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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
 <피부색깔=꿀색>
ⓒ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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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길찾기 펴냄)은 한국 이름 전정식, 벨기에 이름 '융 헤넨'의 만화다. 저자가 이처럼 두개의 이름을 가진 것은 1971년에 벨기에로 입양됐기 때문이다.

전정식은 5살 때, 남대문 시장에서 경찰에게 발견돼 홀트 아동복지회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벨기에의 한 가정으로 입양돼 '정'이라는 이름으로 자라게 된다.

입양된 가정은 이미 4명의 아이들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입양 이후 또 한 명의 한국인 여자 아이가 전정식의 동생으로 입양된다.

건설현장소장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입양으로 가족이 되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형과 누나 등…. 새로운 가정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순탄하게 자라난다.

그러나 버려진 아이들 대부분이 그러는 것처럼 전정식 또한 점점 갈수록 어머니와 고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자신의 정체성 등에 대해 고민하고 그리고 방황한다.

"난 버텨낼 거야... 난 버텨냈다"

"1980년, 나는 열네 살이었다. 점 점 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략) 나무가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땅 속 깊숙이 뻗어있을 것이다. 뿌리가 뻗어나가는 것은 토양의 질에 좌우된다. 토질이 좋아야 뿌리가 더욱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다. 질 나쁜 토양에서는 뿌리가 지표 근처에서나 머물고 더는 뻗어가질 못했다. 거기서 영양분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나무는 겉보기에만 뿌리가 있어 보일뿐, 조금만 비바람이 불어와도 흔들거리기 마련이다. 뿌리는 나무가 잘 지탱하게 해주고, 나무에 필수적인 수액을 전달해준다. 뿌리는 절단되면 더 이상 뻗어나지 못하여, 나무 전체 혹은 일부가 죽게 된다.

'난 버텨낼 거야. 히히 그 정도로는 아프지 않아. 난 버텨낼 거야. 버텨낼 거야. 난 버텨냈다.'

하지만 늘 발이 아팠다. 뿌리가 뽑혀 있었으니까. 어디를 가든 약간 이방인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어쨌든 나는 어느 사내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심술궂은 무언가가 늘 있었다."(<피부색깔=꿀색> 중에서)

그가 다니는 학교에도, 그리고 도시에도 한국인 입양아들이 많았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 처지와 심정을 잘 알고 있을 같은 나라에서 입양된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 같다. 그런데 이는 그 처지와 환경 등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인가 보다.

전정식은 자신처럼 태어난 나라에서 뿌리 내릴 기회를 뺏긴 수많은 한국인 입양아들 속에 쉽게 섞이지 못한다. 그리하여 '일본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일본 문화에 탐닉하고 일본을 동경한다.

하지만 일본 문화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자신을 더욱더 허전하게 하는 그 무언가 때문에 방황한다. 그리하여 버려진 자신을 받아들여 키워준 부모와 가족들을 등지고 떠나오고 마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최악은 내가 왜 불행한지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입양인 유리는 훨씬 빠른 방법(기자 주: 권총 자살)을 선택했다. 역시 입양인 유리의 누나는 마약 과용으로 죽었다. 다리가 짧았던 입양인 브뤼노는 목을 매달았다. 입양인 내 누이 발레리는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 이후 죽었다. 입양인 안느는 혈관을 끊어서 죽었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입양아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입양아 미쉘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 모든 한국인 입양아들은 내가 아는 이들이다. 다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고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다.

일부 입양 가정을 보면, 특히 부의 상징으로 멋진 자동차와 그리고… 한국인 입양아가 외적인 부의 상징 그 필수인 듯했다. 장난감이 망가지면 쉽게 버린다.… 입양은 우리가 입양 가정에 인도되는 그날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 입양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어둠속에서 더듬더듬 나아간다."(<피부색깔=꿀색> 중에서)

36년 전에 해외로 입양됐던 전정식은 만화가가 돼 '융 헤넨'이란 이름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피부색깔=꿀색>은 그런 그의 책, 만화다.

그림은 매우 따뜻하며 그리고 익살스럽다. 특히 청소년 남자 아이들이 겪는 몸의 변화에 대한 묘사는 어찌나 유쾌하게 그렸는지 나도 모르게 웃음 터트리며 읽기도 했다.

'융 헤넨'이라는 만화가가 생소하시다고요?

'PISAF2013'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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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SAF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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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식' 혹은 '융 헤넨'이란 이름이 일반인들에게는 좀 낯설 듯하다. 하지만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관계자들에게는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이 만화 <피부색깔=꿀색>이 제15회 부천 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2013, 11월 7일부터 11일까지) 개막작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융 헤넨은 감독이 돼 이 작품을 스토리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해외의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정식이란 이름도, 그리고 융 헤넨이란 이름도 전혀 몰랐다. 피부색을 꿀색이라 표현한 책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고, 저자가 해외 입양아였다는, 이런 저자의 자전적 만화라는 사실에 끌려 선택했다.

2011년에 해외입양인 작가 '제인 정 트렌카'가 쓴 '미국 입양된 아이가 34년 만에 이태원 노숙자로 발견된 사연'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34년 전에 의사와 예술가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됐으나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양부모에게 버려진 팀의 사연을 통해 '해외입양 그 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 등을 다룬 기사였다.

몇 달 전인 6월에 내가 아는 누군가 "생후 1개월 때부터 위탁 양육해온 정인이라는 15개월짜리 남자 아이가 2011년 12월에 입양 가정으로 보내질 예정"이라며 무척 슬퍼했었다. 정인이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 이젠 먹고 살만큼 잘사는 나라이니 우리의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즉 해외입양은 과거의 일로만 알고 있던 터라 작은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제인 정 트렌카의 기사는 남다르게 읽혔고, 그때부터 해외입양문제에 막연한 관심이 생겼다.

이런 이유에 더불어 <피부색깔=꿀색>이 자전적 만화인 만큼 해외 입양 당사자들의 생활 등 해외입양 관련 여러 가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책을 집어들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 60년간 우리가 공식적으로 해외입양 보낸 아동은 16만4894명, 2010년 한 해 해외입양 보낸 아동은 1013명이라고 한다.

왜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낼까

<피부색깔=꿀색>에는 이처럼 우리들이 외국으로 입양 보낸 우리의 아이들이 이국에서 겪는 차별, 자신을 버린 부모와 고국에 대한 배신감과 정체성 갈등 극복, 우리의 입양 실태와 입양의 이면 등이 잘 묘사돼 있다. 저자가 2부 마치는 글(모두 3부다)에 '이 책이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솔직히 동정과 아릿함으로 읽었다.

전정식은 1965년 12월생이다. 그가 입양됐을 때인 1971년만 해도 워낙 못살던 시절이었다. 가난하다는 것이 자식을 버리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만, 최소한 굶고 사는 것은 막고 싶어서 자식의 손을 놓았다는 어떤 부모들의 말을 그럭저럭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그때처럼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저출산 국가이면서도, 저마다 낮은 출산율을 염려하면서도 우리는 왜 우리의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는가. 꼭 보내야만 하는가. <피부색깔=꿀색>이 답해줄 것이다.

참고로 융 헤넨은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애니메이션 작가이자 감독이다. 이 작품 외에 여러 작품을 출간했다. 코믹하며 따뜻하며 감성어린 융 헤넨의 작품과 메이킹 필름 등이 12월 15일까지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덧붙이는 글 | <피부색깔 = 꿀색>|전정식 (지은이) | 박정연 (옮긴이)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 2013-11-10 |16,000원



피부색깔 = 꿀색 - 개정증보판

전정식 글.그림, 박정연 옮김, 이미지프레임(2013)


태그:#융 헤넨(전정식),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해외입양, #피부색깔=꿀색, #PISAF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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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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