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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살바도르 민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만약 살해 위협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그 순간 나는 엘살바도르의 구원과 부활을 위해 내 피를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할 것입니다. 내 피를 희망이 곧 현실이 되는 표지이자 자유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19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El Salvador)에서 미사 집전 도중 괴한들에게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가 생전에 한 말입니다. '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원자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1980년 엘살바도로 군사독재정권은 인민들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독재자 전두환도 비슷한 시기에 '빛고을'(광주)를 붉게 물드렸습니다. 

"한 주교는 죽지만, 민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로메로 대주교도 처음에는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신부는 정치와 사회 참여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무가 군사정권에 살해 당하자, 저항으로 돌아섰습니다. 군사정권은 로메로를 가만두지 않고, 미사를 집전하는 그를 죽였습니다. 군사정권은 로메로 생명을 빼앗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엘살바도르 인민에게 영원히 남았고, 권력 탄압에 고통당하는 수많은 이들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들이 나를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당신은 내가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며 죽었다고 신자들에게 전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확신을 갖기만을 바랍니다. 한 주교는 죽지만 하느님의 교회, 즉 민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12년 제작된 DVD 다큐멘터리 <몬시뇰>(Monseñor: The Last Journey of Oscar Romero)을 보면 로메로 대주교는 "저는 누구의 목자입니까?"라고 물은 뒤, "나는 억압받는 민중들의 고통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압제자의 편입니까? 나의 사명은 권력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2012.04.23 <지금 여기>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다큐멘터리 <몬시뇰>로 부활하다' 참고

로메로 대주교는 권력자 편이 아니라, 억눌린 인민을 대변하고, 보호하다가 군사정권에 암살당했습니다. 33년이 흐른 지금, 로메로 대주교 저항과 죽음을 정치편향이니, 종교인이 정치에 개입했다며 비판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저항이었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사제단이 시국미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자,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리고 조중동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발언을 두고는 '종북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인 정치개입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로메로 신부처럼 권력이 불의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합니다. 끝내, 최고권력이 책임지지 않으면 퇴진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 로메로 신부처럼 또 다른 종교인이 있습니다. 독일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 서른아홉 살에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1906~1945)입니다. 본회퍼는 목사입니다. 히틀러 집권시 독일교회는 "히틀러의 국가는 교회를 부르고 있다. 교회는 이 부름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독재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독재를 찬양한 것입니다. 한국교회(개신교)도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저항 목사도 있지만, 그들에게 부역했습니다.

본회퍼 "자신을 신격화하는 지도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본회퍼는 주류 독일교회를 따르지 않습니다. 1933년 2월 1일(히틀러가 집권한 다음날) '지도자 개념의 변천'이라는 제목 라디오 강연에서 "자신을 신격화하는 지도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윤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악한 행위보다 더욱 악한 것은 악한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쟁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악하다. 인간 증오자가 형제애를 행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악하다. 거짓말쟁이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은 아무리 미화해도 역시 거짓말이요. 인간에게 적대하는 자의 형제애의 행위는 아무리 좋아도 역시 증오이다."-<옥중서간>(1990년 5월·기독교서회 281쪽 재인용)

즉 게르만주의와 정의의 탈을 쓰고 인민을 현혹시키는 히틀러는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잔악한 독재자라는 일갈입니다. 나치는 독일교회 지도자를 회유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의 충실한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이런 교회를 향해 본회퍼는 <윤리학>에서 "이 세계는 그리스도와 악마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그것을 인정하건 하지 않건 이 세계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세계다"라고 합니다.

이는 교회 일과 세상 일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권력이 불의하면 저항하는 것이 곧 하나님 일이라는 말입니다. 국정원 부정선거는 불의한 일입니다. 불의한 권력이 오히려 더 당당한 것이 2013년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사제단이 시국미사를 통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본회퍼를 <윤리학>에서 "교회는 가난한 자들이 약탈되고 착취당하고 강한 자들이 부해지고 또한 부패해 가는 데 대해서 침묵했다"고 질타합니다. 본회퍼의 이 같은 발언은 히틀러 치하에서 나왔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는 목숨을 내놓았고,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본회퍼를 "종교인이 정치에 개입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 없습니다. 본회퍼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자유는 도망하는 생각이 아닌 오직 행동에서 온다"

제 멋대로 행하기 보다는
참된 것을 담대히 행하고
소심하게 의심하기 보다는
현실을 과감히 붙잡으라.
자유는 도망하는 생각이 아닌
오직 행동에서 오나니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히 신뢰하고
주저하거나 두려워 말며
폭퐁우 속으로 들어가 행동해라.
자유가 승리의 기쁨으로
그대의 영혼을 맞이하리.-'자유의 도상에 있는 정거장'

"자유는 도망하는 생각이 아닌 오직 행동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종교인이라면 자유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권력자들이 불의를 행하고, 공의를 거부하면 저항해야 합니다. 비판해야 합니다. 구약 미가서 6장 8절은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 통치자들 불의할 때 비판하고 저항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의란 가진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권력자가 인민을 압제할 때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법을 순종하는 사람이 이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3장 1-4절에서 이스라엘 권력자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그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악을 기뻐하고, 선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자행한 악은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먹었습니다. 약육강식과 혼동과 무질서가 벌어지고 있는데 침묵하는 것은 예언자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61장 1절은 말합니다.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 종교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감옥에 들어간 것만 갇힌 것이 아닙니다. 말하는 자유를 빼앗고, 국정원 부정선거를 입에 담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감옥에 가두는 일입니다. 종교인이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회퍼#로메로대주교#공의#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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