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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제2의 긴급조치, 반 민주적 진보당 해산기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제2의 긴급조치, 반 민주적 진보당 해산기도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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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서유럽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2시 30분 전자결재로 이 안을 처리했습니다. 이제 진보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가 쥐게 됐습니다.

이날 오후 법무부는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의 요지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하는 바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NL계열이 입당해 당권을 장악한 후 종북 성향 논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분당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현재는 종북 성향의 순수 NL계열로 구성된 상태이며, 이들을 존치할 경우 북한과 함께 우리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상당히 높다. 북한은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개입해왔고, 당의 목적과 활동 자체가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기초,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해왔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법무부는 "북한이 민주노동당 창당 시절부터 3당 합당 등에 이를 때까지 세력 확대, 당권 장악을 위해 계속 지령을 하달해왔고 이는 간첩 사건 등으로 상당 부분 현실화 됐다"고 밝혔습니다.

진보당의 최고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는 과거 김일성이 주장한 북한의 건국이념 사상이며, 이를 도입·계승한 진보당의 정당질서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이석기 의원 등이 관여한 RO 조직의 내란음모·선동 행위와 일심회 간첩단 사건 등은 반국가 활동이며 이것은 우리나라 체제를 파괴하려는 활동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법무부는 진보당이 민주적 선거제도를 부정하고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투척했을 뿐 아니라, 5·12 중앙위원회 집단폭력 등으로 의회주의 원칙, 정당민주주의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법무부의 정당해산 청구취지 그 이해할 수 없는 해석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입니다. 진보적인 법학자들은, 박근혜정부의 이번 결정은 1958년 조봉암이 이끌었던 진보당을 국가가 탄압했던 때로 돌아간 것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박근혜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헌법의 상위 개념으로 생각했던 1958년 시절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게 아니냐"며 "1958년 당시에도 평화통일 강령이 문제가 됐지만 당시 재판부도 이걸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한 바 있는데 5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또 다시 평화통일 강령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1950년대로 돌려놓은 것과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그는 "특히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진보당뿐 아니라 여타 진보정당들이 대다수 견지하는 노선"이라며 "심지어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때도 추진했던 일인데 그럼 민주정부 10년도 위헌적 정부였던 것이냐"고 성토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정부는 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청구에 나섰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떠오릅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이른바 NLL대화록 정국에 마침표가 찍히자 다음 타깃을 찾아 나선 게 바로 진보당 해산청구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예비음모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재판은 진보당의 해산심판청구 건과 상당히 겹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왜 정부가 수원지법의 1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하느냐, 성급하다' 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수원지법 내란예비음모 혐의 재판의 핵심 쟁점은 '5·12 회합 녹취록'의 정당성 문제인데, 이 녹취록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어 부정적 결론이 나온다면 당연히 헌법재판소에 계류될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사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청구된 때로부터 6개월 내에 결론을 내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진보의제와 관련해 경우에 따라 2년여 이상 길게 묵히는 사건도 꽤 됩니다. 반대로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신속처리 사건으로 지정해 행정수도이전 위헌심판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처럼 속사포로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신속처리 사건으로 지정하면 1~2개월 안에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 중 무엇이 됐든 하나의 재판이 후속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지사인 상황인 것이지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재판 1심판결도 안 났는데... 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법무부 장관, 통합진보당 해산안 발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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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우리가 유념해야 할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박한철 소장 임기 7개월째이지만 아직까지 눈에 띌 만큼 헌법적 가치가 있다거나 인권적 가치가 있는 결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공안검사 출신 헌법재판관이 더 있고, 여기에 새로 임명된 헌법재판관이 넷입니다. 그동안 전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던 박한철 소장이 이끄는 헌법재판소의 색깔은 어떤 것인지 바로 그 '본색'을 드러낼 사건이 바로 진보당 해산청구 심판의 건인 것이지요. 따라서 이번 재판은 박한철 헌재소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정치권 분석도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반응은 양분됩니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원칙에 따라 청구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신속한 결론을 내려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법질서를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지요.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정당활동의 자유 보장이라는 두 가치를 놓고 고심하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헌정 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태에 유감을 밝힌다"며 "모든 정당의 목적과 활동도 그 범주에서 보호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수석 대변인은 "해산 심판 청구안의 국무회의 상정·처리 과정상 충분히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나치게 조급히 처리된 점은 되짚어볼 대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진보당과 한 지붕 아래 있었던 정의당은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며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했습니다. 이정미 대변인은 "정당의 존재 여부를 결정하는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제약을 가하며 정부가 나서서 특정 정당의 해산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재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갈음하는 게 옳을까요? 정당 해산은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유권자가 판단할 몫이지 행정부가 나서서 정리할 일이 아닙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고 7월 재보궐선거도 있습니다. 2016년 총선도 있고 2017년 대선도 있습니다. 진보당의 존재감이 없다면 유권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진보당이 한국사회에 꼭 필요하다면 유권자는 그에 따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여론수렴이 문제였나

우리는 1987년 헌법으로 이미 약속한 바 있습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87년 체제가 합의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무참히 깨졌습니다. 부정선거의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덮으려 하면 할수록 더 의혹은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는 원세훈-김용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자, 이제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주적 의사에는 반하지만 정권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민과 유권자의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런데도 제도정치권은 숨을 죽입니다. 정당해산 심판청구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져도 '여론수렴 과정'이나 탓하며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린다'는 겸양을 떱니다.

한국정치가 또 다시 1987년 민주체제 이전, 아니 1958년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 강제해산 수준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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