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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8일 오후 5시 16분]

대법원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단, 여름휴가비 등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김소영 대법관)는 자동차 부품회사 갑을오토텍 근로자 296명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또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 등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들이 제기한 퇴직금 소송의 경우 노사합의에 따라 지급된 만큼 신의칙에 반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재판 당사자들은 패소했지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해석하면서 그동안 노동계와 재계가 충돌했던 통상임금 현안에서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기적이면 통상임금"... 범위 명확히 한 대법원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상여금은 근속기간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지지만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연간 1회만 지급되더라도 정기성이 인정되면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정기상여금 이외에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생일축하금, 휴가비, 김장 보너스 등의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통상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이라며 "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명칭이나 지급주기 등 형식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의 대가로 1개월을 초과하는 일정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 사안은 소송을 제기한 갑을오토텍 근로자들에게도 해당하지만, 재판부는 "노사가 이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키로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총액 및 다른 근로조건을 정한 경우 이를 뒤집으면 추가임금 청구로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따른다"며 "정의와 형평에 비춰 신의성실 원칙에 위반돼 허용할 수 없다"고 원심 파기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신의칙 적용에 찬성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김창석 대법관은 "상여금이나 1개월이 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수당은 통상임금이 아니다"는 별개 의견을 제시했다. 또 김용덕, 고영한, 김소영 대법관은 "노사의 임금협약 당시 예상치 못한 사정으로 상호 신뢰가 깨질 수 있다"며 "신의칙을 적용해 이를 형평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보충의견을 밝혔다.

노동계 "환영"... 재계 "경영부담"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위 고용노동부 통상임금 산정지침인 '1임금산정기간(한달)' 부분에서 반드시 기간 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취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통상임금은 시간외 근로수당과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기준이라 그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는 가에 따라 근로자들의 임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간 재계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될 경우 연간 약 38조 원의 추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노동계와 재계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노동계의 환영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사용자들은 임금 수준을 낮추려고 통상임금 범위를 계속 낮춰왔고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임금을 보충하려고 초과 노동을 강요당해 왔다"며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단순한 임금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을 극복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부가 20여 년에 걸친 사법부 판례에도 행정 지침을 바꾸지 않아 노사 갈등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소송과 시간 낭비를 초래했다"며 "판결을 계기로 노동부는 모든 혼란의 진원지였던 잘못된 행정지침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에서 "그동안 정부의 지침을 근거로 임금을 지급해온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법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고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며 "수많은 기업은 심화하는 노사갈등과 임금청구 소송에 휘말려 더 큰 경영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중소기업은 최소 14조3000억 원을 일시에 부담하고, 매년 3조40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해 기업의 고용창출력이 저하돼 일자리가 줄고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내년도 각 기업의 임금단체협상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초과근로수당 등을 산정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서 그동안 각종 수당으로 지급됐던 항목들이 기본급 중심으로 단순해질 전망이다.


#통상임금#상여금#대법원#갑을오토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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