야 개인의 의견을 밝힌 대자보를 일방적으로 수거한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이마저도 단어 사용에서 있어 개념혼동이 있었다. 이상민 총학생회장은 학칙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대자보를 관리하는 학칙이 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 학칙의 정식명칭은 '홍보게시물에 관한 규정'이다. 이 홍보게시물에 대한 정의 부분을 살펴보면 '본 규정에서 홍보물이라 함은 교내에 부착되는 모든 게시물 및 현수막을 말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대자보와 홍보물은 정의가 다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대자보는 '정치적 사건에 관련한 의견을 적은 것'이라 되어 있다. 반면 홍보물의 경우 '어떤 사실이나 제품 따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인쇄물 또는 물건'을 뜻한다. 가대 '홍보게시물에 관한 규정' 제 3조 홍보물 범위 및 게시순위엔 대자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관리감독'하는 상위자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도장'으로 학생들을 관리·감독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총학생회는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선언에도 동참했었다.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하기 전 학교 내 몇몇 학생이 의견을 개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당시 그 학생들은 도장을 받아 대자보를 게시했다.

학생회 측에서 찍어주는 도장이 없다면 정당성은 사라지는 것일까. "총학생회는 학생들을 '관리감독'하는 상위자가 아니다"라며 "의견을 수렴하고 보다 많은 의견을 수용 전달하는 대의체"라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말은 일순간에 사라지나, 기록은 남아있다. 대자보부착승인제도를 시행한다고 했을 당시, 학생처와 총학생회의 인터뷰 내용이 남아있다. 당시 학생처 관계자는 "학생들이 학교에 항의를 표시하거나 정부에 항의를 표시하거나 그런 대자보를 도장을 안 받고 붙였다고 해서 '이걸 왜 도장도 안 받고 붙였느냐'고 하지 않는다"며 "그렇게 한 적도 없고 붙여도 된다. 떼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고 밝혔다.

이상민 총학생회장은 "검열은 없을 것이다"라며 "홍보물 및 대자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현 제도를 자율표시제로 바꾸든 도장을 찍지 않아도 되는 게시판을 만들든 어떤 식으로 수정·보완해야 할 것이다.


태그:#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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