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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날, 지난 11월 31일 당진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아이. 10년전 어린 송인효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날, 지난 11월 31일 당진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아이. 10년전 어린 송인효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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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능을 일주일 앞둔 시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 10월 31일 다섯 시 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풀무고등학교 3학년인 우리 집 큰아이 송인효 녀석과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자동차를 몰고 다가서자 저만치에서 기타를 둘러 멘 녀석이 헤벌쭉 나옵니다.

"짜식아! 내가 무슨 니 운전수냐, 매니저냐. 시간 맞춰 모시러 와서 모셔다 주고."
"그려? 나 그냥 학교로 돌아갈까?"
"그려 짜식아, 내려줄 테니께 오늘 노래하지 말고 그냥 학교로 가라."

늘 그래왔듯이 녀석과 가벼운 농담으로 만납니다. 그러면서 담배는 줄였는지, 무단외출로 술 마시다가 걸려 선생님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는 않았는지, 어떤 공부가 재밌는지, 새롭게 만든 노래가 있는지, 그동안 기숙사에서 어떤 녀석들이 어떤 재미있는 일을 벌였는지, 학교 선생님들에게 밝힐 수 없는 기숙사 생활의 은밀한 얘기들을 시시콜콜 캐묻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던 녀석이기에 요즘 녀석은 백승종 선생님의 역사 강의에 푹 빠져 있다고 합니다. 졸업하게 되면 더 이상 백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못하기에 무척 아쉬워합니다. 졸업을 앞둔 고3이기에 요즘 녀석과 만나면 친구들 중에서 수시는 몇 명이 붙었나, 몇 명이 수능을 보게 되는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깃거리가 '대학'입니다.

"너 대학 가지 않는 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내가 선택한 것인데 후회는 왜 혀?"

시를 써서 노래를 만들고 노래 부르는 길을 걷고 있는 녀석이기에 한동안 실용음악과를 지원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몇 개월 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학을 가는 대신에 1년 동안 친구들과 농사일을 하면서 노래 만드는 일에 집중하다가 군대를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대학 가는 얘들은 공부 열심히 하것다."
"수능이 며칠 안 남았으니께."
"이잉? 메칠 안 남았다구? 너도 시험 보겠다며."
"그냥 한번 봐 볼려구."
"대학에 미련이 있는 거 아녀?"
"에이, 그런 건 아니구. 그냥 재미루."

"너 대학 가지 않는 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

대학수능 일주일을 앞둔 송인효와 함께 당진 촛불문화제에 참여 했습니다.
 대학수능 일주일을 앞둔 송인효와 함께 당진 촛불문화제에 참여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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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중시 여기는 학부모가 알게 되면 자식의 일생일대가 달린 수능시험을 앞두고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겠지만 나는 그때서야 수능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을 가지 않고 제 길을 걷겠다는 녀석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냥 경험 삼아 수능 시험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일제고사를 거부해왔던 녀석이었지만 자신들을 피 터지는 경쟁 속으로 몰아붙이는 수능시험이라는 게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한번 봐 보겠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수능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의 아버지.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대학입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수능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지 애비와 함께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충남 당진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촛불문화제를 준비한 당진문화연대 사람들로부터 노래꾼으로 초청받았던 것입니다.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현수막이 내걸린 당진버스터미널 광장에는 촛불을 든 당진 시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참교육을 위한 각오를 다지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발언과 더불어 대중가요와 색소폰 연주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촛불 속에서 부모님과 함께 나온 한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촛불을 들고 있는 그 아이는 10년 전 송인효의 모습이었습니다. 녀석의 나이 열아홉, 이제 촛불 대신 기타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잠시 추위와 분노를 내려놓고 녀석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비참하게 죽은 효순·미선양. 그 무렵 전국 방방곡곡에서 엄청난 촛불이 타올랐습니다. 어린 인효 녀석을 데리고 촛불을 들면서 '녀석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더 이상 분노의 촛불을 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세상. 그럼에도 녀석이 조막손으로 촛불을 들었을 때보다 세상은 무관심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를 촛불에 녹여가며 노래하고 있는 인효 녀석에게 그 세상을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가볍게 비워내고 자유를 찾는 길, 녀석은 스스로 배워나갈 겁니다

어려서 부터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송인효.(맨 오른쪽 볼때기 통통한 녀석)
 어려서 부터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던 송인효.(맨 오른쪽 볼때기 통통한 녀석)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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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문화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녀석에게 또 다시 물었습니다.

"근디 수능은 언제 보냐?"
"며칠 안 남았어."
"정확히 며칠?"
"글쎄? 십일월 칠일일겨."
"일주일밖에 안 남았네, 아빠가 가봐야 하지 않겠어?"
"뭐 하러 와, 그냥 보는 건데."

어떤 일이든 어려서부터 스스로 선택할 길을 열어주었듯이 대학문제 역시 녀석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니가 대학을 가든 안 가든 입학금을 줄 것이다. 그 돈을 니가 알아서 써라, 그 돈으로 대학을 가서 니가 정말 공부할 마음이 있으면 장학금을 받고 다닐 것이고, 아니면 아르바이트라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돈으로 기타 하나 메고 인도나 유럽 여행을 다녀와도 좋다. 그렇지 아니면 음악장비를 구입해도 좋다. 어떤 선택이든 너에게 달렸다.'

이 선택에 녀석 또한 수긍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녀석에게 너무 큰 짐을 얹어준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고 농사를 지어가며 자신을 시험해보겠다는 의중에는 가난한 아버지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녀석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대학 가질 않길 바랐던 아빠를 나중에 원망하믄 어떻게 허지?"
"에이그 또 그러시네, 그럴 일 없으니께 걱정 마셔. 내가 선택한 길이고, 오늘 같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 좋으니께 걱정 마셔."
"그려, 그러면 됐어, 너 얼마 전에 천장암 산사 음악회에서 노래했잖어, 그렇게 자연을 노래하면서 오늘 같은 촛불집회에서처럼 추악한 세상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그런 치우침 없는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러고 싶어."

10월 31일. 당진 촛불문화제에서 노래하는 송인효. 자신이 만든 노래와 '아침이슬'을 불러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10월 31일. 당진 촛불문화제에서 노래하는 송인효. 자신이 만든 노래와 '아침이슬'을 불러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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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그럽니다. 대학을 가면 선배들도 있고, 그러다보면 노래할 여건도 폭도 넓어질 것이라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노래를 하다보면 저절로 거기에 걸맞은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얼마든지 지금처럼 자신과 어울릴 수 있는 인연들을 만나 노래할 무대가 생길 것이라 봅니다.

'가벼웁게 비워내고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고요하게 빛을 내는 달빛에 실려 높게 높게 날아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녀석의 노래, <달빛>처럼. 녀석은 스스로 그 자유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을 이제 마악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길, 가볍게 비워내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 그 길이 얼마나 행복한 길이며 또한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녀석은 스스로 배워나갈 것입니다.

녀석을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보금자리로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그 누군가가 돈과 명예 따위를 접어두고 자유로운 길을 걷게 되면 세상은 그의 자유로운 발자취만큼 진보할 것이다.'

지난 10월 12일 천장암 작은 음악회에서 노래 하는 송인효.
 지난 10월 12일 천장암 작은 음악회에서 노래 하는 송인효.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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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문화제, #노래하는 송인효, #대학수능, #자유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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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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