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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국 파행을 '대선 연장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11월 18일 조선일보 1면
 현 정국 파행을 '대선 연장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11월 18일 조선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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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이날의 <조선일보>를 기억하자. 화끈한 1면 제목과 '인간 왕실장' 기사, '야당 비판' 사설로 채워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이 예정된 날 이 신문은 1면 제목부터 의미심장하게 뽑았다. '대선 연장전 333일, 마침표를 찍자'는 제목이다. 미래지향적인 제목인 것처럼 보이나 일방을 편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대선 연장전'이란 표현에는 '대선불복'의 의미도 읽힌다. 그러나 현 상황은 대선 연장전이 아니다. 관련된 여론조사를 봐도 대선연장, 대선불복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이 개입했다. 밝혀진 사실을 보면 그들은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검찰의 공소장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제 사법부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101일간 천막투쟁을 한 제1야당의 요구에 많은 지지자들은 동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불통했다. '국정원으로부터 도움받은 적 없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국정원 개혁은 '셀프'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해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선일보>의 표현대로라면 333일이 흘렀다. 

지난 대선에 대한 관심은 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수의 외신들도 큰 관심을 갖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뉴욕타임스>는 '커지는 선거개입 스캔들에 검찰 사이버군사령부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러나 스캔들은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법원은 온라인 비방 캠페인에 연루된 혐의로 두 명의 고위 국정원 관리의 기소를 명령했다"면서 "월요일 국정감사에서 최근까지 스캔들에 대한 조사를 지휘했던 수사팀장 윤석열 검사는 그의 팀이 외부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333일' 기사에서 "지난달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 때 미국 국민의 의회 업무 수행 지지도는 9%였다. 39년간 실시된 조사 중 최저였다. 미국민은 '원한에 가득 찬 당파 싸움'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었다. 우리 국민도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라며 민주당의 요구사항을 '원한에 가득찬 당파 싸움'으로 일순간 격하시켰다.

기사인지, 헌시인지 보면서 헷갈렸던 '호위무사 김기춘'
 기사인지, 헌시인지 보면서 헷갈렸던 '호위무사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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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게재된 '김기춘 비서실장 부임 이후…청와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는 단연 '올해의 기사'로 손들어주고 싶다. '인간 전두환(1980년 8월 23일 조선일보)' 이후 이토록 한 사람에게서 장점을 발견해 보도한 기사가 또 있었을까. 같은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 '프리미엄 뉴스'로 더 길게 게재돼 있다.

시작부터 왕실장의 투철한 국가관이 엿보인다. 왕실장은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에게 한 당부의 인사에서 "당신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몸 바쳐 일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오직 국가와 민족만 생각하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당장 떠나라", "이슬 먹으면서 오직 명예만 생각하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한 직원은 김 실장의 훈시를 들으면서 작가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권율 장군을 묘사하면서 썼던 "무섭게도 집중된 위엄을 가진 사내였다"라는 표현을 떠올렸다고 한다.

기사는 이어 왕실장의 리더십에 대해 "그의 리더십 요체는 권위와 카리스마"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실장은 담당 수석이 보고를 할 때면 보고서를 보지도 않는다. 팔장을 낀 채 눈을 지긋이 감고 있을 때도 있다. 김 실장은 이미 그 내용을 꿰뚫고 있다. 이윽고 김 실장이 간결한 표현으로 현안을 정리한다. 명확한 지시가 떨어진다. 군소리가 따라붙지 않는다"는 말로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묘사하고 있다.  

이쯤에서도 성에 안 찼는지 기자는 비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 실장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완벽한 문장, 나아가 보고서가 된다.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가운데 제일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영어에 'Pros & Cons'라는 표현이 있다. 장점과 단점이라고 흔히 해석된다. 왕실장 김기춘에게도 장, 단점이 있을텐데 혹독한 기자훈련을 받아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를 출입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기자의 눈에는 칭찬하고픈 그의 인간적인 면만 보였나 보다. 

조선일보 11월 18일자 사설 <대통령 국회 연설, 정치 정상화 계기 만들어야>
 조선일보 11월 18일자 사설 <대통령 국회 연설, 정치 정상화 계기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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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설 '대통령 국회 연설, 정치 정상화 계기 만들어야'를 보자. 제목만 놓고 본다면 청와대, 여야에 대한 '당부의 글' 성격이다. 실제 당부의 말이 들어 있긴 하다. 그런데 야당을 대하는 태도가 고약하다. 박 대통령과 여당에게 가벼운 잽을 날린 후, 야당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식이기 때문이다. 

사설의 마지막 문단에 이 신문이 하고 싶은 말이 들어가 있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도 여야 대치가 풀리지 않을 경우 당장 내년도 예산안을 정상 처리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된다…이렇게 되면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 운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야당 역시 국가적 현안을 내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세력으로 비치면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위험이 커진다. 정국의 흐름을 크게 바꿀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 운영에는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한 이후에 뜬금없이 야당에 대한 '국가 현안을 내팽겨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세력, 국민에게 외면당할 위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 본다. 11월 18일자 '국회파행'을 다루고 있는 <조선일보> 기사를 분석해 보았다. 기계적 중립성조차 힘겹게 느껴지는 1면 기사에서부터, 보던 눈을 커다랗게 만든 왕실장 기사, 그리고 현 정국경색의 큰 이유를 야당에게 묻고 있는 사설에 이르기까지 이 신문은 할말이 많은 듯 보였다.

그러나 정작 파행의 본질은 외면하고 있기에 영양가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파행의 본질은 윤석열 지청장이 그토록 지켜내려 한 공소장에 기록돼 있다. 진실은 힘이 세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인 busase.tistory,com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조선일보,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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