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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히만 포스터
 영화 아이히만 포스터
ⓒ 아이히만 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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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죄는 명령을 따른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이라는 역사적으로 기록된 악인이 있었다. 위 말은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신념이었다. 그는 독일의 항복 이후 아르헨티나로 은신하였다. 1960년 5월 체포당하여 1961년 12월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600만 명의 대량 학살 집행자의 책임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히만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잘못된 신념대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히만은 보여준다. '권위'의 요구를 아무 생각 없이 수용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와 같은 악인으로 인해 홀로코스트와 같은 거대한 비극이 탄생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가 '근본이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 무비판적으로 행동'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그가 평범한 사람이란 게 면죄부는 아니다. 오히려 '무사유를 통한 무비판적인 행동'이 바로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통렬하게 역설한다.

신기하다. 이런 '아이히만'들이 대한민국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저 '권위'가 명령하는 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사고불능의 개인의 모습으로. 하지만 기특한 옵션은 있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부귀영달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선 사유한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대선과 관련해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엄청난 부정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관련자들이 존재한다. 허나 그 중 어느 하나도 양심선언한 사람이 없다. 국감에서의 자세는 또 어떠한가? 죄책감보다는 억울한 피해자들의 모습만이 등장할 뿐이었다.

너무도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나의 죄는 명령을 따른 것이다"라고 말하던 아이히만과 댓글을 달고 리트윗을 한던 그들과 '무죄책감'과 '무비판적 무사유'는 복사한 듯하다. 현 법조계에서 '3·15 부정선거를 뛰어넘는 헌정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라 전하는 이번 대선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말할 것이다. '단지 댓글 몇 개 달았을 뿐'이라고.

그들의 악은 어떻게 평범해지는가

지난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정부기관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 들어난 국가정보원 120만여 건의 엄청난 트위터 댓글, 경찰의 수사외압, 국방부 사이버 사령부 대선관련 글 작성, 국가보훈처의 종북·좌익 매도, 현 안전행정부의 왜곡된 자료 배포 등 불법 대선 개입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각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여론조작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대선부정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역사적으로 가장 추악한 사건이다. 관련자들 모두 평범한 아이히만처럼 그저 자신의 업무에 충성을 다하는 직장인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그저 60여 년 전의 아이히만처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변명할 것이다. 약자여서 '권위'에 맞서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자위할 것이다.

약자라서 어쩔수 없었다고? 물론 권위에 대항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라고 공직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에 합당한 명예가 주어지는 것이다. 수사에 부당한 압력이 있었음을 알린 권은희 전 수사경찰서 수사과장, 상사의 불법한 지시는 제외하고 자신의 옳은 신념으로 철저히 수사한 윤석열 여주지청장, 판사의 부당한 기소청탁을 밝힌 박은정 전 검사와 같은 사람들도 그 상황에서는 약자였다.

그들도 불의를 알지만 편한 대로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들만이 비판적 사유를 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인가?

언제나 불법한 일에는 정당하지 않은 큰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 대가는 달콤했을 것이다. 그 달콤함은 국민의 피눈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라면 불법·부당한 일도 자행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아이히만처럼 타인을 이해할 능력이 떨어질까? 설마 사유를 하고서도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짜 눈물 나는 호러물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당하고 올바르지 않은 사회에서는 합법적이고 올바른 사람들이 처벌받기 마련이다. 위 세 사람 권은희, 윤석열, 박은정 등은 불이익을 받았다. 과연 그들이 그런 불이익을 받을 것을 몰랐을까? 그들은 지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명예가 남았다. 어느 누가 지우려 해도 그 훈장과 같은 명예는 국민이 인정할 것이다.

홀로코스트와과 댓글은 과연 범죄의 급이 다를까

과연 그럴까? 단지 그들은 댓글 좀 달고 트위터 조금 한 것뿐이겠지만. 하지만 그들의 무사유한 행위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온통 전시 상태이다. '종북'과 '좌빨' 몰이에 여념이 없다. 소통은 사라지고 편 가르기와 적개심만 남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깨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투사들이 집회와 시위를 하고 목숨을 버려가며 지킨 민주주의, 6·25 때 국군들이 죽어가며 지킨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를 아무 생각 없는 댓글로 죄책감 없이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게 '무비판적 무사유'로 아무런 사고 없이 학살을 저지른 것과 경중을 저울질할 수 있을까? 저울질하여 용서받을 수 있을까? 결국 악의 시작점이 같기에 종착점도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을까? 그들이 단지 자신의 출세와 관련된 탐욕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살아간 악마 '아이히만'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이야말로 아이히만이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실행하게 한 가장 근원적인 힘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이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재생되어 악몽 같게도 '한국판 아이히만의 닮은 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권위'에 대해 '무사유'와 '무비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최악의 엄청난 범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이 그들을 역사상 가장 큰 범죄의 주연으로 영도하여줄 것이다.

우리도 '악의 평범성'으로 인도되고 있는가

촛불문화제 참가사의 피켓구호
 촛불문화제 참가사의 피켓구호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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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포스런 경제상황을 겪고 있다. IMF와 리먼 브라더스로 인한 세계금융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도미노처럼 터져가고 있다.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국민들은 생존만으로도 너무 팍팍하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육체는 피로에 찌들어 사유할 틈이 없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특성으로 우리는 점점 획일화되고 있다. 더불어 각종 찌라시 같은 방송과 뉴스는 우리를 더욱 더 일차원적으로 생각 없는 기계로 만든다. 여기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우리 역시 서서히 '사유불능'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무사유'는 조금씩 침잠하며 우리를 '악의 평범성'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정치 문제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정치문제들이나 현 대통령의 문제들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런 대화 자체가 다수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자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포츠나 예능 그리고 드라마에 대한 잡담과 농담으로 일상을 보내게 된다. 정치문제에 대해 사유하지 않고 관심도 버리게 되면서 말이다. 서서히 '무사유' 즉 '사유불능'에 일상화 되고 중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아이히만과 같은'악의 평범성'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 이어 4대강, 비정규직 문제, 부자감세와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 가장 추악한 헌정사상 최악의 대선부정이라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되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일차원적인 '무비판적 무사유'로 지내온 '악의 평범성'의 공범이지는 않을까?

'대한민국 아이히만'의 공모자들

이 사건들과 관련된 수사에 대한 정부의 발표들을 보면서 당황하지 말자. 먼저 대선후보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성폭행범 운운하며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문제 삼았다. 그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처음엔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자 지난 정부에서 벌인 일이어서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자 너무도 미미하여 그리 득을 본 것도 없다고 한며 대수롭지 않은듯 넘어가려고 했다. 오히려 정부 여당은 문제제기를 하는 야당과 국민들에게 '대선불복'이냐고 큰소리로 겁박하며 멱살을 잡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에 유행처럼 퍼진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모습과 너무도 묘하게 닮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직장이란 어디일까? 노량진에서 추운 겨울 줄을 서가며 밥을 먹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다. 좁은 고시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그들이 꿈꾸고 있는 그곳은 과연 어디일까? 바로 이번 대선 부정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들은 그곳에 합격하면 축하해주고 그곳에 다닌 것만으로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러워할 진짜 명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조차도 사유하지 못하고 그저 부러운 시선만 보내고 있었다는 것도 범죄를 방조한 죄를 지은 거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이히만을 닮지 않기 위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아이히만은 결국 처벌받았다. 사형을 집행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결론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은 죄, 의심하지 않은 죄, 행동하지 않은 죄, 당신은 유죄다!"라고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구형한 검사의 말을 무겁게 각자의 자신들에게 되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경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악의 평범성 속에 살아가지 않으려면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죄, 이웃과 역사와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 죄, 그 악과 윤리의 문제에 대해 큰 무게감을 가지고 사고하며 비판적인 사유의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가진 시각으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는 생각하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헌법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를 자신들의 영혼과 가슴에 큰 울림으로 깊숙이 새겨놓아야 할 것이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차디찬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될 것만 같다. 이상한 나라의 국민들이여! 당신의 영혼에 정치란 감기가 상처 내지 않도록 가슴도 육체도 다들 단단히 챙기어 나가시길 부탁드린다.


태그:#악의 평범성, #노무현, #대선부정, #아이히만, #무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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