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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저의 막내 영대는 2004년, 11살이었습니다. 
서울 용강초등학교 4학년이었지요.
학교에서는 학기말에 부모인 제게 '나의 학교생활'이란 통지표를 보내왔습니다.

그 안에는 교과학습발달상황, 출결상황, 수상경력, 창의적 재량활동상황, 특별활동상황, 봉사활동상황과 영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11살이었을때 받은 아들의 '학교생활통지표'
 아들이 11살이었을때 받은 아들의 '학교생활통지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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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장모님 임화숙 여사는 2013년, 82세입니다.
치매를 앓고 계시고 일주일에 5일을 구립효창데이케어센터에 나가십니다.
센터에서는 월 말에 사위인 제게 '임화숙 어르신'이란 활동내역통지표를 보내옵니다.

그 안에는 한글교실, 레크리에이션, 생신잔치, 발마사지, 원예치료 사진뿐만 아니라 미술치료수업에서 색을 어떻게 칠했는지, 실버요가 시간에 상체운동을 어떻게 하고 웃기도 하셨는지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제 받은 장모님의 데이케어센터 '활동내역통지표'
 어제 받은 장모님의 데이케어센터 '활동내역통지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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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의 둘째딸 주리는 2001년, 12살이었습니다.
서울 청파초등학교 6학년이었지요.

특별활동으로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얼굴을 그려 넣고 '사랑해요'라고 쓰인 화병을 구어오기도 하고 집과 나무, 그리고 친구들을 음각한 연필꽂이를 만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둘째딸이 12살이었을 때 만들어온 도자기들
 둘째딸이 12살이었을 때 만들어온 도자기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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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장모님 임화숙 여사는 올 여름 몇 개의 화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원예치료시간에 심은 작은 선인장 화분이나 작은 유리화분에 유월선을 심어오기도 했습니다.

장모님께서 올 여름에 만들어 오신 화분들
 장모님께서 올 여름에 만들어 오신 화분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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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랑하고 사교적이며 급우들 간에 인기가 많음. 바른 생활 습관이 잘 형성되어있으며 매사에 성실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좋음'이라는 영대의 통지표에 쓰인 선생님의 종합 의견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미술치료. 같은 색을 여러 개를 칠하거나 강하게 힘을 주어 칠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묻는 모습을 많이 보임'이라는 전달사항에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저는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자르는 사진 속, 다시 다섯 살이 되신 장모님을 보면서 저의 아내만큼이나 젊고 예뻤던, 제가 장가들던 때의 장모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데이케어센터의 생신잔치에서 꼬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자르시는 장모님
 데이케어센터의 생신잔치에서 꼬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자르시는 장모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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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 아들은 저의 케어센터 통지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받는 장모님의 그것과 동일한….

#4 

저는 내일 아내와 함께 올해 90세이신 부모님의 오랜 숙원이신 가묘(假墓)를 마련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고향으로 갈 여장을 챙기면서 흙에서 와서,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라, 잠시 세상을 주유하다가, 자식의 슬하로 돌아가 휴식하다가, 다시 반 평이 안 되는 광중(壙中)으로 돌아가는 삶의 순리를 겸허한 마음으로 되새깁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볼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일생, #임화숙,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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