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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격렬한 시위를 벌여 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탈리아 시위대가 이번 주(12월 셋째 주)를 기점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간 보였던 과격함은 자제하는 대신, 장기 시위로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여전히 시민들의 시위를 외면 중이라, 또 다른 비판과 염려를 낳고 있다.

지난 11월, 이탈리아에선 100% 철도민영화 계획이 발표됐고, 이후 이탈리아 북부 항구도시인 제노바에서 철도노조의 대규모 파업이 시작됐다(관련기사 : "유럽연합 탈퇴하라, 아니면 이탈리아가 팔린다"). 이것을 시작으로 12월 초부터 이탈리아 전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연대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9일 부터는 150여개 도시들에서 적게는 300~400여명이, 많게는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

물론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시위를 주동한 건 정부의 계속되는 세금인상과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포르코니 운동단체(Forconi/Pitchforks 쇠갈퀴, 고랑)였지만,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일반 시민들이었다. 이 시위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해 어민, 트럭운전사, 대학생, 고등학생, 주부, 상인, 중소기업인, 심지어 전직 경찰과 세무직원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각 도시의 도로와 철도, 역, 그리고 공공건물들을 점거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토리노에선 세무서로 행진하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분노한 이탈리아 시민들... 왜 거리로 나왔을까

이탈리아 레타 총리.
 이탈리아 레타 총리.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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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경찰을 출동시켜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 현 정부(민주당 중심 연정체재)의 레타 총리를 향해 진보당을 대표하는 오성당(5stelle)의 리더 베페 그릴로(B.Grillo)는 "시민들에게 무력으로 맞서는 무능력한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시위를 주도한 포르코니 단체의 리더들은 오는 19일 로마의 시민광장(Piazza del Popolo)을 점거해 이탈리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상 초유의 집단 시위를 벌일 것임을 알렸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한때 초긴장상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었으나 이들은 지난 14일 밤 자체투표를 한 뒤, 19일 시위를 무효화할 것을 발표했다. 하지만 18일 현재 내부 결정이 바뀌었고, 과격성을 배제한 채 19일 로마시위를 강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여전히 긴장감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이탈리아가 세계 자본시장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가 이에 대처할 만한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할 때까지 꾸준히, 장기적으로 시위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이탈리아 시민들이 화가 난 이유는 뭘까. 무엇이 평범한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일까. 또 시민들은 이 시위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이번 시위의 주체는 시민들이고 그들은 기본생활보장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문학가인 안젤라 아짜로(A.Azzaro)는 자신의 칼럼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시위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과격특수단체 단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었다. 또 내가 분노하고 슬펐던 이유는 이들이(시위대) 그 어떤 권리를 더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서', 먹고 살 기본생활권 보장을 호소코자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Protestano non per avere piu' diritti, ma per VIVERE' A.Azzaro)

그가 말한 이런 상황은 시위 현장에 내걸린 문구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맞선다'(Lottiamo per il futuro dei nostri figli!)
'우리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우리들 스스로 되찾자!'(Riprendiamo la nostra dignita!)
'이제 그만! 우리는 살기를 원한다!'(Ora basta! Vogliamo vivere!)
'개혁이 시작되었다'(E' iniziata la rivoluzione!)

이번 시위를 불러온 건 결국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이다. 정부 정책에 실망한 시민들의 불만이 쌓였고 그에 대한 분노가 이런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 경제는 베를루스코니가 정계를 지배한 20여년 동안 각종 부패로 피폐해졌다. 2011년 그가 물러난 뒤 마리오 몬티(M.Monti, 경제학자)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풀 테크노 크라프트 내각이 꾸려졌고, 부유세도입과 연금제도의 구조적 개혁이 진행됐다. 마리오 몬티 총리는 2012년 60억 유로( 약 9조 원 )의 국채를 국제금융시장에 매각하여 재정위기를 미세하게 극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정치적 한계에 부딪혀 2013년 사퇴했다.

당시 정치인을 배제한 내각출범, 국제금융위기를 금융권출신 인사를 기용해 해결하고자 했던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이 일었다. 혹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의 제자였던 마리오 몬티 총리를 골드만삭스의 하수인이라 혹평하기도 했다.

악덕 세금 징수 대행업체 때문에 160명이 스스로 목숨 끊어

시위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각 도시의 도로와 철도, 역, 그리고 공공건물들을 점거했다.
 시위대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각 도시의 도로와 철도, 역, 그리고 공공건물들을 점거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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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들어선, 민주당의 연립연정내각을 이끄는 엔리코 레타(E.Letta) 총리는 이탈리아인인 마리오 드라기(M.Draghi) ECB유럽중앙은행 현 총재와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세금, 공공요금 인상, 더욱 비싸진 에너지정책, 그리고 지난달 발표한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국채매각 결정 등은 시민들의 불안감만 조성할 뿐이고 속출하는 기업 파산과 실업자들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드라기는 독일 마르켈의 동의를 늘 얻어야만하는 등 그 행보에 제한이 있다.

현재 초 저 금리정책을 펼치고 있는 드라기 총재(2013년 포브스선정 세계인물 9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버냉키와 함께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의 제자였다. 최근 스탠리 피셔가 차기 미국 FRB 신임 부의장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는 부시의 경제자문, IMF 부총재를 역임한 인물이다.

레타 총리는 "현재 이탈리아가 회복중"이며 "내년에는 이탈리아가 유럽의 막강한 경제 리더가 될 것"이라고 몇 주 전 발표했으나, 이후 발표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다음과 같은 발표는 레타 총리의 확신과는 상반된다.

"노동력의 12%가 일자리를 못 찾는 현 상황을 놓고 위기 극복이라 할 순 없다. 이탈리아는 경제성장률과 생산수준이 필요치보다 현저히 낮은 상태다. 성장률도 낮고 지속가능성도 아주낮은 상태이다."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도 시위대들의 분노를 키웠다. 하루하루 세금은 오르고, 정부를 대신해 세금 징수를 대행하는 에퀴탈리아(Equitalia)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지만, 이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상당하다. 이미 몇 년째 국회 앞에서 에퀴탈리아의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대다수 시민들은 이 업체의 폐쇄를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할 정도다(그 호소에 동참한 유일한 정치인은 세금 탈루죄의 베를루스코니 뿐이었다).

에퀴탈리아의 횡포는 악덕사채업자 집단과 맞먹을 만큼 악명이 높다. 파산해서 빚에 허덕이는 자영업자, 중소기업인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괴롭힌다. 이로인해 2010~2011년 중반까지 단 1년 반 동안 자영업자 16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제단체 코바스는 이들의 횡포에 시달려 자살하는 숫자가 이젠 한해 300여명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심지어 일반인들의 사소한 행정적인 실수로인한 소액 미납금까지도 각 종 행정법과 이자의 적용으로 수 백, 수 천만원의 고액이 되게 해 냉혹한 집행을 해 냄으로써 시민들의 치를 떨게하는 수준이다.2011년에는 에퀴탈리아 이사진중 한 명에게 폭탄우편물이 배달되어 부상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격렬한 시위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

과거 에퀴탈리아에서 근무했던 직원들 중 몇은 이번 시위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언론들에 따르면 이들은 은퇴 후 양심의 가책을 느껴 시위대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전국적으로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하게 이어짐에도 정치인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어 신세대 리더인 렌찌(M.Renzi)를 선출한 뒤 이를 알리느라 바쁘고 북부연합당은 부패한 리더 보씨를 퇴출시키고 소장파 의원들 중심으로 정치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또 한편에선 젊은 경제학자인 바냐이(A.Bagnai)와 보르기(C.Borghi)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를 총막론한 신세대 소장파의원들이 연합하여 유럽탈퇴를 주장하는 중이다(단, 오성당은 연합을 거부하며 단독노선을 유지중이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포르코니 단체의 리더인 마리아노 훼로(M.Ferro)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 우파정당(PdL자유국민당)도, 좌파정당(PD민주당)도 믿지 않는다. 나라를 팔아먹는 짓들을 그만하고, 주권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내놔라!"


태그:#이탈리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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