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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3시 강창희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 앉았다. 곧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본회의장 반대편 제2회의장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민주당 당직자들이 급하게 의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제야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강창희 의장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뒤였다. 서병수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의 경과 보고 이후 곧바로 투표가 진행됐다. 전병헌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20여 명이 의장석 밑에서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강창희 의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누리당과 무소속 의원들만 투표에 참여했고,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통과됐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 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 강창희 의장에게 항의하는 전병헌 원내대표 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 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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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오면서 취재진에게 "아주 야비하고 비신사적이고 유신회귀형 국회"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패장'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이후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원내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거 터져 나왔다. 전병헌 원내대표가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의원들은 "반박하지 말고 의원들 목소리를 들으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허 찔리고 우왕좌왕 민주당... "전략이 없었다"

의원들은 강창희 의장의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에 대비하지 못한 원내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창희 의장이 상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원내지도부의 안일한 생각 탓에 허를 찔렀다는 것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한 뒤 한 표를 행사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 강창희 의장에게 항의하는 전병헌 원내대표 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한 뒤 한 표를 행사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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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원내지도부는 강창희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천재지변·국가비상사태·여야합의 때에만 직권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특위에서 심사경과보고서가 채택만큼 자동적으로 부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권상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사청문회법 9조는 "위원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일정한 기간 내에 임명동의안 심사나 인사청문을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의장은 이를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석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원내지도부가 상정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임명동의안 상정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에 국회의장이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상정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28일 국회 본회의에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상정되고 있다.
▲ 국회 본회의장에 텅빈 민주당 의석 28일 국회 본회의에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상정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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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이석현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많은 의원들이 '상정해서 단독 처리 할 줄 몰랐느냐, 거기에 대비를 했어야 했지만 전략이 없었다'고 비판했다"면서 "원내지도부가 원내전략에 대해서 정치투쟁을 많이 한 중진 의원들한테 물어봐야 했는데, 상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의원은 "국회사무처가 그렇게 유권 해석을 내리면 그만이지 않느냐"면서 "본회의장에 들어가니까 투표를 했고, 본회의장에서 나가니까 가결됐다, (원내지도부가) 헤매다가 얻어터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형표-황찬현 연계 전략 비판 봇물

의원들은 무엇보다 문형표-황찬현 연계 전략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원내지도부는 새누리당에 황찬현 후보자 임명동의안 통과 전제조건으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사퇴를 내걸었다. 원내지도부는 공금 유용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후보자를 주로 비판했다. 사실상 황찬현 후보자에 대해서는 적격 의견을 낸 셈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황찬현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가 가시화되자, 민주당은 황찬현 후보자 임명 동의를 막겠다고 나섰다. 결국 민주당 스스로 적격이라고 평가한 후보자의 임명 동의를 막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민주당은 황찬현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뒤, 법원에 직무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박지원 의원은 "처음부터 황찬현 후보자의 임명을 막으려 했다면, 현직 법관으로서 병역·부동산 의혹이 있기 때문에 공직기강을 세워야 하는 감사원장에는 부적격하다고 국민과 언론을 설득했어야 했다"면서 "국민은 황찬현 후보자가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요구하는 바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각 대응을 했어야 했다"면서 "원내지도부가 아무런 전략 없이 있다가 당한 것으로,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이 건으로 '무효'를 이끌기 힘들 것"이라며 "하려면 소송으로 가야 하는데, 국회 안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무능력으로 인해 법의 영역으로 넘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 민주당 대표 한 당직자는 "황찬현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과거 민주당이 결사적으로 막았던 한미FTA 비준동의안처럼 중대한 사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원내지도부가 말해놓은 것(황찬현-문형표 연계전략)이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태그:#패장 전병헌 책임론 불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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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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