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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평소 실력 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준비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중략)…전적으로 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을 총체적으로 놓고 보면, 저는 역시 준비와 전략이 부족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우리는 공을 쫒아 우르르 몰려가는 동네 축구 같은 선거를 했다는 느낌입니다. 후보인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에 놀다가 벼락치기 준비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벼락치기로 준비했던 일들을 5년 내내 하면 됩니다."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펴냄)

<18 그리고 19>
 <18 그리고 19>
ⓒ 도서출판 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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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8대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했습니다. 물론 "국정원의 대선 공작과 경찰의 수사 결과 조작 발표 등의 관권 개입"이 있었지만 패배 원인 첫 번째를 문재인은 '실력 부족'과 '준비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패배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후보도 없었습니다. 이 같은 분석과 자기비판은 문 의원 말처럼 5년 내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민주개혁세력은 2017년 다시 '멘붕'에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를 '석기시대'로 되돌리는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진보개혁세력 21명이 2012년 12월 19일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였습니다. 18대 대선 평가서이면서 19대 대선 보고서인 <18 그리고 19- 18대 대선으로 본 진보개혁의 성찰과 길>(밈 펴냄)을 펴냈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을 촉구하면 박근혜 정권은 "대선 불복이냐"며 맹비난합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도둑이 제 발 저린다'일 것입니다. 하지만 <18 그리고 19>는 국가기관의 부정선거가 초점이 아닙니다. 대선 패배에 대한 "냉정한 평가, 진지한 성찰,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함입니다. "성찰은 미래를 여는 가장 큰 힘"입니다.

왜 서민은 '부자당'에 투표할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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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재인은 아니 민주개혁세력은 패배했을까요? 2012년 4월 총선 이전부터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재벌개혁 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선거 경쟁의 축은 역사적 의미를 지닐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진보개혁진영은 사회경제적 어젠다를 통해 대중의 신뢰를 획득하지도 선거를 주도하지 못했다"고 <18 그리고 19>는 패배 원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한나라당 시절, '성나라당', 차떼기당'이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부자당'이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분석해 보면, 서민들이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합니다. 18대 대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발표한 18대 대선 소득별 득표율(%)을 보면 저소득층의 60.5%는 박근혜, 39.5%는 문재인에게 투표했습니다. 중산층은 박근혜(47.9%), 문재인(52.1%) 그리고 고소득층은 박근혜(46.5%), 문재인(53.5%)이었습니다. 소득이 적을수록 박근혜에게 투표했습니다. 저소득층이 부자정권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한귀영 연구위원(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은 "지구당이 해체되면서 정당의 지역 기반이 궤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보수정치세력과 친화", 그리고 "종편 등장"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똑같이 지구당이 해체됐지만, 보수정당은 '새마을부녀회' 같은 기반이 구축됐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그 자체가 보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대형교회 목사들 중에 "종북주의 뿌리뽑자"고 외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박정희 추모예배까지 드렸습니다. 그리고 민주개혁세력은 종편을 너무 무시했습니다. 시청률 0%대라며 조롱했지만, 대선 기간 동안 종편은 보수세력 결집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보수적 교회나 종편, 보수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보수담론은 서민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해에 둔감하도록 하면서 오히려 부자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도록 한다. 이에 대한 기존의 가설은 서민층일수록 경제보다는 안보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경제적 이슈보다는 사회문화적 이슈, 가치 이슈를 더 중시하고 이에 입각해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34쪽)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귀영은 "가난한 이들과 민주진보정당 간 접속이 이루어질 수 있는 수로로서 지역의 복원은 대선이 던져준 가장 중요한 화두"라며 "지역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어떻게 빈곤층, 여성, 고연령층과 만나고 이들과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에 천착해 해결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차기 대선도 보수의 우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합니다.

지역의 복원은 민주진보계열 정당이 공중전이 아니라 지역이라는 땀 냄새 나는 공간에서 지역주민들과 밀착하여 서민 없는 민주주의 현상을 극복할 때 가능하다. 이 점에서 공중전, 한탕주의가 아니라 지역이라는 가장 본원적이고 소박한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지역을 통해 잃어버린 서민감각을 회복하고 서민과 밀착하는 것, 대선이 던진 가장 큰 화두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다."(41쪽)

'지역'과 '생활', 다시 기본으로

2012년 12월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2012년 12월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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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에 무슨 '지역타령'이냐고 하겠지만, 정곡을 찔렀습니다. 1년 전 이맘 때를 생각하면 문재인이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트위터와 댓글을 보면 6:4 정도로 문재인이 박근혜를 앞섰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국정원 부정선거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SNS공간에서는 문재인이 박근혜를 앞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을 나와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3:7로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졌습니다. 필자가 사는 곳이이 '골수 경상도'인 경남 진주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각 지역 밑바닥 정서는 박근혜의 든든한 우군이었습니다.

지역을 통해 잃어버린 서민감각을 회복하지 않는 한 다음 대선도 힘들다는 한귀영 연구위원의 주장에 진보개혁세력은 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은재식 사무처장(우리복지시민연합)은 '지역운동, 풀뿌리 조직이 진보의 외연을 확대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허약한 시민정치의 기반은 생활정치 영역으로까지 침투하지 못하고 지역정서의 벽을 넘지 못했으며, 독점적 정치권력 구조에 갇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풀뿌리 생활정치를 통해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주민들의 경험과 성과가 그동안 전무하다 보니 지역 진보운동이 선순환되지 못하고 패배만 계속 남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1월 3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22차 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손피켓 대부분이 "박근혜 하야" 11월 3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 22차 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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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해보면 정말 모이는 사람만 모입니다. 주장은 옳습니다. 민주주의, 평화 등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민들과는 괴리되어 있습니다.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길은 바로 생활정치입니다. 신광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도 이창곤 소장(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인터뷰에서 이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생활정치가 중요한 대안"이라고 말합니다.

생활정치의 경우에도, 지역의 대중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신뢰감을 주고 어필핳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촛불시위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시위인데, 그것을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참여했다. 자신들의 생활과 관련해 이슈가 되니 참여한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대중적 운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가 변화돼 간다는 의미다. 보통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큰 변화이고, 자신들의 생활문제가 원인이 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 또한 큰 변화이다. 정부가 일반 대중의 먹거리, 밥상의 문제를 간과한 것에 대해서 촛불시위라는 방식으로 정부에 대응한 것이다."(345쪽)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촛불은 활활 타올랐는데, 2013년 국정원 부정선거 촛불은 왜 타오르지 않을까?'라는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광우병은 신광영 교수 말처럼 생활과 관련된 이슈였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는 민주주의를 유린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생활과는 직결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유린 당하면 결국 자신의 삶이 유린당하지만 왠지 광우병보다는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국정원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2017년 19대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생활정치를 해야 합니다.

<말과 활> 발행인 홍세화는 책에서 말합니다.

삶은 살아져야 할 뿐 아니라 영위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산을 멈춰 세우게 하는 파업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 비참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국가복지의 수도꼭지 앞에 줄 서게 하는 수치의 감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영위하게 하는 당당한 주체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좌파정치의 내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선취하여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좌파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18 그리고 19: 18대 대선으로 본 진보개혁의 성찰과 길 이창곤,한귀영 공편 | 밈 펴냄 ㅣ 18000원



18 그리고 19 - 18대 대선으로 본 진보개혁의 성찰과 길

이창곤.한귀영 엮음, 밈(2013)


태그:#대통령선거, #민주개혁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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